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지난 여름 조선소 하청 용접공이 우리에게 물었다. 최저시급을 받는 현실을 바꿔 보겠다고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다가 결국 1세제곱미터 쇠창살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한 달을 싸웠던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다. 싸움 이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시급은 4.5% 올랐지만 지회 앞으로 47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장이 날아왔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부는 지금, 그는 국회 앞에서 한 달 가까이 곡기를 끊고 여전히 외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느냐”고. 유최안 부지회장의 물음은 2022년을 관통한다.

7년간 국회서 잠자던 ‘노란봉투법’을 깨우다

노사정·전문가 100명 중 39명이 ‘올해의 인물’로 유최안 부지회장을 꼽았다. 유 부지회장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임금·단체교섭과 파업은 7년째 국회에 잠자고 있던 ‘노란봉투법’을 깨우는 알람이었다.

유 부지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의 1제곱미터를 점거해 진수를 막자 정부는 “불법파업”이라며 경찰을 투입해 강제 해산하겠다고 압박했다. 지회는 올해 22개 협력사와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최초로 진행하고,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중지 결정을 받아 쟁의권을 얻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난 22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유 부지회장은 “최저시급을 받는 현실을 임금교섭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지금의 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지난 여름 투쟁으로 증명됐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을 요구하며 지난달 30일부터 단식에 들어간 이유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이후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공언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에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보다 심각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사내하청 대신 초단기 계약 사외하청을 활용하는 이른바 ‘아웃소싱(임시일용직)’이 신규고용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용직인 사내하청은 시급이 지금 1만원 수준인데 아웃소싱으로 들어오면 시급을 2만7천원을 받아요. 두 배 차이가 나죠. 대신 계약기간이 한 달을 넘지 않아요. (그런데도 높은 임금을 좇아) 상용직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웃소싱 업체로 들어가고 있어요.”

조선업계의 심각한 구인난과 이른바 ‘노조 리스크’를 피하려는 사용자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직장 이동이 잦으니 노조를 만들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임시일용직은 지금은 상용직보다 높은 시급을 받지만 조선업황이 하향사이클에 들어서는 순간 퇴출 0순위가 될 확률이 높다. 숙련도를 바탕으로 배를 짓는 조선소에서 아웃소싱으로 갈수록 숙련도는 필요 없는 구조가 된다. 유 부지회장은 “정부가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만들어 하청업체 대형화를 유도해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며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원청 사용자와의 교섭뿐”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며 밥을 굶는 진짜 이유다.

‘노조 혐오’ 마케팅으로 지지율 반등
윤석열 대통령 2위, 원희룡 장관 7위

올해의 인물 2위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35명의 선택을 받았다. 3위와 4위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17표)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13표)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공약한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은 노사관계 불안을 예고했다. 하지만 택배파업과 화물연대 1차 파업,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도크점거 파업 같은 노정 대결 국면에서 ‘정면대결’을 피했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윤 대통령이 취임 후 몇 차례 노동이슈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큰 구상이나 강한 의욕은 보이지 않았다”며 “초기에는 노동계 자극을 피하는 ‘위험회피’ 전략을 썼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화물연대 2차 파업을 계기로 이 전략은 폐기됐다. 사문화됐던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꺼내는 등 초강수를 택했다. 노동시장 유연화 드라이브를 걸고, 노조 회계에 대한 감시를 예고하는 등 ‘반노조’ ‘노조혐오’ 마케팅으로 보수층을 끌어당겨 지지율 반등에 나서는 모양새다.

30년동안 한국노총에 몸담았던 인물을 노동부 수장으로 깜짝 발탁하고, 태극기부대 같은 극우세력과 손잡은 정치인에 경사노위를 맡긴 노동당국 수장 인사는 윤 대통령의 이런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끝까지 싸운 노동자, 나란히 공동 5위

공동 5위에는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과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이 나란히 올랐다. 8표를 얻었다.

빵이 만들고 싶어서 SPC그룹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취업한 임 지회장은 2017년 제빵기사 불법파견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이듬해 SPC그룹이 자회사를 만들어 제빵기사를 직접고용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를 이끈 당사자다. 하지만 사측이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임 지회장은 빵을 만드는 시간보다 거리에서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올해는 52일간 단식했다. 임 지회장의 끈질긴 싸움으로 SPC그룹은 ‘반노동기업’으로 소비자들의 불신을 받았다. 아시아 최대규모 빵공장이라는 SPL 평택공장에서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지는 사고로 ‘SPC 사태’는 정점을 찍었다. 지난달 SPC그룹 계열사 피비파트너즈 대표가 부당노동행위를 공식 사과하고 사회적 합의 이행감시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임 지회장은 빵 반죽을 다시 잡을 날을 꿈꿀 수 있게 됐다.

30년 동안 화물차 운전대를 잡은 이봉주 본부장은 20년 전 화물연대가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했다. 왜소한 체격의 그는 12일부터 단식 중이다. 국민의 ‘안전벨트’이자 화물노동자의 ‘생명줄’인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해서다. 여야는 지난 22일 올해 일몰되는 안전운임제를 3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존재감 사라진 양대 노총 위원장 9·10위

2022년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인물은 7위에 오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올해 37년 만에 복직에 성공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함께 3표를 받았다. 화물연대 파업에 ‘강공 모드’로 일관했던 원 장관은 건설노조를 향해서도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라는 막말을 쏟아내며 ‘반노조’ 정치마케팅 선봉에 섰다. 여당 대선주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국민의힘 당대표 차출론까지 들린다.

또 다른 의외의 결과는 양대 노총 위원장이다. 매년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에서 1·2위를 다퉜던 양대 노총 위원장이 이번에는 겨우 순위권에 들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표로 9위,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1표를 받아 10위에 턱걸이했다. 윤석열 정부 초기 양대 노총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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