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산업에 대한 민간자본 개방확대와 에너지 공기업 상장계획을 밝힌 가운데 여야를 막론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비롯한 국민부담 가중을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전력공사조차 전기요금 인상을 걱정하고 있는데 산업자원통상부만 애써 부정하는 모양새다.

한전 연구보고서 “영국·미국 경쟁체제 도입 뒤 전기요금 상승”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27일 산자부와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한국석유공사 등 산자부 산하 공기업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이 이날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개한 기초전력연구원의 ‘해외 주요국가의 전력판매 부문을 둘러싼 정책동향과 시사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판매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모두 전기요금 상승을 경험했다. 해당 연구는 한전이 의뢰한 것으로 지난해 8월 작성됐다.

영국의 경우 경쟁 초기에는 전기요금이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2003~2011년 전기요금이 무려 97%나 상승했다. 미국 역시 규제완화(경쟁체제 도입) 직후에는 전력업체들이 요금할인제도를 시행했는데, 2002~2008년 규제완화 지역에서 전기요금이 44% 급등했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국전력회사단체(APPA)가 올해 4월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전기요금 인상을 우려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기준으로 전력판매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지역은 규제한 지역보다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kWh)당 2.5센트 높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져 지난해에는 3.4센트 차이가 났다.

산자부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정례브리핑에서 "전력판매시장 민간개방 확대가 전기요금 인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보면 요금이 하락한다”고 주장했다. 각종 연구보고서 결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윤 의원은 “에너지 요금폭탄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되는데도 정부가 실증적 근거를 통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앞서 도입한 국가들의 폐해가 드러났음에도 정부가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력판매시장 대기업 위주 재편될 듯
“교육·농업용 전기만 오른다”


전력판매부문 개방을 늘리면 전기유통이 수익성 높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전기요금 인상이나 취약계층의 피해가 필연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한전이 공급하는 전기 판매단가와 원가회수율은 용도에 따라 다르다. 2013년 기준으로 원가회수율은 일반(99.7%)·산업(97.9%)·교육(94.2%)·주택(89.6%)·가로등(87.8%)·심야(73.5%)·농사(35.1%) 순으로 높다. 예컨대 일반용과 산업용에서 수익을 내서 주택용이나 교육·농사용의 적자분을 메우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판매부문을 대기업에 개방하면 수익이 높고 대규모 시장이 형성된 산업용에 주력하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사회적 형평성이 무너지기 쉽다.

기초전력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소매경쟁을 실시하면 신규사업자의 경우 대부분 우량고객 중심으로 영업전략을 수립하게 된다”고 밝혔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이날 국회 산자위 업무보고에서 “민간기업의 (수익이 나는 쪽으로만 참여하는) 무임승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향후 정부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짤 때 민간시장에 농업·교육용 같은 분야에 전기를 공급하도록 할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매시장에 뛰어든 대기업과 전력을 공급받는 대기업 사이에 형성되는 일종의 담합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산업용 전기는 시장이 워낙 넓기 때문에 싸게 공급해도 이익이 크다. 전기를 공급하는 대기업이 같은 대기업에 파는 전기요금을 싸게 할수록 그 부담은 주택·교육·농사용으로 돌아가 전기요금 인상을 부채질하게 된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 판매시장에 뛰어드는 대기업들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싸게 팔지 않으면 사업에 나설 필요가 없다”며 “결국 대기업들은 더욱 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받게 되고 그 리스크는 중소기업이나 농민·서민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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