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채찍’이 부실화된 공기업을 구원할 수 있을까.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안의 핵심은 경쟁체제 도입이다. 이를 위해 전력·가스·발전정비·원자력 설계분야는 민간에 개방한다. 발전 5사 등 8곳의 공기업은 주식을 상장하거나 유상증자를 해서 민간지분을 확대한다. 공기업 주식상장에 대해 정부는 민간에 지분 20~30%를 넘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정부 지분은 51% 유지되니, “민영화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이를 ‘혼합소유제’라는 신조어로 에둘러 표현했다.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은 공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기·가스 분야 경쟁체제 도입은 새삼스럽지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전기·가스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했다. 발전 5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이 한국전력에서 분리됐다. 전력 판매마저 민간에 개방하려 했지만 노무현 정부시절 제동이 걸렸다. 공기업 민영화·사유화에 대한 노동계와 시민들의 반대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전기를 공공재로 판단해서다. 가스시장의 경우 소매분야는 이미 경쟁체제가 구축됐다. 한국가스공사는 도입·도매 분야만 전담하고 있다. 반면 에너지대기업은 한국가스공사를 거치지 않고 자가소비용으로 가스를 직수입해 왔다. 그간 에너지 대기업은 원유에 이어 가스 도매시장을 호시탐탐 노려 왔다.

전기·가스시장에 도입된 제한적 경쟁체제는 정부가 원했던 투명경영과 효율을 가져왔을까. 한국전력의 경우 발전회사가 분리된 이후 되레 역효과가 발생했다. 일종의 내부 경쟁체제였던 발전회사들은 밥그룻 싸움을 벌였다. 발전회사들은 발전연료 도입 과정에서 출혈경쟁을 거듭하면서 적자를 쌓았다. 5개 발전회사로 나눠지면서 고위 임원 자리만 늘었다. 발전 5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의 온상이 됐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발전 5사 경쟁체제 도입으로 인한 한국전력의 적자만 11조원에 달한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발전 5사 경쟁체제 도입으로 투명경영은커녕 부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전력과 발전 5사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떠맡아 부실을 더욱 키웠다.

그나마 저유가 기조가 유지되면서 발전연료 단가가 낮아져 한국전력과 발전 5사는 지난해 순이익을 내는 구조로 전환했다. 이것은 경쟁체제 효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저유가 혜택이었다. 낮아진 발전연료 단가와 요금인하는 연동되지 않았다. 결국 경쟁체제는 요금인하를 불러오지 못했다.

혹자는 전력시장에 완전경쟁 체제가 도입되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한다. 민영화 효과가 나타나는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이들이 강변하는 ‘늑대의 법칙’이다.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정글에선 강한 자만 살아남는데 공기업은 예외였다는 것이다. 공기업에게도 늑대의 법칙을 적용하자는 논리다. 경쟁채찍이 공기업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와 경쟁도입은 대량실업과 요금폭등, 그리고 공공성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누구나 누려야 할 전기·가스라는 공공재는 사유화되는 결과로 귀결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정전사태와 영국 전력대란은 민영화와 경쟁체제 덫에 걸린 대표적인 사례다.

분명히 에너지공기업의 막대한 부채는 이명박 정부 정책 실패로부터 비롯됐다. 원인이 이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키운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부실부터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정책실패를 바로잡는 데 소극적이다. 그저 전기·가스 공기업을 헐값에 넘기고, 경쟁체제로 내몰아 자신들의 책임만 면제받으려 하고 있다. 어차피 이명박 정부가 만든 부실이니 수건 돌리기처럼 다음 정권으로 넘기면 그만이라는 것인가. 정책실패는 공기업에 떠넘기고, 국민에게 전가하는 박근혜 정부의 기능조정안은 궤변일 뿐이다.

적어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실패를 바로잡는 것과 에너지공기업 민영화와 경쟁도입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민영화와 경쟁도입이라는 늑대의 법칙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에너지공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도 아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