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17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모법 개정과 비준동의에 따른 후속조치다. 노조법 개정 의미가 적지 않으면서도 논란이 뒤따랐듯, 이번 시행령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의 시행령 개정안 의미와 한계,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노사단체 관계자들과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

상위법인 ILO 기본협약에 위반돼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
▲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정부가 아직도 ILO 기본협약 비준의 의미와 효과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

지난 2월26일 ILO 87호·98·29호 협약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고, 조만간 ILO에 비준서가 기탁될 예정이다. 국회 동의를 받아 비준된 ILO 기본협약은 국내법, 구체적으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신법 우선 원칙, 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라 ILO 기본협약이 노조법에 우선해 적용된다. 따라서 ILO 기본협약에 위반되거나 미흡한 현행 노조법과 시행령은 비준서 기탁 후 발효시까지 1년의 유예기간 동안 전면적으로 개정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여전히 ILO 기본협약 위반,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고 심각히 우려된다. 단적으로 시행령 9조2항에서 여전히 행정관청의 시정 요구를 남겨 둬 자유로운 노조설립과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

노사 간에 자유롭게 결정해야 할 전임자 급여지급에 관해서도 여전히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통해 정부가 입법적‧행정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도 개정된 노조법과 이번 시행령 개정안 모두 개선사항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종사근로자’ ‘비종사근로자’라는 해괴한 개념을 도입해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ILO가 수 차례 개선을 권고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상위법인 ILO 기본협약에 위반된다는 점에서 위법‧무효로 볼 수밖에 없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앞두고 있는 이상, 신법‧특별법우선 원칙에 따라 협약에 위반되는 현행 노조법 규정들은 전면적으로 개정돼야 한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은 철회하고, ILO 기본협약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경영계 의견 반영 안 돼, 보완해야
장정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장정우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 장정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지난해 12월에 개정된 노조법 시행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경영계는 개정 노조법의 불균형성과 문제점이 시행령을 통해서 일부나마 보완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의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종사근로자’ 용어 반영 등 노조법 개정에 따라 기술적으로 개정돼야 할 사항들만 담았을 뿐, 적극적인 보완사항은 반영하지 않았다.

시행령 입법예고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노조법 개정시에 경영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현장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령에서라도 보완해 줄 것을 요청했던 사항이 있다. 비종사조합원의 사업장 내 조합활동시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이용에 관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고, 노조사무실 이외의 장소는 사용자의 사전 승인이 있을 경우에 출입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시행령 개정안은 교섭대표노조의 지위 유지 기간을 2년으로 종전대로 유지해 개정 노조법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최대 3년으로 확대한 것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셋째, 사후적으로 결격사유가 발생한 노조의 설립신고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삭제돼, 노조의 자격이나 적법성을 둘러싸고 산업현장에서 노사 간 혼란과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

시행령 입법예고안에 대해 정부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계의 우려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서, 입법예고 기간 동안 합리적인 보완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ILO 기본협약 비준 취지 퇴색해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노조법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필요한 최소 수준에서 개정이 이뤄졌다. 이번에 나온 하위법령 개정안은 비준 취지도에 맞지 않는 내용 투성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행령에서 노조설립 신고에 시정조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 아님 통보’ 제도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효 선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미 실효된 ‘노조 아님 통보’ 제도를 정비한다면서도, 노조설립 신고증이 교부된 후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 ‘사후적 시정요구권’을 그대로 존치시켰다. 노조에 대한 자율적 개선 기회를 부여하고 행정지도를 할 수 있다는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종전 노조활동에 대한 경찰력의 개입·감시를 지속시킨다는 점에서 협약 비준의 목적은 물론 교섭자치 보장 차원에서도 수긍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맹점을 전혀 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은 경우 노동위원회가 이에 대해 시정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가 노동위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한 전적인 권한이 사용자에 일임한 것에 기인한다. 현장에서 이를 악용해 고의적으로 교섭을 지연하고 방해하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가 시행령에 마련돼야 한다.

현재까지 실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일련의 정부 정책추진 과정을 보면 사후적으로 정책추진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들이 뒤따랐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 문제는 결사의 자유, 그리고 경찰력의 개입을 최소화시킴으로서 ‘협약자치’를 최대한 존중하는 본래 의도가 후퇴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노조 아님 통보제 폐지 의미 있어, 반려제 개편 논의될 듯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
▲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

노조 아님 통보 제도는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을 개정한 것이 주된 내용으로 보인다. 노조 아님 통보는 없앴지만 시정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 조문을 남겨 뒀다. 이 문제는 설립신고제 문제와 연동된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 본법 12조3항에 설립신고서 반려 제도가 명시돼 있기 때문에 시행령에 관련한 내용을 남긴 것이라 판단한다.

앞으로 쟁점은 설립신고서 반려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불거질 것 같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한-EU 전문가패널은 우리나라가 노조설립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고, 이는 ILO 기본협약과 배치된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에 ILO 기본협약이 발효되면 허가제로 운영하는 노조법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노조법 12조3항과 시행령 9조2항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한국은 여전히 노조설립을 허가제로 운용하고 있다고 지적받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리 노동관계법령은 단결권·단체교섭권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설립신고증이 교부되면 단결권·단체교섭권이 다 허용되는 구조다.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연결돼 있는 현 구조를 더 취하지 않고, 두 권리를 별도 권리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설립신고제 폐지 논의에 선행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자면 노조 아님 통보제를 폐지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행정관청은 노조설립 신고증을 교부할 때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도 고려해야 하지만, 단체교섭을 누구와 할 것인지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립신고서 반려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9조2항의 일부를 남겨 둔 것은 불가피한 면도 있어 보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