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불안 그 자체는 개인과 사회의 온전성과 지속성을 지키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며 병증이 아니다. 그러나 불안이 과도해 일상이 위축되면 공포증, 과소해 존재의 안전을 위협하면 불감증이라고 하며 병증이 될 수 있다. 유해 화학물질과 관련한 불안은 사회적 인식의 극단을 보여 준다 할 만하다.

이번에는 생리대였다. 가습기 살균제와 중금속 정수기, 살충제 계란 등 각종 생활제품의 화학물질 문제로 소비자들은 불안하다. 내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하거나 가족 일상과 관련한 생활용품·소비재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큰 반향이 일어나고 언론도 소비자 불안과 허술한 정부 대응을 교차편집하며 집요하게 추적한다. 화학물질 속에서 자식을 키워야 하는 부모들의 불안은 ‘안아키’ 같은 극단의 편향으로 향하기도 한다. 가히 케모포비아, 화학물질 ‘공포증’의 시대라 할 만하다.

생산과 노동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학물질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이번에는 소화기 공장이었다. 스물세 살 파견업체 청년노동자가 사망했다. 30년 전 수은온도계 공장부터 반도체 공장, 인조가죽 공장, 휴대전화기 부품공장에서 일어난 중금속 중독 사망·백혈병·희귀질환·실명에 이어 이번 소화기 공장에서 발생한 독성간염 사망까지 일터의 화학물질 문제는 진행형이다. 그러나 언론을 포함한 사회의 반향은 어떤가. 아주 잠깐의 애도 단신 이후 집요한 원인과 대책에 대한 분석은 찾기 힘들고 대부분 안전 ‘불감증’으로 연결시키곤 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안전이 되고 그것을 위해 부가적인 비용(돈)을 부담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노동자가 되면 선택의 기준은 역전된다. 노동자들이 일터를 선택하는 기준은 안전이 아니라 임금(돈)이 되고, 임금을 위해서는 부가적인 위험을 부담하기도 한다.

이렇게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이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 각각 불감증과 공포증으로 달리 현상하게 되는 맥락 속에서 이윤동기와 건강형평성 문제를 본다. 소비재로 접하는 화학물질 문제들은 당시에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불안을 극대화시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대체재(대부분 더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를 찾아서 ‘소비’하도록 조장하고, 새로이 이윤이 발생하는 수요가 창출되면 잊힌다. 소비재는 등급이 매겨지고, 구매력에 따라 위험과 안전(비록 심리적인 것일 뿐일지라도)은 좌지우지된다. 일터에서 노출되는 화학물질 문제는 재해 당사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애틋한 개인사를 잠시 다뤄 주기도 하지만 결국 노동자들이나 관리자들(이들도 노동자다)의 안전 불감증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사업주 책임은 깃털처럼 가볍다. 소비자와 달리 사업주는 안전을 위한 비용을 그다지 지불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당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몫이다. '원청-하청-파견-이주노동자'로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달라진다.

먹고 입고 쓰는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검증과 사회적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비자의 불안도 이해한다. 그러나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는 결국 생산 현장에서부터 소비 지점,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관리를 포괄해야 가능하다.

손톱만큼의 화학물질에도 다칠세라 애지중지 키웠던 아이들이 자라 취업을 하면 일터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화학물질로 인한 각종 피부질환부터 암과 희귀질환에 시달릴 수 있고, 시력을 잃고 간이 녹아내리고 죽어 갈 수도 있다. 문송면은 세상을 떠날 때 나이 15세였고,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클린룸으로 들어갔으며, 이번에 독성간염으로 사망한 소화기공장 노동자는 고작 스물셋이었다.

‘내 가족과 아이에게는 이런 것을 입히고 먹일 수 없고, 내 아이는 이런 일을 하게 될 리 없다’가 아닌 어떤 가족과 아이에게도 그런 것을 입히고 먹여서는 안 되고 어떤 노동자도 그런 일을 하도록 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는 지금 먹이고 입히는 것들의 안전뿐 아니라 장차 먹고 입을 것을 벌기 위한 노동현장의 안전과도 밀접하다. 더 안전한 것을 소비할 권리가 중요하다면 더 안전한 일터를 요구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소비자 불안을 조장해서 새로운 소비수요를 창출하고 노동자들의 불감을 선전해 이윤의 무한추구는 허하되 자본의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소비재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것만큼 일터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집요하고 끈질지게 노동자들의 불안과 정부·기업의 허술한 대응을 보도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지역사회 성원으로서 모든 영역에서 화학물질에 대한 문제를 건강형평성 선상에서 다뤄야 한다.

공장에 갇힌 산란기계가 아닌 자연에서 노니는 건강한 어미닭이 낳은 달걀을 구하는 것처럼 정체 모를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공장을 옮겨 다니는 파견노동자가 아닌 안전한 일터에서 고용불안 없이 일하는 건강한 노동자가 생산해 낸 가치결정체로서 상품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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