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의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문이 송달됐다. 지난달 2일 열렸던 CJ대한통운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재심판정서다. 모두 132쪽인데, 일반적으로 노동위 판정문이 50쪽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 분량이다. 판정문 대부분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할애했다. 중노위가 두 차례 실시한 현장조사와 당사자 심문 진술을 세세하게 담았다. 중노위가 이번 판정을 내리기까지 택배기사의 노무 과정과 CJ대한통운의 택배서비스 사업수행 행태를 치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한 흔적이 역력하다.

“노동 3권 구체적 실현하는 관점에서 사용자 따져야”

중노위는 판정문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는 근로자의 기본권인 노동 3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관점에서 해석·적용해야 한다”며 “노조법상 사용자를 근로계약관계 내지 사용종속적 노무제공계약관계에 있는 원사업주로 한정하면 법률상 명시적·구체적인 근거나 위임 없이 노동 3권의 헌법적 의미와 직접적 규범력이 제한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사용종속관계나 근로계약 여부로 단체교섭 의무를 지닌 사용자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취소소송에서 “노동 3권은 법률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판시한 것과 관련 있다. 노동 3권은 헌법상 규정만으로도 구체적 권리를 가진다는 것으로, ‘직접근로계약관계’ 같은 임의적 조건으로 노동 3권을 제약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중노위는 이어 “이번 사건에서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 해당 여부는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관점에서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원사업주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관해 일정 부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라고 밝혔다.

전형적인 근로계약관계가 다면적 노무제공 관계로 고용구조가 재편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다면적 노무제공관계는 복수의 사용자가 존재하는 근로자파견관계에서 사용사업주나 도급사업주 모회사나 플랫폼 사업자 같은 형태다.

중노위는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원청이 노동조건을 일정 부분 지배·결정함에도 근로자는 자신의 노동조건 등에 대해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고, 그 노동조건 등에 대한 근로자의 단체교섭권이 본질적으로 제약된다”고 설명했다.

“원청 사업주가 실질 지배하는 노동조건 교섭해야”

이번 사건에서 중노위는 택배기사 노동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은 CJ대한통운이 갖고 있다고 봤다. 택배기사 업무가 CJ대한통운의 택배서비스 사업수행에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서 필수적인 노무이고,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의 전국적인 택배서비스 물류 운송사업 체계에 편입돼야만 택배운송 시장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노위는 노조가 제기한 교섭의제 중 서브터미널에서 택배기사의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등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등은 CJ대한통운이 단독으로 교섭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주 5일제와 휴일·휴가 실시, 수수료 인상 등은 CJ대한통운과 대리점주가 함께 교섭해야 한다고 했다. 3개 교섭 의제는 대리점주도 비록 제한적이나마 일정 정도 지배·결정권이 갖는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정은 CJ대한통운 같은 원청사업주가 노동의 이익은 모두 가져가면서 정작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이 사건 판정은 원청 사업주에게 근로기준법 같은 개별 노동관계법의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내용도 아니고 단지 원청 사업주가 지배하거나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항에 대해 교섭자리에 나와 교섭하라는 것에 불과하다”며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 3권을 박탈하자는 주장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가진 원청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교섭의 장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노위는 부당노동행위라고 결정하면서 판정서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 이런 내용이 담긴 공고문을 사내 게시판 등에 10일간 게시할 것을 주문했다. 노조쪽은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중노위 판정에 반발하는 CJ대한통운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중노위의 구제명령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경우 관할 법원에 긴급이행명령을 신청해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중노위 결정 사항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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