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회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한 뒤 고용노동부의 후속조치로 나온 노조법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노조의 단체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무기를 기업쪽에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되고, 조합원수 산정기준을 ‘종사근로자 조합원’으로 한정하면서 여러 회사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을 조합원으로 둔 플랫폼 노조의 활동반경을 좁히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해고 조합원 노조활동 제약하려다…

1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달 17일 입법예고한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26일까지 받는다. 이 기간까지 노사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입법예고안 내용에는 조합원수 산정기준을 ‘조합원’에서 ‘종사근로자인 조합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법 개정으로 해고자도 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돼 재계가 반발하자, 이들의 사업장 내 노조활동 범위를 좁히기 위해 종사근로자 조합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할 때, 교섭창구 단일화로 교섭대표노조를 정할 때,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할 때 비종사자의 의사결정권에 제한을 두겠다는 취지다.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제약하려는 이 같은 노동부 입장은 플랫폼 노조의 활동을 축소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노동자는 한 개의 플랫폼 업체에 전속돼 일하지 않고 여러 업체에서 호출을 받아 일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부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이들이 노조를 만든 뒤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해 창구단일화 절차가 개시되면 종사근로자인 조합원수를 계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러 플랫폼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을 어떤 기준에 따라 ‘종사근로자인 조합원’으로 계산할지 혼란이 불가피하다. 타임오프 한도를 정할 때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할 때도 유사한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은 고용단절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시점에 따라 ‘종사근로자인 조합원’이 변동할 여지도 많다. 이런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노조법 시행령 입법예고안이 기업별노조를 염두에 두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파업·교섭대표노조·타임오프 등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업장 단위에서 이뤄진다”며 “이 같은 의사결정이 종사자가 아닌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은 이상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사업장 특정 노조 활동 위축될 듯”

자율교섭(개별교섭)의 교섭권 유지기간을 1년으로 제한한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복수노조 사업장 노사갈등을 증폭시키는 매개가 될 수 있다. 현재 노동부는 창구단일화에 참여하지 않는 노조는 교섭권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창구단일화 후 자율교섭이 진행되는 와중에 만들어진 신생노조는 사실상 교섭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신생노조 교섭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별교섭 후 1년 동안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새롭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며 입법예고안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입법예고안이 현실화하면 노사갈등이 극심한 복수노조 사업장 사용자는 웃음을 지을 것으로 보인다. 복수노조 사업장 사용자는 임의대로 교섭대표노조와 단체교섭을 할 수도, 각 노조와 개별교섭을 할 수도 있다. 사용자에게 우호적인 기업노조가 과반수노조라면 교섭대표노조를 정해 그 노조와만 교섭하고, 소수노조라면 개별교섭을 할 수 있다. 복수노조 갈등 대표적 사업장인 유성기업에서 이 같은 일이 실제 벌어졌다. 유성기업은 과반수노조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와 개별교섭을 했고, 지회는 개별교섭에서 단체협약이 타결되지 않아 확보한 쟁의권을 바탕으로 장기간 싸워 왔다.

입법예고안이 원안대로 통과하면 유사한 사업장에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사측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A노조가 과반수노조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자, 회사는 개별교섭을 타결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 1년 뒤 기업에 우호적인 B노조를 포함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다시 밟았다. 이 경우 A노조는 개별교섭에서 확보한 쟁의권을 상실하게 된다. 회사는 교섭대표노조가 된 B노조와 교섭을 하고 A노조는 무시한다.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민주노조는 개별교섭을 통해 교섭권·쟁의권을 계속 확보했는데 입법예고안이 통과하면 그 권리는 1년으로 제한된다”며 “회사노조가 과반수노조가 된다면 민주노조의 활동은 상당히 제약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입법예고안에 내포된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노동계는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교섭권 유지기간 1년 제한과 관련해 지난달 노동부에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구체적으로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민주노총도 조합원수 산정방법 등 입법예고안 문제점을 지적하는 공식 입장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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