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내년 1월 태아산재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를 35가지로 제한하는 하위법령을 입법예고 했다. 그런데 1995년 LG전자 여성노동자 23명에 생리불순·불임 등을 일으킨 2-브로모프로판을 비롯한 생식독성 돌연변이 물질 상당수가 빠졌다. 또 대법원에서 태아산재 유해요인으로 판단한 교대근무나 야간노동·직무스트레스 같은 유해요인도 포함되지 않았다.

18일 노동부는 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를 신설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의 유해인자는 보건의료시설이나 감염취약 집단시설 종사자에 노출될 수 있는 바이러스나 세균·기생충 등 9가지, 메토트렉세이트같이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물 7가지, 납이나 툴루엔 같은 17가지 중금속과 화학물질, 고열작업과 전리방사선 같은 작업환경 등 35가지다.

하지만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알려진 화학물질만 1천484개에 이른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정한 ‘생식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생식능력에 영향을 주는 고독성(생식독성·변이원성) 물질’은 45개인데, 이마저도 노동부 입법예고안의 태아산재 유해요인에 다 포함되지 않았다. 2-브로모프로판이 대표적이다. 1995년 LG전자 공장 여성노동자 23명은 2-브로모프로판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다가 집단 생리불순·불임·빈혈 등으로 산재 판정을 받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1, 2-브로모프로판은 둘 다 생식독성·변이원성 물질이지만 불임에 대한 것만 알려져 있다”며 “건강손상자녀 유해요인은 태아에 기형을 유발하거나 유발할 수 있는 요인들로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모의 생식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독성물질이 태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배제하기는 의학적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노동부는 입법예고안에서 의학적 근거와 대법원에서 인정한 사례를 근거로 유해요인을 규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0년 4월 제주의료원 태아산재 사건에서 간호사의 교대근무와 심야노동, 직무스트레스도 유해요인으로 판단했는데 이런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노동부가 ‘의학적 근거’를 이유로 유해요인을 규정했다지만 입법예고안에서 노동부가 배제한 수천가지 유해요인 중 2세에게 무해하다고 입증된 것은 없다”며 “정부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법까지 ‘시행령 정치’를 활용해 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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