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 운명이 걸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합니다.”(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올 한 해 정부의 노동개혁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릴 전망이다. 밑그림은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노동시장 유연화, 노사 및 노노 관계 공정성 확립, 근로현장 안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과제로 제시하며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 귀족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차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개혁 출발점으로는 ‘노사 법치주의’를 내세웠다.

여기에서 ‘대화’는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처럼 전문가 중심으로 마련한 과제를 제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개혁은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까. <매일노동뉴스>가 연속좌담회를 준비했다. 그 첫 번째로 ‘노조 때리기’ 또는 ‘노조 배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노동개혁정책 원인과 전망을 짚어 봤다.

연윤정 매일노동뉴스 선임기자가 사회를 맡고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과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경영학)가 참여했다(가나다 순). 좌담회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었다.

왜 지금 노동개혁일까
“격차 완화에서 유연화로 점차 보수화”

사회 : 정부가 3대 개혁과제로 꺼낸 노동·교육·연금개혁은 모두 만만치 않은 과제다. 그중 노동개혁을 가장 먼저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흥준 : 우선 ‘개혁’이 맞는지 명칭부터 고민해야 한다. 개혁은 새로운 변화를 뜻하고, 공론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묵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밟아 나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그렇지 않다. 정부·여당의 정책 정도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노동개혁’을 가장 먼저 시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해충돌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과 연금은 노사관계가 있는 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해충돌이 적다. 둘째는 보수층 결집이다. 다른 ‘개혁’보다 보수층을 결집시킬 만한 의제다.

최영기 : 저도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노동개혁 시급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동의다. 이중 노동시장 구조와 양극화가 과제라는 의견, 노동시장 경직성과 민주노총의 과도한 힘자랑이 과제라는 의견 등 방향과 내용 차이는 있지만 개혁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나머지 하나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 파업이다. 민주노총 총파업, 화물연대 파업이 정부 결단을 촉구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지난해 6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 8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의 경우 정부가 비교적 온건하게 대응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원칙 없이 대응했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어 다음 파업 때는 정부가 더 강경하게 대응했는데, 큰 물리적 대결 없이 관리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친 김에 노동개혁을 제대로 해 보자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박용철 : 노동개혁은 노조·노동자 세력과 논쟁을 촉발하는데,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인 듯하다.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다. 노조를 공격 대상, 개혁 대상처럼 생각하고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며 개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노동개혁에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 :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발표와 이달 노동부 업무보고에서는 노조 감시 강화, 노동시간제도·임금체계 개편, 파견제도 개편 등을 노동개혁 밑그림으로 제시했다. 핵심이 무엇인가.

박용철 :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깊은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 사용자가 이야기하던 지엽적 과제들이다. 노동개혁 슬로건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인데 계획이나 준비, 노력이 없다 보니 노동유연화만 이야기한다. 목적과 수단이 불일치하는 꼴이다.

최영기 : 노동자 간 격차 완화와 노동시장 경직성 완화로 혼재돼 있다. 정권 초기에는 격차완화가 강조됐다. 원·하청 임금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조선업 상생협의회가 대표적인 모습이다. 다만 노동부 업무보고 이후 경직성 타파로 시선이 옮아 가고 있다. 갈수록 보수화하고, 노동계에 불리해지고 있다.

정흥준 : 노동시장 유연화와 성과주의 임금체계다. 윤석열 정부는 유연한 노동력 사용, 조직 효율성 극대화로 노동시장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보수정부의 정체성에는 합당해 보인다. 다만 실질적인 노동시장 문제 해결이 가능한지, 시대정신에 맞는지 의문이다. 노동시장은 임금과 고용격차, 생산인구 감소, 여성 경제활동 참여 정체 등 여러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이다.

“노조 때리기는 길들이기 의도”
“노조도 신뢰도 제고 고민해야”

사회 : 정부는 ‘노조 때리기’로 노동개혁을 시작했다. 노사 법치주의, 기득권, 노조부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노조를 ‘불공정한 기득권 부패집단’으로 불렀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흥준 : 노조를 약화하고 길들여 정권에 협조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조의 성격을 모르지 않을 텐데 노조가 기득권이라는 표현, 교섭을 사용자 협박이라고 표현한다. 목표를 위해 노조를 다른 시각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는 노동자 이해를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조직이다. 그래야만 사용자로부터 권리나 이익을 보호받을 수 있다. 노조 규정에 따라 운영하고, 교섭을 통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얻는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제도적으로 보호받아 온 시스템이다.

박용철 : 노조를 정권 의도로 이끌어 가려는 의도다. 노조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시각을 바탕으로 법과 원칙이라는 프레임을 결합해 노조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다. 또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대응한 이후 지지율도 높아지는 1석3조 효과까지 나오다 보니 강경 대응을 더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최영기 : 노동개혁 주도권을 쥐려고 노조를 흔들어 보려는 수다. 노동개혁은 노조와 갈등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노조를 쫓아다니며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타협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기 싸움일 수 있다.

사실 이는 노조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가능하다. 제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1988년 이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국민의식조사를 처음으로 했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신뢰도가 높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국민은 노조의 규모와 안정성이 높아졌음에도 불법과 탈법 경계를 넘나들며 힘으로만 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가진다. 현장에서 노조의 불합리함을 보며 소위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노조가 운동과 홍보 방식을 업그레이드하고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정흥준 : 노동운동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나가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책임감 있는 운동이 부족하다 보니 보수정부에서 노조의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하려 든다.

사회 : ‘노조 때리기’중 특히 이슈가 되는 것은 노조 감시 차원에서 회계를 들여다보겠다는 지점이다.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 노동단체 지원사업 전수조사, 노사 부조리 온라인 신고센터 운영을 이야기했는데, 회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노조 자주성 침해이며,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 위배라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최영기 : 검찰의 시각에서 가장 약점이라 판단한 것 같다. 노사관계 시스템을 검사의 시각으로 보고, 여러 거래나 불투명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건설노조를 비롯한 빌미들도 있었다. 검사 시절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을 직접 수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부가 미국이나 영국에서처럼 본격적으로 노조 회계에 개입하고 따지기까지는 어렵지만, 신고센터를 세우고 빈틈이 보이면 바로 들어가겠다는 경고다.

정흥준 : 동감한다. 다만 실효성은 없다. 노조 내부는 경쟁적이다. 회계가 투명하지 않으면 다음 집행부 선거에서 힘들어진다. 노동정책 지원사업도 이미 정부가 회계감사를 하고 있다. 노사 간 여러 불공정거래가 있을 수 있고, 다툼의 소지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선제적으로 부조리를 검증하면 좋겠다. 부조리는 사용자 구조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박용철 : ILO 기본협약은 통상적 수준 이상의 과잉 조사가 노조 자주성을 해치는 경우에는 조사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노조 회계 문제는 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크게 문제될 건 없다. 다만 노조가 문제 집단이라는 시각을 씌울 수 있다. 일부 노조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개별 사건으로 판단해 행정이나 사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검사 시각에서 노사관계 바라봐,
대화 없이 법치만 이야기 … 겁난다”

사회 : 개별적 대응을 하면 된다지만, 일각에서는 노조를 과격하게 틀어쥐고 있다고 지적한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에서 압수수색을 당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화물연대를 조사방해행위로 고발하고, 건설노조 고용요구 행위에는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이들은 특수고용직, 일용직 하청노동자들이다. 정부가 강조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앞뒤가 다르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영기 : 역시 검찰의 시각으로 노사관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노사관계에서 비리·부정·담합이 있다고 보고 이를 ‘법치’로 바로잡으면 노사관계가 바로 설 수 있다, 노동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겁이 난다.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개혁은 불가능하다. 개혁의 기본 매뉴얼은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론화를 한 뒤,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입법안을 내서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다.

정흥준 :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과 경험에 행정관료들이 과도하게 집중하니 노사관계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나온다. 화물연대 파업은 자영업자의 단체행동이니 불공정행위로 보고, 건설노조 교섭은 협박에 의한 착취로 보는 시각이 정책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다. 다만 현 상황이 과도한 행정력 손실을 계속해서 가져오는 만큼 지속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용철 :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의들을 외면한다. 계약의 형식과 외형만 본다. 문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근본적 차원에서 정부가 노력해야 하는 문제인데, 맥락도, 해결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영기 : 정부가 미숙한데, 노조 역시 미숙했던 점이 아쉽다. 화물연대 파업에서 고용노동부는 개입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 파업 이틀 전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갑작스럽게 약속했다. 화물연대가 바로 파업을 접을 수 없는 그림인데 어설프게 사안을 관리한 거다.

여기서 화물연대가 정부의 면을 세워 주며 파업을 접는 방안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화물연대는 2주 동안 파업했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요구안을 들어줬음에도 파업을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나중에 이봉주 화물연대 본부장이,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명으로 3년 약속이라도 지켜 달라며 파업을 접었지만 정부는 지금처럼 강경하게 나와 버렸다. 그런데 이게 통하자 이후에 점점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들,
장시간 노동과 노동시간 양극화 불러”

사회 : 노동개혁 의제 중 하나인 노동시간 유연화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구체적인 안이 나왔다. 1주 12시간 한도의 연장근로시간 산정단위를 최대 연간으로 확대하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전 업종 대상으로 3개월까지 늘린다는 안이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도 하겠다지만,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무력화 우려가 높다. 정책이 실현되면 어떤 영향을 불러올까.

박용철 : 지금도 최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데, 노동시간이 더 늘어날 우려가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공짜’ 장시간 노동이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으로 원할 때 장기간 휴일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소득보전의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시간 일하며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상식이다.

정흥준 : 장시간 노동은 물론 노동시간 양극화까지 불러올 정책이다. 주 52시간제 무력화를 용인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상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실제로는 일을 더하고 돈을 더 주는 일이 많다. 사업장 쪼개기를 통해 30명 미만 사업장 추가연장근로 8시간 연장제를 활용하기도 한다.

노동시간 양극화는 원·하청 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원청은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지 않는다. 주 52시간이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주로 하청 생산현장에서 많이 쓰고 있다. 제도가 바뀌면 하청사업장에서만 사용하게 될 거다.

최영기 : 사회적 대화와 타협 없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실현되기 어렵다. 주 52시간제는 지난 정부의 성과이고, 선호도가 높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11시간 연속휴식시간 일반화와 노동자 시간선택권 확대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자 시간선택권의 경우 해외에서는 여성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했는데, 우리나라는 기업의 자유로운 운용 의제로만 이야기될 뿐이라 아쉽다.

“임금체계는 노사가 결정할 제도,
사각지대 2차 노동시장 표준임금부터 마련”

사회 : 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상생임금위원회를 설치해 임금격차 실태조사에 나선다. 직무성과급 체계로 개편하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노동자가 없다. 노동자를 배제하고 추진하는 정부안이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까.

정흥준 : 실효성은 없을 것이다. 방향을 지적하고 싶다. 임금체계 개편의 포인트는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고임금자 임금을 낮추고, 저임금자는 직무가치를 충분히 평가해 제값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는 고임금자에만 포인트를 둔다. 임금 삭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 반발에 직면하고, 임금체계가 필요한 저임금자는 외면받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임금체계를 개편하려면 이중격차를 해소할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최영기 : 힘을 받지 못한다. 임금체계는 정말 노사가 결정할 제도다. 노사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정부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면, 2차 노동시장 임금체계를 들여다보라. 50명 미만 사업장 65%에는 임금체계 자체가 없다. 임금체계가 없는 자들은 표준임금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시장 전문화와 현대화에 정부 투자가 확대되면, 노동시장이 진일보할 수 있다.

박용철 : 동감한다. 2차 노동시장 임금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임금을 인상시키는 게 필요하다. 임금체계 전환에 제언한다면, 공공기관이 아닌 공무원부터 대상이 돼야 한다. 공무원은 공공기관 노동자보다 숫자도 많아 파급력이 크다. 연공성이 강한 조직이라 명분에도 맞다. 실제로 일본은 공무원이 스스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공공기관이 따라갔다. 다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노동자를 배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파견 확대를 자문단에서 한다? 비상식적,
정부 노동개혁 프로세스 혼선 온 듯”

사회 : 정부는 이달 중 경사노위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과 ‘연구회’를 출범시켜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와 파견 대상 확대 등 파견제도를 논의한 뒤 입법화한다고 한다. 대체근로 허용과 노조 부당노동행위 신설 또는 사용자 형사처벌 규정 삭제, 직장점거 금지 등 ‘전문가안’도 만들어 입법화를 예고했다. 오래전부터 재계가 바라던 요구안들이라 ‘재계 소원수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용철 : 재계 소원수리라는 표현도 약하다. 노동시장 유연화 수단으로 쓰이는 게 파견과 도급인데, 이를 무한정 허용한다는 것 아닌가. 노동시장 판도를 흔들게 된다. 현재도 우리나라 비정규 노동자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로도 지난해 815만6천명, 전체 37.5%의 비중을 차지한다. 노조 부당노동행위는 노사관계에서 논의해야 하는 문제이고 노동권 차원에 있어서 안 될 내용이다.

최영기 : 우선 파견대상업무 확대와 대체근로 허용을 경사노위에서 자문단을 꾸려서 한다는 건, 상식과 다른 접근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도 이런 제안을 하지는 않았다. 추후 논의과제로 남겨 놓았을 뿐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는데, 노동부 업무보고 이후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파견 대상 확대와 대체근로 허용은 노동계와 대화를 막는 콘텐츠다. 대화와 타협이 아닌 길을 찾겠다는 결심으로 해석되는데, 노동부 업무보고를 기점으로 정부의 노동개혁 프로세스가 혼선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메시지를 낼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

정흥준 : 사회적 대화의 퇴행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회라고 해도 자문단,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내는 방식이라 사회적 대화라고 보기 어렵다. 이를 사회적 대화 명분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사회적 대화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연구회와 자문단이 의견을 내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의견을 내는 순간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 명분이 없어진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철수하면 사회적 대화는 중단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동법 사각지대 없애는 논의 필요”
사용자성 확대, 노동법 전면 적용해야”

사회 : 노동부는 노동법 사각지대 해소를 말하며 노무제공자 권리보장 입법, 5명 미만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 추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노동계 요구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오래전부터 논의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할 산별교섭 강화, 단체협상 효력 확장, 노동회의소 설립 같은 정책은 없다. 노동법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어떤 제도 개선이 추진돼야 할까.

정흥준 : 사용자성 확대 내용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가 많이 늘어나기도 했고, 이미 교섭도 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과 초단시간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들이 배제되는 현실도 바꿔야 한다.

5명 미만 사업장, 단시간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게 현장에서 법치주의를 사라지게 한다. 사업장 법인을 쪼개 상시근로자 7명 사업장을 3명·4명 사업장으로 쪼개고, 2명이 할 일을 단시간 노동자 3명을 고용해서 시키는 경우가 많다.

박용철 : 정흥준 교수의 의견에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법 논의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이고 싶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건 노사협의회다. 노사협의회에 대한 발전적 형태가 없다. 대표적으로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만들어 놓고 바뀐 게 거의 없다. 어찌 보면 가장 발전이 필요하고, 사회적 대화로까지도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최영기 : 동의한다. 노동법 사각지대 논의를 의제로 띄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노동개혁은 법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노동 격차 완화라는 관점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논의해야 비로소 개혁의 위상이 선다.

사회 :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건너뛰고 있지만,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노동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정흥준 : 친사용자적 편향성은 보수 정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차별점은 이번 정부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노사민정으로, 노사가 담합을 한다고 보고 민간을 넣었다. 박근혜 정부는 노조를 인정하고 갔다.

노조, 특히 한국노총 없이 노동개혁은 어렵다. 이번 한국노총 선거에서 여당과 성향이 비슷한 후보가 떨어졌다. 여당의 큰 지지기반은 없는 상황에서, 총선 이후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는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박용철 :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고, 문제다. 민간부문 노조까지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역시 차이로 보인다. 정부가 한국노총까지 무시한다면, 선거 이후 노동 관련 의제는 공백상태가 된다.

최영기 : 생각이 좀 다르다. 보수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싫어하는 건 공통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 반감이 있어 1년간 외면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오며 합의가 필수불가결하자 적극 이용했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것도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노총을 갔고, 공무원·교원 타임오프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라는 선물을 줬다. 여전히 한국노총은 같이 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개혁, 사회적 대화 통해야” 한목소리
“한국노총 역할론, 노동개혁 균형 기대”

사회 :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면 어떤 목적과 방향, 내용으로 추진돼야 할까. 정부에 주문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

정흥준 :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 둔화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성장 폭이 둔화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를 노동이 양보하고 희생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노사정 논의로 경제위기를 돌파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책임을 떠넘기며 1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박용철 : 역시 사회적 대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산업안전보건 등이 커다란 이슈이고,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 다만 현 정부에서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최영기 : 경사노위에서 노조와 함께 격차 완화라는 관점에서 노동개혁을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부에서 학자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여는 방식이면 노조가 선뜻 들어가기 어렵다. 노조를 참여시켜 격차 완화, 2차 노동시장 현대화 의제를 이야기하게끔 하면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한국노총에도 신중한 수싸움을 주문하고 싶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복원하면서 노동자, 노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본다.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양극화 해소라는 시각을 선명히 해 정부를 추궁하고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바둑으로 치면 속기파에, 세력바둑이다. 수를 빠르게 두고, 차후 큰 싸움을 대비해 포석을 다지는 스타일이다. 노동계가 선수를 빼앗긴 상황이기에 같은 길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속도를 조절하고, 숨고르기를 해야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다.

정리=임세웅 기자·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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