▲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완성차노조의 단체교섭은 우리나라 정규직 노조 교섭의 표상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원인 중 하나로 정규직 노조를 지목하는 경우가 늘었다. 교섭력이 강한 정규직 노조의 교섭 요구안에는 2차 노동시장 노동자를 위한 요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올해 교섭에서 완성차노조는 곳에 따라 14만~18만원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성과급은 600만원부터 4천500만원까지 분포한다. 기본급 인상은커녕 최저임금 인상이 실질적 교섭이고, 아예 임금체계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들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기본급 18만4천900원 인상, 미래차 대비 요구

교섭 시기마다 노동운동과 재계 안팎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교섭 요구안은 완성차노조의 표상이다. 현대차지부는 올해 금속노조의 표준 단협안에 따라 기본급 18만4천9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순이익의 30%(주식 포함)인 성과급도 요구안에 넣었다.

임금만 요구하진 않는다. 현대차지부는 이번 교섭에서 △산업전환에 따른 조합원 고용안정 △차별해소 △주거지원금 재원 확대 △저출산 관련 대책 △신규인원 충원 △포괄임금제 폐지 및 일반·연구직 승진제도 개선 △중·석식 매석제 △이중 취업규칙 폐기 △글로벌 기본협약 체결 △해고자 복직 및 손해배상·가압류 철회도 요구하고 있다.

노조 한국지엠지부의 요구도 내용은 유사하다. 한국지엠지부는 18만4천900원 정액 인상과 성과급 1천800만원을 요구하는 가운데 전기차 생산과 창원공장 파견 조합원 조기복귀 요구안을 사용자쪽에 전달하고 교섭 중이다. 한국지엠지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부당 해고자 복직도 요구안에 포함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정답’인 셈이다.

기아자동차지부의 요구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기아차지부는 △정년연장 △미래 고용안정 쟁취 및 동희오토 법인통합 △안정적 임금체계 구축 △복지제도 확대 △주 4일 근무제 △타임오프 철폐 △글로벌 기본협약 체결 △해고자 원직복직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요구하고 있다. 동희오토는 마진이 떨어지는 경차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아가 2001년 별도로 설립한 법인이다. 최근 경차 외 차종까지 위탁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설립취지가 사라진 만큼 사실상의 원청인 기아 법인과 통합하라는 얘기다. 기아의 하청업체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그마저도 완전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동희오토를 통합해 비정규직 양산을 막겠다는 의도다.

“비정규직 철폐” 선명한 구호로의 도피
“차량 생산 사내하청 거의 사라졌지만…”

완성차 3사 지부 요구안을 살펴보면 기아차지부의 동희오토 법인통합을 제외하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해 구체적인 요구를 찾긴 어렵다. 동희오토 법인통합 요구도 동희오토가 경차가 아닌 다른 차량까지 생산하는 것에 대한 기아 정규직의 위기감에서 나왔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물량확보 차원의 요구안 성격이 짙다.

비정규직 철폐는 정답이지만, 그래서 지금까지 이뤄지지 못한 난제다. 왜일까.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 철폐를 선명하게 강조하는 기조가 문턱을 만든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대차지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철폐가 노조의 기조”라며 “(사회적 과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형성을 막는 것과 지부 차원에서 해법을 내놓는 것 사이에는 위상적 간극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운동 잔뼈가 굵은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첫 번째 요구로 삼지만 너무나 중요해 두 번째 요구안부터 교섭하는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금속노조 내부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성과가 없었다거나 성벽을 쌓았다는 비판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성과가 없었다고 하면 틀린 말”이라며 “물론 이 역시 한계를 비판할 순 있지만 적어도 완성차 공장에서 차량 생산공정의 사내하청은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노사가 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업무 외주화 및 사내하청 도입에 합의한 이후 오랫동안 결자해지를 위해 투쟁해 온 결과라는 얘기다.

다만 이런 성과가 여전히 공장 안에 머문다는 한계도 직시하고 있다. 차량 직접 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이 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간접공정에서 사내하청은 존속하고 있다. 이들과 완성차 노동자의 처우는 ‘산별’로 묶어 내기 어려운 수준이다. 완성차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 1억원 안팎이지만 부품사의 평균 연봉은 6천190만원으로 격차가 크다.

이 관계자는 “완성차 공장 내부의 성과들이 사회 전체로, 비임금 노동자 같은 취약·불안정 노동자에게 확산했냐는 질문에는 회의적이다”며 “이것들을 정부나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운동이 해 온 것인데, 사회적으로 보면 조족지혈이라 정규직 노조의 자기 잇속 챙기기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법·사법·행정 모두 “기업별노조” 강요

이 때문에 금속노조 차원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초기업교섭이 관심이다. 공장 안의 단체협약을 공장 밖으로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관계자는 “물론 초기업교섭이 없다는 핑계만 대기에는 민망한 측면이 있지만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며 “재계 인사노무관리는 물론이고 법과 제도, 그리고 고용노동부의 행정, 법원의 판결도 기업별노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산별교섭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측면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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