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목표는 “노동개혁의 성공적 완수”다.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이름으로 발표한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밑그림을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것으로 ‘강도 높은 속도전’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에 연장근로 한도를 연 단위로 확대하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담은 법안을 입법예고하고, 3분기 내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한다. 파견근로 대상 확대와 부문 근로자대표제 도입 등도 이달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연구회’를 운영한 뒤 6월 정부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노사 간 첨예하게 이해가 갈리는 임금과 근로시간, 고용의 유연화를 단시간 안에 전문가 의견을 들어 강행하겠다는 것으로 극심한 사회 갈등이 예상된다.

대화 아닌 감시 대상 된 노조
다음달 노조 회계 공시 법안 발의

노동부는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면서 노동개혁 완수를 첫 번째 핵심과제로 꼽았다. 올해 업무보고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계획은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다. 이달 말까지 노조 회계 관련 서류 비치·보존 여부를 점검하고 법령을 개정해 노조 회계감사원 자격 요건 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다음달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 등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3월에는 노동단체 지원사업 전수조사를 한다. 노조에 집행한 정부보조금 내역을 샅샅이 뒤져 보고 환수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경사노위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을 설치한다. 자문단에서 노조 회계 감시 강화방안과 대체근로·단체교섭·노조설립에서의 노사 대등성 확보 방안을 논의해 ‘전문가 안’을 만들어 8월 입법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노사 대등성 확보’는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이 자주 언급하는 것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은 사용자의 요구사항인 △대체근로 허용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또는 사용자 형사처벌 규정 삭제 △직장 점거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화’ ‘선진화’라는 이름의 ‘노동시장 유연화’
5명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제한적 적용 ‘검토’

노동시간 유연화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1주 12시간 한도인 연장근로시간 산정단위를 최대 연간으로 확대하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전 업종 대상으로 3개월까지 늘린다. 또 연장근로를 적립해 휴가로 사용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도입한다. 이런 방안을 담은 입법예고안이 다음달 나오면 상반기 안에 국회로 넘긴다. 연장근로 한도가 연간으로 확대되면 최대 626.4시간의 연장근로를 특정 시기에 몰아 활용할 수 있다.

선택근로제도 ‘몰아치기 노동’을 유발한다. 이 제도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일정 기간 단위로 정해진 총노동시간 범위에서 하루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노동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측면보다는 일·주 단위 노동시간 상한 규제가 없어 초장시간 노동, 집중노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논란이 된다.

노동부는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대신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막는 근로감독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괄임금 계약의 금지보다는 표준안을 만드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어 장시간·공짜노동, 과로사 문제가 다시 수면에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에서 언급했던 ‘파견근로’가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노동부는 “파견제도 선진화를 추진하겠다”며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와 파견대상 확대를 핵심과제로 꼽았다. 현재 32개 업종으로 제한된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법원에서 대부분 제조업 공정의 인력도급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지휘·감독을 한 원청에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는 판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합법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파견허용 업종에 ‘제조업’을 포함시킬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노동부는 이렇게 뜨거운 쟁점을 경사노위에 임의기구 성격의 ‘연구회’를 만들어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6월까지 정부안을 만들어 8월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는 ‘상생임금위원회’를 이달 중 노동부에 설치한다. 임금격차 실태조사를 하고 정책을 권고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직무성과급 체계로 개편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 등을 인센티브를 준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방안도 ‘전문가TF’에서 논의한다. 노동부는 5월까지 TF를 운영하고 6월에 노사 의견을 받아 정부안을 만들어 입법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지난 8일 사전 기자브리핑에서 “(현행법은) 법인과 자연인에 대한 처벌을 병과하고 있다”며 “경제적 형벌을 포함해 처벌에 대한 여러 수위와 수준에 대해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현행 처벌 수위를 완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노동부는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노무제공자 권리보장 입법과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차별시정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해 비교대상 노동자 범위 확대, 신청기간 연장도 추진한다. 다만 근기법 적용 확대는 ‘인격권 보호’ 중심이라는 단서를 달아 기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추진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 적용 선에서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속도전에 사라진 사회적 대화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내걸고 ‘속도전’에 방점을 찍으면서 사회적 합의 과정은 생략될 것으로 보인다. 권기섭 차관은 “노동시장의 외부적 환경이 급박하고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굉장히 높아서 일정에 맞춰 추진을 해야 한다”며 “결론을 빨리 내고 가는 식으로 시급성·절박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업무보고는 ILO 기본협약을 심각하게 위반할 뿐 아니라 일방적인 기업 편들기 정책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노조를 부패세력으로 몰아세우고 노조와는 사회적 대화조차 불필요하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시간 유연화 등 재벌 대기업의 숙원을 민원 처리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조 무력화를 통해 더 많이 일 시키고, 임금은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가짜 노동개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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