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24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소속 완성차지부장들이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기훈 기자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그로부터 5개월여 지난 다음달 15일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였던 갑을오토텍 소송에 대한 대전고법 파기환송심 1차 변론이 열린다.

이날 변론에서는 정기상여금에 대한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다퉜던 관리직 출신 퇴직자의 소송도 진행된다. 명절상여금·하계휴가비 등 전·현직 생산직 295명의 복리후생적 급여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쟁점이었던 또 다른 사건의 변론기일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기상여금까지 청구권을 확대해 파기환송심을 준비하고 있다.
 

 


재직자 기준 '포기하거나 울컥하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다만 신의칙이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특히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임금항목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이 통상임금 기준으로 재직자 요건을 제시하면서 노동계의 입지가 위축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기도 인천의 한 제조업체 H기업 노동자들이 가입한 H노조. H노조는 올해 1월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이 나오자 지난해부터 준비해 온 통상임금 소송을 포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을 때만 해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부가 지침을 통해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고 밝히자 소송 계획을 접었다.

박아무개 위원장은 “회사 단협에는 퇴직자들에게는 정기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돼 있다”며 “이곳저곳에 자문을 구한 결과 승산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H노조와 같은 상황이면서 소송을 택한 곳도 있다. 유한킴벌리 노사는 지난해 11월 통상임금 소송 유보 합의서를 체결했다. 노조가 소송에 착수하지 않는 대신 노사 동수로 통상임금산정위원회를 구성해 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통상임금 범위를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의칙을 내세워 과거 3년치 소급분에 대한 추가임금 소송을 제한하자 회사측의 태도가 달라졌다. 노동부가 통상임금 지침을 발표하자 회사는 “근로기준법이 바뀌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논의테이블을 사실상 접어 버렸다.

신성태 유한킴벌리노조 위원장은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자고 요구하면 회사측은 ‘재직자만 정기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취업규칙을 들먹이며 노동부 지침과 대법원 판결문만 반복해서 읽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법원을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는 조합원 820여명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소장을 만들었다. 임금 청구금액은 300억원 가까이 된다. 신 위원장은 “임금·단체협상 진행경과와 회사측 태도를 지켜본 후 소송을 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곽 드러나지 않는 대기업 소송

정기상여금의 고정성 요건을 충족한 사업장은 노조가 소송을 확대하기도 한다. 노동자 10명이 대표소송을 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그렇다. 현대중공업 소송은 지난 17일이 4차 심리였는데, 사측 요청으로 연기됐다. 사측은 지난달 진행된 3차 심리에서 “노사 간 논의로 풀 생각이 없냐”는 판사들 질문에 거절의사를 밝혔다. 최근 노사협의회에서는 “소송을 취하하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송과 노사교섭을 동시에 진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문제는 소송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커졌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의 입장은 삼성전자나 LG전자처럼 양보를 하라는 뜻”이라며 “소송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대표소송을 제기한 2012년 12월 이전 3년치 소급분은 대표소송을 그대로 진행하고, 이후 추가임금 문제는 집단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소송에서 통상임금을 확대한 반면 복리후생성 급여는 포기한 경우다. 최근 지부는 2011년 7월 조합원 2만7천455명이 5개 복리후생적 급여에 대해 제기했던 집단소송의 내용을 변경했다. 복리후생적 급여를 빼고 정기상여금을 추가로 포함시킨 것이다.

현대차와는 달리 정기상여금 지급기준에 재직자 요건이 없어 고정성을 충족하고 있다. 반면 각종 수당은 재직자에 한해 주도록 돼 있다. 기아차지부의 소송은 이달 17일에야 1차 변론을 마쳤다.

현대차에서는 정기상여금의 고정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현대차의 상여금 지급 시행세칙에는 기준기간 내 15일 이상 일해야 지급하는 동시에, 퇴직자에게는 근무일수에 따라 지급하게 돼 있다. 시행세칙은 일정한 근무일수를 채워야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면서도, 퇴직자에게 일할지급한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본 대법원 판례와 충돌하고 있다.

23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현대차지부의 소송은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6차 변론이 예정돼 있다. 현대차지부는 소송자들의 임금청구액을 이날 제출할 예정이다. 임금청구액이 확정되면 소송에 속도가 붙어 빠르면 9월께 1심 선고가 나올 전망이다.

‘신의칙 적용’ 향방은?

향후 소송에서 이어질 또 하나의 쟁점은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노사가 명시·암묵적으로 합의하거나, 추가임금 지급이 회사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면 지나간 임금은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대로라면 9건 소송 중 2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국지엠 소송에 신의칙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지엠의 경우 생산직 노동자 5명과 사무직 1천25명이 각각 제기한 소송에서 2심까지 "정기상여금과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회사측은 노동자들의 소송제기가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최근 물량부족으로 군산공장·부평2공장에서 잇따라 휴업을 하고 있다. 사측은 2012년 회계연도에 통상임금 충당금 8천억원을 포함시켰다가 지난해 회계연도에 다시 환입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전개될 소송과 관련해 사측의 자신감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갑을오토텍은 노동자들이 2010년 소송을 걸자 통상임금 충당금 73억원을 2011~2013 회계연도 부채에 반영했다. 그러고도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단체협약에 통상임금 범위가 명시돼 있어 신의칙 첫 번째 요건에는 걸리지만, 두 번째 요건인 회사의 과도한 재정적 부담과 관련해서는 자유로운 셈이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김상은 변호사(법무법인 새날)는 “회사가 과거의 임금의 지불하더라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노동부 지침 따르는 하급심

통상임금 기준을 명시한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나온 판결에서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희비가 엇갈렸다. 부산고법은 올해 1월18일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가장 먼저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에다 노동부 지침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은 직업상담원들이 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소송이 신의칙을 위배한 것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것은 노사 간 묵시적 합의라고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청구액이 정부의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노사의 승패는 갈렸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크게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상은 변호사는 “노동부 직업상담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판결은 소송 당사자들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보면 신의칙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과 노동부 지침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동부 직업상담원 사건처럼 회사의 경영부담을 엄격히 제한한 판결도 상급심에 올라가면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갑을오토텍을 포함해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큰 경영부담이 없는데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신의칙을 들이미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하급심에서는 회사측의 경영부담을 이유로 함부로 신의칙을 적용하기 어렵지만, 대법원과 같은 상급심에서는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하급심 판결로는 통상임금 소송의 향방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통상임금 소송이 오히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학태 기자 / 김미영 기자

 

  올해 통상임금 판결 4건 … '고정성·신의칙'에 울고 웃었다

지난해 12월18일 이후 이달 20일 현재까지 다섯 달 동안 나온 통상임금 관련 법원 판결은 4건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법리를 수용한 첫 하급심 판결로 주목을 받은 곳은 부산고법이었다. 부산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문형배)는 올해 1월8일 대우여객 노동자 46명이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대우여객은 1년 이상 근속자에 한해 월 만근임금(기본급+연장·야간·주휴수당)을 기준으로 1년에 380%의 정기상여금을 분기별로 분할 지급해 왔다. 회사 임금협정은 “상여금은 지급일 기준 현재 재직자에 한한다”는 내용과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근무하지 않고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월에 대해서는 해당 월분의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재직자 기준’ 논리는 하기휴가비와 명절상여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대법원은 올해 2월 금속노조 KEC지회 양아무개 조합원이 “파업 중인 이유로 지급하지 않은 휴가비를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단체협약에서 지급기준일 현재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하기휴가비 및 설·추석상여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퇴사자에게는 전혀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기상여금의 요건이 되는 고정성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달 14일과 18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 각각 나온 하급심 판결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지방노동청의 고용센터 직업상담원 92명이 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청구소송에서 “노조의 통상임금 소급청구가 신의칙을 위배한 것”이라는 노동부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추가 청구임금의 합계는 3억5천만원 가량으로 정부의 재정능력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한 재정적 부담으로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법규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책임지는 정부는 사기업과 달리 신의칙 위배 문제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는 인천국제공항 경비용역업체 건은사에서 일하는 강아무개(36)씨 등 199명이 “근속수당 등을 포함해 통상임금을 다시 산정해 달라”며 사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18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근속수당·식대 등은 근로의 대가이자 정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매월 일정액을 수당으로 주는 포괄임금 약정을 부정한 판결이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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