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전경. <롯데백화점 홈페이지>

롯데백화점이 올해부터 성과에 따라 기본급을 삭감하는 내용의 ‘평가보상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혀 노동자 반발을 사고 있다.

5일 서비스일반노조 롯데백화점지회(지회장 최영철)에 따르면 사측은 새해부터 인사고과 하위 10% 등급에 소속된 직원들의 기본급을 3%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성과보상제도를 시행할 때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인사고과에 따라 성과급에 차등을 둔다. 롯데백화점처럼 기본급을 삭감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특히나 대기업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를 도입한 사례는 드물다는 지적이다.

기본급 삭감되면 업적가급은 전액 삭감
퇴직금 감소 우려한 노동자 중간정산 요구까지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는 롯데백화점은 6개 수준으로 나뉜 인사평가와 5개 연봉등급을 연동해 임금을 지급한다. 최고 수준인 1수준은 최고 연봉등급 EX, 2수준은 G, 평균인 3~4수준은 AV, 5수준은 NI, 6수준은 UN등급이다. 등급에 따라 업적가급이 올라가거나 하향한다.

올해부터는 전체 직원 중 하위 10%의 기본급을 3% 삭감하기로 했다. 매달 나눠 받는 상여금 개념의 업적가급은 전액(100%) 지급받지 못한다. 최저 평가등급을 2년 연속 받아 UN 등급에 속하면 기본급이 5% 삭감된다. 롯데백화점 직원은 5천100여명 규모로 이번 제도로 약 500여명의 직원이 기본급이 깎일 것으로 예측된다.

연봉등급이 누적식인 것도 문제다. 한 번 삭감된 기본급은 내년 연봉등급에도 반영된다. 올해 기본급이 97%가 되면 내년 연봉은 올해 연봉의 97%부터 시작한다.

최영철 지회장은 “저성과자로 평가받으면 주요 보직을 주지 않아 인사평가 등급이 올라가기 어렵다”며 “사측은 최고등급의 보상제도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저평가자들의 임금은 계속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낮아진 기본급은 퇴직금에도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최근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하는 직원도 있는데 사측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자 의견 수렴 “사실상 기명투표로”

지회는 새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측은 지난해 11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새 연봉제도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찬성률은 94%로 집계됐다. 지회는 사실상 기명투표로 진행되면서 높은 찬성률이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 IP가 할당된 개인 컴퓨터에서 사번을 입력해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 중 일부는 연봉 인상 기회로 보고 찬성하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기본급 삭감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최 지회장은 “우리 백화점은 정년까지 채우는 비율이 높은데 현장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된 이들을 보면 다수가 장기근속한 40~50대 사원들”이라며 “사측은 정량평가를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번 제도 도입을 중년 사원들에 대한 ‘무언의 암시’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평가등급을 결정할 때 점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큰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롯데백화점 인사평가에서 1·2차 평가는 각각 팀장과 점장이 맡는데, 최종적으로 평가 수준을 결정하는 점장은 최대 2단계로 수준을 조정할 수 있다. 1차 평가에서 팀장이 평균등급에 해당하는 3수준을 부여한 사원이 2차 평가에서는 기본급이 삭감되는 5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성훈 부지회장은 “일선 팀장이 사원을 가장 잘 알 수 있는데 점장이 2등급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권한”이라며 “1명의 점장이 70여명의 사원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것도 무리”라고 주장했다.

복지제도도 지속적 축소
롯데그룹 계열사로 확장하나

롯데 계열사 노동자들은 백화점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로 기본급 삭감이 확장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은 롯데그룹 내 대표적인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이 운영한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을 비롯해 롯데마트·롯데슈퍼·롭스를 운영하고 자회사로 롯데홈쇼핑과 롯데컬처웍스(문화)·롯데하이마트를 두고 있다. 백화점 직원은 롯데쇼핑 소속 기업 중 연봉과 수당이 가장 높기 때문에 “시범시행 뒤 그룹사로 확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측은 새 평가제도 도입의 배경을 코로나19 위기라고 지목한다. 실제로 백화점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동기 대비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5%, 25.2% 줄었다. 그럼에도 영업이익은 흑자다. 롯데쇼핑사 전체를 고려하면 홈쇼핑과 온라인 시장에서의 매출 실적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다. 경영실적이 나쁘지 않은데도 사측이 코로나19를 구조조정 호기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회는 사측이 복지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악해 왔다고 주장한다. 롯데백화점은 장기근속자에게 지급하던 금 포상을 롯데상품권으로 지급하기로 해 지난해에만 약 20억원 정도를 절감한 것으로 추산된다.

업적가급(상여금)도 2015년부터 평가에 따라 지급 수준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이같은 흐름을 막기 위해 지난달 지회를 결성했다. 기존 노조가 사측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회는 이번 연봉평가제도 도입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으로 볼 여지가 있는지 다툴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폐기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도입하려던 성과연봉제에 대해 노조 조합원 절대 다수가 반대한 것을 근거로 무효 판결하기도 했다.

조혜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사번을 입력해 찬반투표를 진행해 직원들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할 수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전혀 보장하지 않을 만큼 위법했는지는 고민해 볼 지점”이라며 “연봉제는 임금 총액이 변동될 여지도 있어 노조가 임금협약으로 이번 삭감안을 상쇄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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