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노동계의 우려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진일보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일자리 중심의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삶의 질을 올린다는 의미) 구호를 중심으로 고용률 70%·정년연장·공공부문 상시업무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노사관계 부문에서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노동계가 요구한 복수노조 및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개선도 노사정위를 통해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19대 총선 이후 꾸려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기대를 모았다. 노동계·학계·정치권의 내로라하는 노동 전문가들이 집중 포진했기 때문이다. 환노위 여야 의원들은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올해 4월 임시국회에서 환노위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개정했다. 파견노동자의 차별시정 효력을 확장하는 내용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초기 대응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개정하고, 화학물질에 대한 업체의 안전책임을 강화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도 제정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말 잘 통하고, 여야 의원끼리 친하다던 환노위는 6월 임시국회를 빈손으로 마무리한 뒤 사실상 식물 상임위로 전락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환노위 여야 간사인 김성태(55) 새누리당 의원과 홍영표(56) 민주당 의원은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최근 환노위 상황에 대한 갑갑함을 토로했다. 박근혜 정부 1년 노동·노사정책을 되돌아보고 내년을 진단하기 위한 자리로 준비된 좌담회는 '오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홍 의원은 "노조설립 등 노동기본권 문제로 정부·여당과 충돌하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청와대가 국정운영을 주도하면서 환노위 여야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앞으로 청와대 입장 상관하지 말고 우리끼리 잘해 보자"고 말했다.

좌담회는 지난 22일 오전 국회 홍영표 의원실에서 진행됐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본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김성태 "고용정책 부진·노사관계 경직 … 마음 무겁다"
홍영표 "박근혜 정부 고용률·노사관계 정책 참담한 수준"

배규식 : 정권 첫해는 노사관계·노동정책의 틀이 형성되는 시기다. 국회는 입법을 통해 틀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일을 한다. 1년이 지나가는 지금 시기에 지난해 대선에서 제기된 공약과 올해 발표된 고용률 70% 로드맵 등을 살펴보면 정권의 노동정책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성태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사관계와 고용창출 연계 청사진을 내걸었지만 잘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고용률 70% 로드맵도 어렵게 나왔지만 현실과 뒤떨어지는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사관계 전반도 과거 정부보다 경직됐다. 노동시장 역시 고용의 질이 좋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집권당 환노위 책임자로서 마음이 무겁다.

고용률 70% 정책과 관련해 질과 양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솔직히 우려가 크다.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고용률 70%라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홍영표 : 이명박 정부와는 다르지 않겠나 기대했는데 너무 실망스럽다. 고용률 70% 로드맵을 내놓았지만 세부적으로 내용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숫자만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노사문제는 전국교직원노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단결권 문제마저 무시하면서 법외노조로 내몰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사관계에 대한 철학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나. 참담한 심정이다.

배규식 : 고용률 70% 정책을 짚어 보자. 목표가 괜찮은 것 같다는 부분에서는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것 같은데.

김성태 : 정부 정책의 핵심은 근로시간단축을 통해 늘어나는 일자리를 양질의 시간선택제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간제 정책만으로는 고용률 70% 달성이 어렵다. 고용률은 중장년층 고용을 안정되게 만드는 정년연장과 시간제 확충이라는 두 축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여당도 많은 고민이 있다. 도시의 경력단절여성이나 서비스·사무직에는 일부 적용할 수 있지만 산업 전반적으로 확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 민주당이 근로시간단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가 최근 나왔다. 근로시간단축에 대해서는 여야가 상당한 교감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당혹스럽다.

홍영표 :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240만개의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 이게 과연 가능한 목표인지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한다. 실현가능하다면 여야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하지만 고용시장 양극화가 심각한 상태에서 저임금 파견·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한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질 낮은 일자리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시간제 일자리만 확충해서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되는 정책이다.

세계 최장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1주일을 5일이라고 우기면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1주일을 7일이라고 정상화시키면 된다. 민주당도 근로시간단축법을 내놓기는 했지만 사실 논리적 모순이 있는 법이다. 이미 현행법은 1주일 근로를 40시간으로 정하고 연장근로를 포함해 52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근로시간단축법을 만든 것이어서 우리도 난감하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1주일이 7일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현행법을 집행하면 된다.

배규식 "노동시장 이중화·양극화 극복할 고용시스템 개편작업 공유해야"

배규식 : 최근 민주당은 노사관계 이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당이 노동시장 이중화·양극화 개선을 위한 포괄적인 고용시스템 개편작업을 공유하는 모습이 필요할 것 같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고용시스템으로 개편하기 위해 대기업·공공부문에 쏠려 있는 정부 정책을 개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태 : 국회 여야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도 암울하다. 그렇지만 환노위만은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시간단축을 논의하고 관련법을 처리했으면 한다.

고용유연성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대신 임금·복지·삶의 질에 관한 부분은 차이를 줄여 주는 특단의 방안을 환노위에서 논의하고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은 전교조·현대자동차 사태·쌍용자동차 복직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도 해결의지를 갖고 협조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노사관계가 경직된 것이 있다면 풀어 가고, 고용시장 차별 문제도 여야가 뜻을 모아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영표 : 사실 김 의원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의원들과도 이야기가 잘된다. 많은 현안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성과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청와대가 국정운영을 꽉 쥐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힘이 없고, 여당도 집권당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김 의원도 갑갑할 것이다.

김성태 : 앞으로 청와대 입장 개의치 않을 테니 우리끼리 잘 논의하자.(웃음)

배규식 : 유례없이 치열한 여야 대치 국면에서 국정감사를 진행했는데.

김성태 : 고용률 70%·근로시간단축 등 노동정책을 점검·진단하는 국정감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여야 대치 분위기가 상임위까지 퍼진 탓이다. 정쟁으로 내실 있는 상임위 국정감사를 하지 못했다.

홍영표 : 박근혜 정부에서 노동부는 힘이 없다. 전교조 사태도 청와대 지시로 불거진 것이라는 데 다들 동의한다. 야당이 아무리 지적해도 노동부가 권한이 없으니 답변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러니 국정감사가 맥이 빠져 버린 것이다.

홍영표 "전교조 사태 등 해결 안 되면 정기국회 원만한 진행 어렵다"
김성태 "노사관계 개선 문제에 당 나설 것 … 일하는 상임위 만들자"

배규식 : 자연스럽게 노동현안으로 넘어가고 있다. 때로는 정치권이 노사 당사자들이 못 푸는 문제를 도와줄 수도 있다고 본다. 쌍용차·현대차·전교조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하지 않나. 갑갑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김성태 : 민주당은 노사관계 이슈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인식을 전환해야지만 여야가 머리를 맞댈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이해한다. 앞으로 정부가 노사관계 문제의 정책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가져간다면 새누리당에서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노사관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홍영표 : 환노위에서는 여야 인식이 많이 접근해 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 사태와 같은 걸림돌이 밖에서 생겨나고 있다. 청와대에서 날아온 짱돌이 환노위를 마비시킨 셈이다. 일자리 등 노동정책을 두고 여야가 고민하고 정책대안을 찾아 법안을 만드는 것이 환노위의 주요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런데 전교조·공무원노조 사태 등 단결권 문제를 두고 충돌이 벌어져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다. 정부·여당에 제발 사정하고 싶다. 정기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새누리당이 노동기본권 사태를 해결하는 데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법안 논의가 원만히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김성태 : 여야 대치 정국이 계속되면서 국회 안에서 논의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문제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진 현안도 있다. 다른 상임위는 정쟁과 파행이 있더라도 환노위는 내년도 노사관계에서 불거질 우려가 있는 쟁점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를 좋게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큰 타협을 했으면 좋겠다.

홍영표 : 노동기본권 문제만큼은 해결하는 환노위가 돼야 한다. 후진적인 사태가 해결된다면 일자리 정책에 대해 여야가 서로 고민하면서 대안을 찾아 나갈 수 있다. 민주당도 경제민주화를 통해 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창출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대안을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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