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간부로 일하다 해고된 뒤 투신자살한 고 이운남씨의 영결식이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앞에서 울산노동자장으로 치러졌다. 지회 사무실이 가까운 공장 앞 도로에서 노제를 지내던 유족이 울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거요?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거죠.”

대통령선거 다음날인 지난 20일 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내뱉은 말이다.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실제 23명의 동료 노동자와 가족이 정리해고 트라우마로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그는 “멘붕이 오래갈 것 같다”면서도 “철탑 위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하지만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그의 바람이 무너지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다음날에는 이운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가 19층 높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성탄절인 25일에는 이호일 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맸다.

이들은 모두 노조간부를 지냈고, 하나같이 해고와 생계난을 겪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이들의 밥줄을 끊어 버렸다. 한진중은 지난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한진중지회에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04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뒤 해고된 이운남씨는 그 뒤 다시는 조선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국외대는 단체협약 해지와 조합원 가입범위 축소에 반발해 2006년 파업을 벌인 이호일씨 등을 해고하고,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법정 소송을 3년이나 끌었다.

최강서씨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 못하겠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정권 바뀌면 자신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던 이들이 겪었을 좌절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노동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노동자가 쓸쓸히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정치권에 각성을 촉구했다.

죽음의 단초를 제공한 정치권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뒤 첫 공식일정으로 경제행보를 택한 박근혜 당선자는 ‘국민대통합’을 강조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긴급 소집될 가능성도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노동계는 한파처럼 불어닥친 열사정국을 맞아 겨울투쟁에 나설 태세다.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노총은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를 하고, 내년 1월1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투쟁사업장 문제해결을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2월23일에는 주요 도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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