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올림
▲ 반올림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 통과로 ‘태아산재’를 인정하는 근거 법률이 마련됐지만 ‘임신 중인 근로자’로 대상을 한정하면서 남성노동자의 경우 법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의 작업장 유해요인 노출로 인한 2세 건강영향을 포함하는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태아산재법 제정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조승규 공인노무사(반올림)는 “아버지 태아산재의 경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빠졌다기보다 피해 존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간과된 것”이라며 “생물학적 가능성이나 역학적 근거 등을 고려했을때 아버지 태아산재도 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반올림,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이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임신 중 근로자’로 한정해 남성 배제

‘태아산재법’으로 부르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임신 중인 노동자가 유해인자 취급·노출 등으로 출산한 자녀가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거나 사망한 경우에 대한 특례규정을 신설해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이 2020년 4월 위험물질에 노출됐던 제주의료원 간호사 자녀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데 따른 제도개선이다. 2023년 1월12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산재 적용 대상을 ‘임신 중 근로자’로 한정해 남성인 경우 업무상 유해물질에 노출돼 태아의 건강손상이 발생해도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삼성디스플레이 설비엔지니어로 일했던 최현철(가명)씨는 이날 토론회에서 “일할 당시 밀폐공간에서 화학물질 이소프로필알코올(IPA)을 사용할 때 안전보호구라고는 덴털마스크와 니트릴장갑이 전부였다”며 “6학년인 아들은 차지증후군으로 심장·눈·귀가 모두 좋지 않고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통원진료와 언어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 이 아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2004년부터 7년간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캠퍼스(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일한 그는 지난해 12월1일 아버지로는 최초로 태아산재를 신청했다.

시행령에 위임한 유해인자, 폭넓게 규정해야

업무상 재해 판단시 고려돼야 할 유해인자를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개정 산재보험법은 해당하는 유해인자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했다. 유해인자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향후 태아산재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승규 노무사는 “생식독성물질 같은 화학물질이 가장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유해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제주의료원의 경우 화학물질뿐만 아니라 육체적 부담작업, 스트레스, 교대근무도 유해요인으로 고려됐다. 이를 감안해 시행령에 태아산재를 일으킬 수 있는 유해인자로 다양한 유해요인이 포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성보호 차원이 아닌 재생산 건강 보장을 위해 권리의 영역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출산을 준비하는 여성노동자의 임신·출산 문제로 협소한 틀 안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임신·출산 유무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의 재생산 건강권 보장을 위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아버지 태아산재라는 개념 역시 모성보호 프레임이 지니는 한계와 마찬가지로 협소한 해석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며 “재생산 건강을 산재예방의 기본 영역으로 두고 국가와 기업이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하며 재해의 인정과 보상도 성별이나 임신, 출산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들의 재생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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