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난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에 페인트칠을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집단 피부발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가운데 1명이 지난 17일 직업성 피부질환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 직업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탓에 흔한 질병이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조선소 내 피부질환 문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친환경 무용제 도료 도입 이후 20여명 집단 피부발진
17일 산재 승인 “전환배치 안 돼 탈의실에서 대기 중”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에서 2003년부터 도장작업자로 일한 석지훈(45)씨는 지난해 7월 양쪽 손과 팔에 붉은 반점이 나기 시작했다. 석씨는 단순 알레르기로 생각하고 피부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증상은 가라앉지 않았다. 가슴과 목, 다리 등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석씨는 원인도 알지 못한 채 가려움증이 심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을 견뎌야 했다.

그러다 이듬달 회사와 무용제 도료 제조사 KCC 관계자가 석씨를 찾아와 증상을 확인했다. 석씨는 이때부터 도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비슷한 증상이 있는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석씨보다 2개월 앞선 5월부터 피부발진 증상이 나타난 사람도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KCC와 공동개발한 친환경 무용제 도료를 도입한 시점은 같은해 4월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파악한 피부발진 증상을 겪은 노동자만 석씨를 포함해 23명이다. 지부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에 임시건강진단을 요청했고, 같은해 10월 말부터 울산대병원에서 도장작업자 333명 전원을 검진했다. 석씨를 포함해 5명이 ‘직업병 유소견자(D1)’ 판정을 받았다. 석씨는 D1 판정에 따라 유기화합물·금속분진·유리섬유 작업이 금지되거나 제한됐는데도 부서를 이동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출근은 하되 현장에 가지 못해 12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탈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부는 개개인이 산재신청을 하려면 절차가 복잡한 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감안해 고용노동부에 일괄 산재승인이 이뤄지거나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석씨가 우선 지난해 12월 산재신청을 했고, 이달 17일 요양승인 결정을 받았다.

직업성 피부질환 업무상질병 중 1%에도 못 미쳐
하청노동자 불이익 우려, 산재신청 꺼리는 분위기

드러나지 않은 피부질환 발병자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울산대병원이 실시한 임시건강진단 대상자는 도장작업자에 한해 이뤄졌는데, 선행도장부에서 기계정비나 블록 입출고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간접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무용제 도료를 쓴 현대삼호중공업에서도 피부발진 증상자가 27명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환 지부 노동안건보건실장은 “절차가 복잡한 데다 피부병의 경우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워 산재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협력업체는 전환배치를 할 수 있는 곳이 없고 산재신청을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을 우려해 하청노동자 피부질환 문제는 더 드러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직업성 피부질환은 전체 업무상질병 가운데 1%도 채 되지 않는다. 2014년 16건(0.208%), 2015년 18건(0.227%), 2016년·2017년 15건(0.19%, 0.163%), 2018년 16건(0.139%)에 불과하다.

그런데 피부질환은 흔한 직업성 질환으로 산재통계로 잡히지 않아도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까지 차지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복잡한 절차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업병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탓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우조선에서도 과거 피부질환 산재 승인
“감시체계가 제대로 운영돼야”

현대중공업만의 일도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30년 가까이 용접공으로 일하는 양아무개(58)씨는 2019년 알레르기 접촉피부염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그는 2018년 7월부터 피부발진이 나타나 같은해 10월 증상이 악화돼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가 겪은 증상과 증상 이후의 과정은 석씨와 비슷했다. 양씨는 “당시 온몸이 피딱지였다”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봤다. 알로에도 바르고 얼음찜질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이렇다 할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다 양산부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를 찾아가 “직업적 노출에 의한 알레르기 접촉피부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도 피부질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에 따르면 최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2명이 직업성 피부질환 문제로 상담을 접수했다. 김중희 센터 사무국장은 “장갑을 끼우고 테이프로 묶고 자도 무의식적으로 장갑을 벗어 피범벅이 되거나 피부과 연고 스테로이드제 후유증으로 대퇴부가 썩는 등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20년 가까이 용접공으로 일한 분들인데 용접 때 발생하는 가스에 노출되면서 피부발진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은 “접촉성 피부질환은 직업관련성이 높은데도 일반 병원에서는 직업성 여부를 따지거나 산재신청을 안내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특수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일상적 보건관리 영역에서 직업관련성을 따지고 연원을 밝힐 수 있는 감시체계가 제대로 운영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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