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최강서 열사 정신계승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부산역에서 집회를 마친 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죽음이 노동자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살인 같은 해고로 쫓겨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꿋꿋이 버텨 온 노동자들도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한 번의 정리해고를 겪고 복직한 서른다섯 살의 젊은 노동자가 지난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5년을 또 … 못하겠다"고 썼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나쁜 생각해서 미안하다"면서도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힘들다"고, "슬프다"고, "죽는 것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가 죽고 닷새 만에 3명의 노동자가 또 죽었다. 27일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이상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대선 이후 박근혜 당선자가 취임하기도 전에 하루에 한 명씩 노동자가 죽어 가고 있다”며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노동자의 죽음이 박 당선자와는 아무 상관 없다’며 내빼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최강서 동지를 보낸 것이 가슴 아프지만 싸우지 않는 우리 모습이 더 가슴 아프다”고 투쟁을 호소했다.

이달 25일 출소한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도 고인의 빈소에 조의를 표하고 집회에 참석했다. 정 전 의원은 “고통스럽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희망버스 때도 봤듯이 우리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어 왔다”며 “한진중공업 노동자를 위한 정치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참가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김혜경(31)씨는 “희망버스에 참가한 적도 없고 고인과 일면식도 없지만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파 부산까지 왔다”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1천여명은 고인의 빈소인 영도구민 장례식장을 거쳐 한진중까지 행진했다. 한진중은 이달 21일 고인의 사망 이후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간부들의 노조사무실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 사측은 특히 “(최강서씨의 자살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혀 비난을 사고 있다. 그동안 사측이 지회 간부들에게 출입증을 내주지 않아 주민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은 뒤 노조사무실을 출입했는데, 고인이 목을 매 숨진 이후에는 이마저도 막아 버린 것이다.

박성호 지회 부지회장은 “회사가 파업기간에 불법적으로 대체인력을 쓰고 그 돈을 물어내라며 270년간 조합비를 모아야 하는 돈 158억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했다”며 “그것도 모자라 지난주에는 지회에서 운영하는 소비조합과 신협을 폐쇄하고, 지회사무실마저 문을 닫아 버렸다”고 비판했다. 박 부지회장은 "이번 대선을 정권교체로 몰아가며 거품을 만들었던 정치인들이 멘붕을 외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며 "석고대죄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수습할 때 노동자들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기훈 기자
"이명박 정부 5년을 절망 끝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들이 버틸 힘을 잃고 떨어져 죽어 가고 있어요.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희망이 없어져 버린 거죠."

27일 오전 고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영도구민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진숙(52·사진)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잇단 노동자 죽음의 원인으로 '절망'을 지목했다.

고인은 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매달려 삶과 멀어지려 했을 때 억지로라도 밥을 떠밀면서 야단을 치던 사람이었다. 김 지도위원의 성격을 잘 아는 나이 많은 선배들이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젊은 그는 크레인으로 쫓아가 당장 밥 숟가락을 들라고 소리쳤던 사람이었다. 세상이 그런 사람을 앗아 갈 만큼 절망스러워진 것이다.

"절망이 제일 큰 원인이었던 같아요. 노동3권이 내동댕이쳐지고 최소한의 저항수단이었던 파업권은 복수노조로 무너져 내렸지요. 경영상 이유와 무관하게 정리해고가 악용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도 쌍용자동차 사례가 보여 주듯이 바로잡는 과정이 없어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철탑 위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겠어요."

김 지도위원은 "시대교체를 내걸고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당선자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제 목숨을 내놓는 사태에 대해 그 절망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박 당선자가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치권이 가시적인 조치를 서둘러 내놓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대선 이후 첫 국회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현대차 대법원 판결이 이행되도록 지도하고, 한진중공업 노사의 합의가 지켜지도록 한다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갖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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