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에서 사용자가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다. 노동조건 결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다면 모두 사용자다.”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하면서 밝힌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중노위는 택배노동자 단체교섭 요구에 CJ대한통운은 단독 혹은 대리점주와 공동으로 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중노위는 왜 이렇게 판단했을까.

“사용자, 실질적 권한 행사하는 부분에 책임져야”

지난 2일 중노위는 전국택배노조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사건 직후 배포한 자료에서 “CJ대한통운이 원·하청 등 간접고용 관계에서 노동조건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전국택배노조가 6개 교섭의제를 요구했는데 이 중 3개는 CJ대한통운이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나머지 3개는 CJ대한통운과 대리점이 중첩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는 것으로 판단했다. 교섭의제에 따라 사용자 의무를 나눈 것이다.

CJ대한통운의 압도적 지배력을 인정한 부분은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부분이다. 택배기사의 배송상품 인도시간 단축, 집하상품 인수시간 단축, 택배기사 1인 1주자창 보장이 해당한다. 중첩적으로 사용자 의무를 지는 부분은 △주 5일제 및 휴일·휴가 △급지 (구역별) 수수료 분류 체계 개편 △사고 부책(책임부담) 개선이다. 중노위는 “택배기사 노동조건 중 일정 부분에 CJ대한통운이 단독 또는 대리점주와 중첩적으로 교섭의무를 진다”며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사용자 판단 기준 바뀌어도
‘창구단일화 제도’ 복병 기다려

중노위의 이번 결정은 노동분쟁 사건의 사용자 판단기준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불법파견 문제로 장기분쟁 중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복수의 사용자가 존재하는 특수고용·플랫폼 노사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과거에는 하나의 기업에서 노사가 교섭을 하고 협약을 맺었지만 지금은 다면화된 노사관계가 일반적”이라며 “이에 따라 단체교섭도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사용자가 교섭 상대방이 되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중노위가 지난해 실시한 ‘노동분쟁에서 당사자 적격의 판단기준에 관한 연구’ 용역은 이번 결정의 단초를 제공한다. 김홍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아 제출한 보고서에는 “어떤 하나의 기업을 사용자로 특정할 것인가에서 복수의 기업들 간에 어떻게 사용자 책임을 분배할 것인가로 문제의 초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용자의 ‘기능’에 따라 ‘책임’도 분배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하청 노사관계뿐 아니라 모회사를 상대로 자회사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도 있고, 지자체나 공공기관을 상대로 민간위탁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도 단체협약을 맺을 수도 있다. 또 사용자에 따라 교섭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단체교섭이 창구단일화 절차부터 시작되는데 현재 교섭구조는 ‘단일 기업’만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중층적 노동관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여부는 쟁의행위 정당성을 논하는 단계에서 판단하고 (노동위원회가 담당하는) 조정절차에서는 다루지 않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권 변호사도 “창구단일화 제도는 복수의 사용자를 상정하지 않은 조건에서 만들어졌다”며 “노동위원회가 앞으로 교섭 대상이라고 판단한다 해도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산을 못 넘어 교섭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하청 교섭 구조는 창구단일화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거나 교섭단위 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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