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임원직선제'라는 화물을 실은 민주노총호가 표류하고 있다. 선원 모두의 동의로 화물을 선적했지만 짐을 내릴 항구는 어디인지, 언제까지 운반해야 하는지, 어느 항로를 이용해야 하는지 선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암초를 만나 배가 좌초하기 전에 일단 화물을 내려놓자는 의견, 선장을 바꿔 최단 시일에 항구로 들어가자는 의견, 실어선 안 될 화물을 실었으니 출발지로 돌아가 새로운 화물을 싣자는 의견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공이 넘쳐나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선원들 간 합의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임원직선제 논의가 뜨거운 감자다. 김영훈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준비부족 등의 이유로 직선제 유예안을 제출했다. 이어 같은달 26일 대의원대회에 2016년 임원선거부터 직선제를 적용하자는 내용의 규약개정안을 상정했지만 성원부족으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연말로 예정된 직선제 집행을 못한 데 따른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오는 30일 열리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임원직선제 유예안을 논의한다.

이와 관련해 <매일노동뉴스>와 민주노총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임원직선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김승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김태연 노동전선 집행위원장·정광진 좌파노동자회 공동대표·김용식 민주노총 경북본부 사무처장이 패널로 참가했다. 박운 매일노동뉴스 편집국장이 사회를 봤다. 임원직선제 토론회를 요약해 지상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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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직선제는 민주노총 조직혁신 과제인가

사회 : 민주노총 집행부가 직선제 유예안을 대의원대회에 제출했고 김영훈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먼저 직선제가 민주노총 조직혁신 과제인지부터 살펴보자.

김영훈 : 민주노총의 위기와 고질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직선제가 제기됐다. 과도한 정파 간 갈등, 이것이 선거를 통해 증폭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했던 점 등이 직선제 요구의 배경이었다. 민주노총이 단일노조나 산별처럼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에서 보면 직선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산별강화를 통해 산별의 자율성과 투쟁을 잘 조정하고 조율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원칙적으로 불일치가 나타난다. 조합원 참여를 통한 지도부 구성이라는 직선제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선거로 인해 패권주의 확산을 공고히 할 우려가 있다. 끝으로 선거 하나를 치르기 위해 조직의 모든 역량을 투여하는 모순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유예안을 제출했다.

김태연 : 직선제가 혁신이냐 아니냐는 문제는 처음 논의될 때부터 얘기가 있었다. 민주노총은 다른 나라와 달리 출발부터 한국에서의 노동자 계급투쟁의 구심으로 만들어졌다. 지금도 힘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른 나라의 내셔널센터와 민주노총을 비슷한 성격으로 봐선 안 된다. 그 나라가 직선제 안 한다고 해서 우리가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직선제가 정파갈등을 해소하자고 제기된 것도 아니다. 핵심적인 것은 민주노총 사업에서 조합원들의 참여가 요청되고 있고, 그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직선제라는 과정을 통해 조직을 점검하자는 것이다. 직선제 준비 과정에서 조합원 명부 파악이 잘 안 됐다. 지금 직선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조합원 중심의 조직 운용이 어렵겠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직선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혁신과제다.

신인수 : 혁신과제인 것은 맞지만 지금 현재는 아니다. 상반기를 뒤흔들었던 통합진보당 사태를 돌아봐야 한다. 통진당의 선거제도는 보수정당보다 민주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게 됐나. 준비되지 않고, 잘하지 못하는 걸 할 경우에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직선제가 혁신과제가 되려면 인적·물적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조합원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또 투표구 선거관리위를 구성해야 하고, 선거인명부를 확보해야 한다. 선거관리 투명성이 담보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왜 우리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광진 : 직선제는 민주노총 조직혁신을 위한 전제다. 이미 98년부터 조직 내 민주주의 강화와 현장 투쟁력 복원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기풍을 세워 내는 방향으로 직선제가 논의됐다. 2006년 조준호 집행부에서 2007년부터 시행하자고 했다. 지금 6년이 지났다. 직선제 실시를 위한 섬세한 준비가 안 돼 왔던 것이다. 3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김영훈 위원장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렵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직선제는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민주노총 중심으로 세우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됐다. 인적조건을 갖추기 위해 김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목소리 듣기 위해 얼마나 현장을 돌았나. 도입을 위한 활동을 게을리 한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김승호 : 과거 어용노조 민주화를 말할 때 핵심요구가 직접선출이었다. 왜 그랬나. 기존 집행부가 어용노조였기 때문이고, 그런 어용노조를 뒤집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합원이 주인이 되는 방식이 직선제뿐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왜 직선제만 고집해야 하나. 이전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만장일치로 가결했지만 산하 어느 조직도 이를 중요한 과제로 여기지 않았다.

민주노총 과제가 3년에 한 번 선거한다고 해소되겠나. 수적 우위로 모든 걸 판단하는 게 선거다. 그간 민주노총 파행을 보면 대부분 투표 과정에서 발생했다. 소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서다. 다수가 이를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를 치르기 위한 노력으로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지는 못한다.

김용식 : 민주노총 각 조직은 조직질서와 조합원 편제가 다르다. 내용의 불일치를 억지로 꿰맞추면 형식적인 직선제만 남고 내용은 사라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건설을 뒷받침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뒷받침하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직선제를 채택하면서 조직혁신방안이 제출됐는데,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포함됐다. 그런 과제가 지금 다 사라졌다. 이런 문제가 거론되지 못하고 직선제 문제만 거론되는 게 오늘날 민주노총의 현실이다.

"위원장 사퇴했어야" … "선거제도 설계, 비대위 일 아니다"

사회 : 집행부가 제출한 유예안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영훈 : 솔직히 직선제를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닌지 고민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해법은 설계했던 제도를 시간만 3년 유예하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전 조직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절대다수가 합의하는 새로운 선거제도가 나올 수 있다. 유예안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

김태연 : 직선제 유예를 생각했을 때 바로 위원장직에서 사퇴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빠른 시일 내에 직선제를 치를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했다. 지금도 늦었다. 통합집행부를 구성해도 어렵다. 현재 통합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형식은 비대위다. 내년 상반기까지 비대위를 중심으로 직선제를 준비해야 한다.

김용식 : 현재 규약과 규정에 의해 준비되는 직선제는 폐기되는 게 맞다. 어느 조합원까지 투표권을 부여할 것인지, 의무와 권리를 다하지 않은 노조에 부여할 것인지 조직 내 합의가 안 돼 있다.

신인수 : 비대위 구성 취지에 공감하지만 시기상조다. 대선 이후 민주노총은 대정부 교섭을 벌여야 하는데, 비대위는 교섭력이 약하다. 지금 집행부가 잘하고 예뻐서가 아니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광진 : 직선제가 유예되면 조합원 명단을 확보하는 활동 자체가 닫혀 버린다. 선거인명부 확보는 시간적 여유와 집행을 담보해 나가는 것으로 보충해 나갈 수 있다. 직선제가 불가능하니 이 모든 것을 접자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직선제로 조직 내 부패한 것들을 들어내자. 그래야 치유된다. 조합원들을 상대로 의사를 물어 나가는 최소한의 노력도 엿보이지 않았다. 답답하다.

김승호 : 법률적으로 민주노총 산하 조합원 모두에게 균질적으로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했고,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이해하지 않으면 직선제를 둘러싼 논쟁은 이념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 어려운지와 직선제가 가져올 후과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3년간 준비하자" vs "내년 상반기 시행"

사회 : 직선제를 유예하고, 3년간 준비하면 시행할 수 있나. 3년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프로세스를 설명해 달라. 반대로 내년 상반기에 즉시 시행하자고 하는 쪽은 구체적인 방안을 말해 달라.

김영훈 : 조합원들의 직접참여 보장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들의 투표도 유력한 방안이다. 선거인단 제도도 생각할 수 있다. 승자독식의 구조를 바꿔 득표순으로 권위를 부여해 통합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방안도 있다. 연방제처럼 운영되는 민주노총에서 직선제를 하자는 불일치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광진 : 현 집행부가 물러나면 구성될 비대위에 직선제 실시에 동의하는 제 단위가 참여해야 한다. 그 비대위는 민주노총에서 검토했던 직선제 실무적 요소를 보강하고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면 내년 상반기 중에는 실시할 수 있다. 산하조직의 다양한 선거방법은 큰 원칙 위에서 포괄할 수 있다.

김태연 : 현 집행부에 책임이 있다. 모바일 투표만 준비하다 문제를 발견하고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직선제 문제로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된다는 것 자체로 각급 조직과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신인수 : 지금 조합원들이 바라는 비대위가 직선제 비대위인가. 아니다.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특수고용노동자의 기본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위한 비대위라면 모르겠다. 직선제를 실시하려면 조합원을 만나는 사업을 장기간 전면적으로 펼쳐야 한다. 비상근 선관위도 상근으로 바꿔 책임지고 직선제를 실시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김용식 : 시행하지도 못할 규약과 규정을 정리해 놓고 집행부에게 시행하라는 것 자체가 문제다. 무조건 하면 된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이 모양이다. 정말 직선제 시행을 원한다면 규약과 규정부터 원점에서 검토하고, 실시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승호 : 일단 시행부터 한 뒤 문제가 발생하면 고친다는 자세로는 선거를 못 치른다. 사전에 발생가능한 사안을 검토해서 답안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마다 선거 절차와 관행이 다르다. 서로 합의해야 한다. 직선제 추진 과정에서 제기된 과제를 두고 제 세력이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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