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통상임금 의제에 관한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참석한 김준영 한국노총 전략기획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입법화냐 노사자치냐. 10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통상임금 입법화를 위한 공청회에서는 이 같은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입법화를 통해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선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과, 임금항목 복잡성으로 인해 통상임금 범위를 법률로 규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여야 의원도, 노동문제 전문가들도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속 시원한 해답을 찾는 데 실패했다.

"임금구성 항목 복잡 … 법률에 의한 일률적 규정 어렵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노사자치에 무게를 실었다. 이철수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임금구성 항목이 복잡하기 때문에 통상임금 범위를 법에 일률적으로 규정하기가 힘들다"며 "노사자치적 해결을 유도하는 제도를 두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에 이른바 ‘개방조항’을 신설하자는 제안이다.

이 교수는 “예컨대 전국적·지역적 차원의 산업별·업종별 단체협약을 통해 통상임금 범위를 정하면 이를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법에 신설하자”며 “산업과 업종의 다양한 현실이 반영된 구체적이고 타당한 해법을 노사가 스스로 찾게 함으로써, 임금체계의 표준화·통일화를 진작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산업 횡단적’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최근 임금체계 개편 논의에는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다”며 “노동시장의 이중화에 따라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하더라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임금격차가 큰데,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 간에 횡단적으로 적용가능한 표준적 임금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의원 중에는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입법론적 해결방안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의원은 “지금까지 법은 그대로였는데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지침 때문에 통상임금 논란이 계속됐다”며 “그렇다면 현재 시행령에 있는 통상임금 정의규정을 근로기준법에 올리는 방식의 입법적 접근을 하더라도, 과연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선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최근 노동부가 제안한 이른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네거티브(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항목을 열거)를 하면 사용자들은 최대한 많은 임금항목을 포함시키려 하고, 포지티브(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을 열거)를 하면 최대한 빠져나가려 할 것”이라며 “이 역시 입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네거티브 방식에 대해서는 민주노총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임금은 각 사업장별로 매우 다양하게 형성돼 왔기 때문에 명칭은 물론 그 성질에 있어서도 ‘나열하는 방법’으로는 무수히 다양한 사업장별 임금항목을 포괄할 수 없다”며 “포지티브하게 나열하든, 네거티브하게 나열하든 다시 해석상의 논란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고, 사전 확정성이나 법적 안정성을 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분쟁 증가 … 입법화로 혼란 막아야"

노동계는 입법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무게를 실었다. 김준영 한국노총 전략기획본부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통상임금 관련 분쟁을 정리해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분쟁이 증가했고, 노동부가 내놓은 노사지도 지침은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을 둘러싼 논쟁을 확대시켰다”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통상임금 범위가 줄어드는 근로조건 불이익변경이 사용자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해결하지 못한 노동시장의 혼란을 해소하려면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 정의규정을 명확하고 단순하게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창근 정책실장도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 정의를 추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실장은 “현재 판례로 형성된 정기성·일률성·고정성 같은 해석상 논란이 있는 통상임금 개념요소를 전부 배제하고, 그야말로 ‘소정근로시간에 일하면 받을 수 있는 임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해 해석상의 논란을 없애야 통상임금의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입법론에 힘을 실었다. 심 의원은 “개방조항을 도입하자는 이철수 교수 제안은 오히려 노사 간 분쟁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며 “이미 20년 넘게 통상임금 관련 판례가 축적된 상황에서 판례법리의 변화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입법적인 결단을 통해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심 의원은 “민주적 노사관계가 정착된 사회라면 통상임금에 대한 결정권을 노사에 맡기면 되겠지만, 노사갈등이 심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노사자치주의를 강조하는 해결방안은 더 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대법원 판례를 최저선으로 삼아 입법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1임금지급기' 집착하는 경영계

경영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효력이 사라진 ‘1임금지급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동응 한국경총 전무는 “2012년 3월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에 대한 통상임금성을 판단하기 전까지 산업현장에서는 노동부의 예규에 따라 1개월이 넘는 기한마다 지급되는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며 “사업장 노사의 이 같은 신뢰와 관행은 존중돼야 하며, 통상임금 정의규정에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통상임금 정의규정에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과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넣자는 제안이다. 이재광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역시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 범위에서 제외하도록 법에 명시해 해석상의 논란을 최소화하고, 업종별·기업별 다양성과 특수성을 감안해 노사자율 합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계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동안 누적된 판례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돼 제도화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철수 서울대 교수는 “법원은 90년대부터 1임금지급기가 통상임금의 속성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고,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를 재확인했다”며 “입법과정에서 경영계의 주장은 수용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경영계가 1임금지급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비용문제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1임금지급기가 무력화됨으로써 1개월을 초과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됨에 따라 기업 입장에선 부담할 비용이 커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더라도 임금상승 요인이 1~2%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분석한 결과 임금인상 효과는 최대 1.2%로 집계됐다"며 "300인 미만 사업장은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더라도 임금인상 효과가 0.8%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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