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현대중공업에서 잇따라 발생한 집단 피부질환 사태의 원인은 회사가 도입한 친환경 페인트 때문인 것으로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확인됐다. 친환경 페인트를 새로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인체에 미칠 유해성 검증을 간과하고 관련 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직업병 유소견자 55명 중 53명이 현대 계열 조선 3사

노동부는 지난해 9월부터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발생한 피부 발진 사태를 조사한 결과 무용제 도료에 포함된 과민성 물질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1일 밝혔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현대중공업이 KCC와 공동개발한 무용제 도료를 사용한 뒤로 도장작업자들 사이에서 집단 피부발진이 발생했다며 노동부 울산지청에 임시건강진단을 요청했다. 지난 2월 현대중공업에서 도장작업을 하다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을 앓던 한 노동자는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돼 산재 승인이 내려졌다.<본지 2월22일자 8면 현대중공업 피부발진 산재 승인 “직업성 피부질환 공론화해야”참조>

노동부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을 포함한 조선소 7곳과 도료 제조사 3곳 등 10개 기업의 노동자 1천80명을 대상으로 임시건강진단을 진행했다. 피부 관련 ‘직업병 유소견자(D1)’는 55명으로, ‘현재는 증상이 없지만 관찰이 필요한 사람(C1)’은 177명으로 나타났다. 직업병 유소견자 가운데 53명이 현대 계열 조선사(현대중공업 35명·현대미포조선 9명·현대삼호중공업 9명) 노동자였다. 나머지 두 명은 츄고쿠삼화페인트사에서 나왔다.

피부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된 무용제 도료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함량이 5% 이내인 것으로 환경친화적 도료로 분류된다. 정부는 2019년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무용제 도료 사용 확대를 장려하면서 무용제 도료를 사용하면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을 줄인 실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시너가 포함되지 않아 환경유해성이 덜하고 폭발·질식 우려도 없다는 이유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지난 1월부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을 통해 기존 도료와 무용제 도료를 비교한 결과 무용제 도료는 기존 도료보다 휘발성 유기화합물 함량은 낮아졌지만 새로운 과민성 물질들이 그 자리를 채운 것으로 파악했다. 노동부는 사측이 사전에 위험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조사·조선사는 무용제 도료를 개발하면서 화학물질의 피부 과민성 문제를 간과했고, 사용 과정에서도 유해성 교육이나 적정 보호구 지급을 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2일 현대 계열 조선 3사에 안전보건조치로 △화학물질 도입시 피부과민성 평가 도입 △내화학 장갑, 보호의 등 피부노출 방지 보호구 지급·착용 △도장공장 내에서만 무용제 도료 취급 △의학적 모니터링 및 증상자 신속 치료체계 구축 △안전 사용방법 교육 △일련의 조치사항들에 대한 사내규정 마련 등을 명령할 계획이다.

“바뀐 제품 사용 이후에도 피부질환 발생”
드러나지 않은 피부질환자 더 많을 수도

노동계에서는 노동부 조치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가 문제제기를 한 시점에서 거의 1년 만에 안전보건조치명령이 내려지는 것인 데다 무용제 도료사용 금지 같은 재발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박정환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일정 기준을 충족했을 때 계속 무용제 도료를 쓸 수 있게 했는데 바뀐 무용제 도료를 쓰고 나서 피부질환을 앓는 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조선소 현장 사용을 원천 금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문제가 된 제품을 폐기한 뒤 개선 제품을 공급해 사용하고 있지만 바뀐 제품도 인체유해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임시건강진단 대상이 도장작업자로 한정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스프레이로 작업할 때 분진으로 인해 직접 도장작업을 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노출된 다른 작업자들이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행도장부에서 기계정비 등 업무를 담당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피부질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지부 설명이다.

지부는 산재처리 간소화를 요구하고 있다. 박정환 실장은 “하청노동자는 산재신청을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피부질환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공산이 크다”며 “노동부 조사로 직업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산재신청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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