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나를 위한 시간요? 없죠. 일요일만 쉬어요. 토요일에 일하면 1.5배(휴일 가산수당)를 더 주니까요.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건가요.”

가사노동자 강정희(66·가명)씨의 일주일 스케줄은 숨 쉴 틈 없이 빽빽하다. 오전 9시 출근해 서울 잠실에 사는 고객 집에서 오후 1시에 일을 마친 뒤, 오후 2시까지 교대 사는 고객 집으로 이동한다. 점심을 챙겨 먹을 새도 없다. 아무도 주 6일 일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통상임금의 1.5배를 주는 휴일 가산수당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정희씨의 일은 불안정성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일감이 없어지면서 월 소득이 7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100% 고객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처지라 일감은 들쑥날쑥하다. 정희씨는 “어떨 때 보면 일주일에 네 집이 빠진다”며 “하루 전날 밤 ‘내일 일 있으니 쉬시라’고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일을 하고 싶은데 나이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며 걱정했다. 50여년간 한시도 일을 멈춘 적이 없지만 노후준비는 생각지도 못했던 정희씨에게 토요일 근무를 할지 말지 선택할 여지는 없다.

일반 노동자와 비정형 노동자의 노동시간 양극화는 점차 커질 전망이다. 주요 IT기업은 인재 유치를 위해 근무장소나 출퇴근 시간 재량권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선거철에는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상한제를 넘어 주 4일제 시행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정희씨 같은 비정형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불안정한 소득과 고용에서 기인한 자기착취 구조는 ‘자유’란 포장 속에 사라지고, 다양한 근로형태 속 노동자의 휴식권을 규율할 방법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29일 <매일노동뉴스>가 창립 30년을 맞아 시간빈곤에 놓인 노동자의 하루를 추적했다.

“점심 대충 때우고 또다시 출근”

“아침 6시면 일어나요. 딸 먼저 씻으라고 하고 그사이 밥 준비하고, 손주 씻기면 오전 7시50분이에요. 늦어도 8시10분 전에는 나와야 해요.”

강정희씨는 두 딸을 둔 엄마다. 남편과 둘째 딸까지 세 식구인데 집에는 다섯 명이 산다. 정희씨 집 근처에 사는 큰딸이 결혼한 뒤 낳은 8살 손주는 정희씨 집에 살다시피 한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정희씨의 남편이 일이 없을 때 아이를 챙긴다. 큰딸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부담을 덜었지만 “제 집보다 편한지” 큰딸과 손주는 여전히 정희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눈뜨자마자 가사와 육아에 시달린 정희씨의 진짜 일은 9시에 시작된다.

“원래 저도 기술자예요. 미싱을 45년 동안 했어요. 아가씨 때부터 했는데, 일하며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내 일을 아예 못해서 50세 초반에 그만뒀어요. 친구 소개로 가사노동을 시작했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영 돈벌이가 안 됐다. 가사노동 일을 한 지 15년째다. 오전 9시 출근한 뒤부터 일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일을 시작한 뒤로 점심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점심 먹으면 30분이 지나가는데 다음 집에 가는 시간을 맞추기 어렵죠. 늦으면 고객님 보기가 그래요. 5분만 늦어도 눈치 주는 분도 있고, 그냥 김밥 한 줄 사 가서 양해를 구하고 먹어요.”

일은 반찬 만들기부터 냉장고·화장실 청소까지 대중이 없다. 고객의 요청이나 집 특성에 맞게 요령껏 최대치를 해낸다. 정희씨는 “일에 요령이 생기면 10분 정도는 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며 “요령 피우면 티가 나고 고객들도 다 안다”고 귀띔했다. 한 집당 수수료는 5만원 수준이다. 하루 8시간 일하면 10만원을 손에 쥔다. 평수가 크면 수수료가 6만원으로 오른다. 이 중 5천원은 일감을 준 지역 사회적협동조합에 소개비조로 내줘야 하는 돈이다. 쉬지 않고 일하지만, 그의 월급은 일정치 않다. 많을 때는 230만~240만원을 벌지만 200만원이 채 안 될 때도 있다.

코로나19로 수입 급감,
고용·소득불안에 ‘조금만 더’

코로나19 감염병에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갔다. 정희씨가 직격탄을 맞았다. “200만원 넘게 벌었는데 지난해는 70만원도 못 벌었어요. 미치겠더라고….” 정희씨가 임산부 가사돌봄 지원업무를 병행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임산부 가사돌봄 지원업무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임산부에게 주 4회 무료 가사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지자체에서 위탁을 받아 대신 운영한다.

가사노동자도 4대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기 전이지만 협회는 가사노동자를 용역기간만큼 직접고용한다. 봉제노동자로 일한 뒤부터 최근까지 근 50년 넘는 시간 동안 회사에서 4대 보험을 들었던 적이 없었다는 정희씨는 “토요일에 일하면 휴일수당도 붙고, 4대 보험도 된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정희씨는 사실 2개 사회보험만 적용받는다. 만 65세가 넘은 탓에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데다, 딸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정희씨의 숨통을 죄던 코로나19가 조금씩 힘이 빠지자 고난은 다른 노동자에게 가서 붙었다. 배달노동자 김정수(32·가명)씨,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한산하던 거리와 음식점이 사람들로 북적이자 음식을 배달해 먹는 일이 적어졌다.

“자율이라고요?”
콜 따라 근무지·근무시간 바꾸는 배달노동자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그는 최근 근무지를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겼다. 출근시간은 오후 2시에서 4시간 늦췄다. 콜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더가 적은 심야시간대 일하기 위해서다. 정수씨의 퇴근시간은 새벽 2시다.

“오후 두세 시에 콜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져 버티기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출근시간을 딜레이한 거예요.”

직장인들의 흔한 근무시간 ‘9 to 6’는 정수씨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다. 오후 3시 그는 잠에서 깬다. 아침 겸 점심인지, 점심 겸 저녁인지 알 수 없는 식사를 마친 정수씨는 오후 6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한 시간 전 집을 나선다.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

그는 “휴식시간은 따로 안 갖는다”며 “편의점에 가서 음료를 사 중간에 먹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저녁 안 드시면 힘들다고 챙겨 드세요. 그런데 저는 일하는 ‘템포’가 끊겨서 일할 맛이 안 나더라고요. 중간에 일을 쉬었다가 하면 콜이 안 들어오고, 안 들어오기 시작하면 오토바이 위에서 30분, 1시간씩 기다리는데 그렇게 있다 보면 자괴감이 들어요.”

수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 일한 정수씨가 매주 버는 돈은 90만원이 조금 넘는다. 소득세와 주민세, 산재·고용보험료, 오토바이 렌털요금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김씨는 “하루 35건 정도 배달하는데 15만원에서 17만원 정도 번다”며 “시급으로 2만원은 찍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수씨는 종종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로 일하기도 한다. 배달대행 플랫폼업체들은 자사로 배달노동자를 유인하기 위해 특정시간 배달을 수행할 경우 프로모션 수수료를 지급한다. 프로모션 수수료가 높게 책정되면 배달노동자가 몰린다.

일자리 질 포기하고 선택한 육아·일 병행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정현아(32·가명)씨도 쫓기듯 하루를 지낸다.

“엄마, 일어나!” 현아씨의 하루는 별이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잘 잤냐”며 아이와 눈을 맞추는 일도 잠시 서둘러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온다. 계란물을 묻힌 식빵에 잼을 발라 아침 한 끼를 완성했지만 맛을 느낄 여유는 없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기 바쁘다. 아이의 등원준비가 끝나면, 현아씨의 출근준비가 시작된다. 기상 후 2시간 만인 오전 8시30분 겨우 집에서 나온다. 아이를 등원시킨 현아씨에게 숨 돌릴 틈은 없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현아씨는 “1년 넘게 육아휴직을 하다 지난해부터 생활비를 보태려 일을 시작했다”며 “4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은 엄마가 아이를 대신 봐줬다”고 말했다.

육아와 병행하기 위한 4시간 파트타임 일을 1년 가까이 했지만, 좀처럼 돈이 모이지 않자 현아씨는 최근 풀타임 일자리를 새로 구했다. 하지만 그가 일하는 시간은 하루 6시간이다. 필요 없는 인건비를 줄이려는 원장의 타산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그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아반은 오후 4시 전에 하원하는 시스템이라서 어린이집에서 사람을 구할 때 애초 단축근로를 쓸 수 있는 교사를 희망해요.”

어린이집이 현아씨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최저시급으로, 한 달 일해 손에 쥐는 월급은 143만원뿐이다. 정부가 어린이집 교사에게 직접 지급하는 영아교사 담임 지원비와 처우개선비, 육아기 단축급여를 모두 합하면 230만원쯤 된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집으로 또 출근합니다”

오후 4시 현아씨가 어린이집 일을 마치면 육아출근이 시작된다. 별이의 배꼽시계에 맞춰 함께 저녁을 먹다 보니 평일에는 남편과 밥 한 끼 함께 먹기도 어렵다. 온 신경은 별이에게 쏠려 있다.

“별이가 계속 말을 걸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채워 줘야 하니까, 애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애기에게만 집중하려고 해요. 전화도 잘 못 받고, 연락도 하기 쉽지 않아요.”

남편이 귀가하는 오후 7시30분에 육아 바통을 넘겨주지만, 방 청소가 현아씨를 기다린다. 진짜 해방은 오후 9시 아이가 잠든 후에야 시작된다. 그는 “남은 시간에는 TV를 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며 개인 시간을 보낸다”며 “그냥 하루를 보내기에는 너무 허무해서 새벽 한두 시까지 깨어 있다가 잔다”고 전했다.

연구자들은 대표적인 시간빈곤층으로 저임금·장시간 유급노동을 하면서 미취학 자녀가 있는 여성을 꼽는다. 유급노동과 가사노동, 돌봄노동이 중첩돼 시간빈곤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아씨는 “완전한 풀타임 근무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줄었지만 근무시간 자체는 만족한다”며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8살 손주의 할머니이기도 한 가사노동자 정희씨의 하루도 가사·돌봄노동으로 끝난다.

“집에 가면 저녁 7시30분 정도 돼요. 씻고 저녁 먹고, 집에서도 가사일 해야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일을 마친 뒤 또다시 출근하는 셈이다. 온 가족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도 그의 몫이다.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시간은 오후 10시쯤이다. 누워서 TV를 보면 한 시간이 훌쩍 흐르고 금세 눈꺼풀이 감긴다. 자정에는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취미가 뭔가요?”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

배달의민족 광고 카피지만 배달노동이 주업인 정수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수씨의 근무지·근무시간·휴식시간은 콜이나 플랫폼사가 설계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인다.

새벽 3시 심야노동을 하고 집으로 돌어온 정수씨는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렸을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다. “새벽에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냄새도 마음껏 맡게 해 줘요. 저랑 생활패턴이 맞춰져 있어서 얘도 제가 올 때쯤에는 똘망똘망해요.”

산책에서 돌아온 뒤 씻으면 그의 하루가 끝난다. 이전에는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지만, 먹고 바로 자니 속이 부대껴 굶기를 택했다. 제대로 차려 먹는 정수씨의 식사는 출근 전 먹는 한 끼뿐이다.

일주일 중 유일한 휴일인 수요일엔 집에 머문다. 그는 “1주에 하루 쉬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그냥 푹 쉬는 게 낫다”며 “약속을 잡기도 하는데 나이가 드니 슬슬 결혼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약속 잡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취미요?” 정희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일요일 등산이다. 정희씨는 “산에 안 가면 일주일이 힘들다”며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산에 다녀오면 다리가 수요일까지 욱씬 아픈데 안 다녀오면 또 찝찝하고 그래서 간다”고 했다.

“시간빈곤 탈출하려면”

정희씨나, 정수씨, 현아씨의 1주 근로시간은 정부가 허용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초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은 유급노동시간(8시간)과 가사·돌봄노동 같은 무급노동시간, 수면·식사 등의 필수시간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온전히 휴식을 시작하는 시각을 보면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현아씨는 저녁 9시, 가사노동을 끝내고 또다시 가사노동을 하는 정희씨는 저녁 10시, 심야노동을 하는 정수씨는 새벽 3시로 여가시간을 갖기에는 너무 늦고 재충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장 혹은 비시장 노동에 관계없이 어떤 개인이 임금노동을 수행한 후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를 누릴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않은 경우”를 뜻하는 시간빈곤 상황인 셈이다.

“휴가라고 표현해야 하나? 공무원들은 3~4일 동안 몰아서 쉬고 하는데, 이런 일 하고 있지만 이틀이라도 돈 받으면서 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희씨의 소망은 소박했다.

현아씨는 “아이가 있는 가정은 둘 중 한 명이라도 단축근무를 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힘들다”며 “육아도우미든, 조부모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답답해 했다. 그는 “모두 오후 4시에는 일이 끝나야 퇴근한 뒤 6시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배달노동자 정수씨는 “일 끝나고 오면 자고, 일주일 하루 쉬는데 힘드니까 또 자고…. 매일 시간이 빈곤하다”며 “예측 가능한 수입을 벌 수 있게, 안전배달료가 도입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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