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9천160원(월 191만4천440원)으로 정해졌다. 올해 8천720원보다 5.1%(440원) 오른다. 최저임금 결정의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정상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5년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7.2%로 박근혜 정부 인상률 7.4%에도 못 미친다.

코로나 피해 직격탄 맞은 을들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싸움

내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사 대립은 시작부터 첨예했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 피해가 영세기업·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에 집중됐기 때문에 노사 모두 절박했다. 재난의 직격탄을 맞은 ‘을’들이 그야말로 벼랑 끝 대치를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한국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는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델타 변이 확산으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인들은 하루하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최저임금 부담을 최소화해 달라”고 호소했다. 노동계는 코로나19 피해를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며 맞섰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저임금 노동자 갈등유발 프레임 씌우기는 이제 멈춰야 한다”며 “이번 심의 과정에서 나온 의견을 모아 소상공인 보호와 지원을 담은 경제구조 개혁과 과제를 ‘부대 결의문’으로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 역시 “을과 을의 싸움이 아닌 을과 을의 연대를 통해 함께 살자”며 “제도개선을 포함한 영세사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방안을 함께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노동계 ‘협상 전술’로 치부되면서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노동계 관계자는 “거듭 제안했지만 사용자쪽은 핀잔을 주거나 무시했고 공익위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역대 최악’ 최저임금 기록한 공익위원
팬데믹 이후 커지는 임금 격차에 ‘화들짝’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5.1% 인상된다. 경제성장률(4.0%)과 물가상승률(1.8%)를 더한 값에 취업자 증가분(0.7%)을 뺀 결과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경제전망치에서 취업자 증가분을 뺀 이유는 노동력 공급이 증가하면 임금이 하향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과 2009년 적용 최저임금에도 이런 산식을 사용했다는 게 최저임금위쪽 설명이다.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을 심의하면서 내년 경제회복 기대와 함께 코로나19 사태로 심화되는 임금 격차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권 교수는 “코로나19로 중소사업자와 소상공인도 위기지만 저임금 노동자도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4차 대유행 상황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백신 접종 속도와 내년 적용 최저임금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도 “취임하면서 (최저임금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데 주력했는데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충격이 전해졌다”며 “올해부터는 정상적인 노동시장 여건에 맞게 운영·관리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만큼 노동력에 대한 온당한 처우가 따라야 한다”며 “지금 가장 큰 어려움은 노동시장에서 임금격차가 커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과 (수혜를 입은 업종 간의) 사회적 편차를 극복하는 데 최저임금 제도 하나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고용감소 주장에
밀려난 소득분배 효과

박준식 위원장은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문재인 정부만큼 드라마틱한 적이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을 ‘청룡열차’에 비교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최저임금위가 의결한 최저임금은 7천530원으로, 인상률이 16.4%였다. 이듬해도 10.9%를 인상하면서 집권 2년간 27.3%가 올랐다. 하지만 영세사업주와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속도조절론’이 대두되면서 지난해와 올해 적용하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2.9%, 1.5%로 급락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갈지’자 행보는 또 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 여론에 떠밀린 국회는 2018년 충분한 논의 없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복리후생비와 월할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시켰다. 여기에 고용노동부까지 나서 급작스럽게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바꾸려다 노사의 격한 반발을 불렀다. 노동부가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하는 내용의 제도개선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면서 공익위원들이 전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미영 기자
김미영 기자

노동부가 발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2016년 23.5%에서 지난해 16%로 줄었다. 5.24배였던 임금 5분위 배율(상위 20%의 평균 임금을 하위 20%의 평균 임금으로 나눈 값)도 4.35배까지 낮아졌다. 특히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된 2018년과 2019년에 소득분배 그래프도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면서 격차 해소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일자리가 30만개 감소한다”는 식의 고용감소 주장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2%로 적폐 노동정책을 편 박근혜 정부 평균 인상률 7.4%보다 0.2%포인트 낮았다”며 “정부의 관리능력이 부족해 최저임금을 을들의 전쟁에 가둬 버렸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이 뭇매를 맞는 동안 소득주도 성장론과 경제민주화 정책은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좌초됐다는 평가다. 민주노총은 “코로나19로 증폭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소득 격차 해소”라며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마지막해 최저임금조차 일반 노동자 임금인상률 예상치(5.5%)보다 밑도는 최저임금 인상률로 격차 해소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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