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됐다. 정부는 현행대로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하위 70% 이하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가입기간에 따라 매월 최소 10만원, 최대 2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에 장기간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을 적게 받는 구조다. 대선공약 후퇴와 국민연금 성실가입자 역차별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연금 20년 가입하면 10만원=정부가 26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발표할 기초연금 최종안은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시행시기는 내년 7월부터다.

정부안에 따라 소득상위 30%를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하면 2014년 기준으로 191만6천명의 노인이 혜택에서 배제된다. 국민연금 미가입자와 국민연금 장애·유족연금 수급자는 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최대 20만원을 보장하되, 가입기간이 길수록 커지는 A급여(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개념)에 비례해 기초연금이 줄어든다. 2014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이 12년 미만이면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2년이 되면 19만1천원으로 줄어들고 20년 이후는 현행대로 10만원만 받는다.

◇세대 간 갈등 조장 논란=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기초연금 지급대상인 소득하위 70%의 노인 중 90%가 20만원을 받을 수 있고, 95%는 15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정부 안은 대폭 삭감된 국민연금 급여를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기초노령연금 도입취지에 배치된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소득 대비 연금액을 의미하는 소득대체율은 올해 47.5%다. 2028년에는 40%까지 줄어든다. 기초노령연금법 부칙에는 기초연금을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A급여의 10%(현재가치 기준 20만원)까지 인상하도록 돼 있다. 현재 50세 이하 청장년세대가 65세가 될 때를 대비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은 이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안은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며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성실가입자를 차별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대통령은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노동자들을 역차별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적연금 지출비중 축소=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한정된 재정여건에서 모든 노인에게 동일한 기초연금액을 보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국민연금과 연계하면 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가입률이 증가하면 기초연금 지출 증가속도가 둔화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복지부는 2040년이 되면 현행 기초노령연금을 유지할 때 발생하는 111조6천억원보다 10조원 이상 줄어든 99조8천억원의 재정만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은 노후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4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비중은 6.4%다. 현행 체제를 유지할 때 지출비중(6.6%)보다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10.8%)이나 유럽연합(EU) 회원국(11.2%) 수준을 훨씬 밑돈다. 재정안정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공적연금 비중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이유로 공약을 후퇴시키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며 “노후에 대한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증세 없이 복지 없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만큼 지난 정부부터 추진된 부자감세 정책을 철폐하고 세수를 확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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