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선동가(right-wing populist)를 뽑으려 합니까?" 오는 12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지도부 직선제를 두고 남아공 노조간부가 한 말이다. 노조 민주주의 확대, 노동자 통제 강화, 노동운동 혁신이라는 논리로 직선제를 추진 중이라고 하니, 주저 없이 정반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리고는 좋은 지도부를 뽑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직적으로 훈련되고 검증된 유능한 현장간부들을 노총 대의원대회에 파견할 수 있는 민주적인 시스템을 꾸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노총 의결기관과 실무기관의 구성과 운영은 엉망인데, 지도부만 직선제로 뽑는다고 노조 민주주의가 되냐는 것이다.

직선제 하는 노총 없어

남아공 최대 노총인 조합원 180만명의 코사투(COSATU)의 경우 산하 산별노조에서 조합원 750명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해 3년마다 열리는 전국대의원대회에 파견한다. 여기서 노총 위원장·부위원장·회계감사·사무총장·사무차장을 뽑는다. 세계 어디에도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노총에서 지도부를 직선으로 뽑는 경우는 없다. 사실 산별노조에서조차 지도부 직선제는 드물다.

남아공 최대 산별노조 중 하나인 조합원 26만명의 남아공금속노조(NUMSA)도 지도부를 자체 대의원대회에서 뽑는다. 현장 지부에서 300명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해 4년마다 열리는 대의원대회에 파견하여 위원장·부위원장·회계감사·사무처장·사무차장을 선출한다. 조합원 35만명의 스웨덴금속노조(IFMetall)는 3년마다 열리는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를 뽑는데, 대의원수는 300명에 불과하다. 200년이 넘는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노총 위원장을 산하 가맹조직 조합원의 직선으로 뽑지 않는 이유는 노총 위원장 직선제와 노조 민주주의가 상관없기 때문이다.

노총은 산별노조나 산별연맹 등 가맹조직들의 연합체다. 개별 조합원들은 산별노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노총에 속한 것이지, 노총에 직접 가입한 게 아니다. 조합원들을 위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단체교섭을 진행하며, 산업정책을 개발하는 주체는 산별노조이지 노총이 아니다. 노조 민주주의의 핵심은 일터에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도록 노조의 공식적인 현장조직을 튼튼히 하고, 교육·조직·교섭 등 일상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대의원대회 등 각급 의사결정 단위를 활성화해 현장 조합원들의 뜻이 소속 산별노조의 사업과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의원대회·소위원제도·교육위원회·산안위원회 같은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현장조직을 활성화하고, 여기에 조합원의 참여를 끌어내는 게 급선무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현장활동이 정체된 현실은 노총 위원장을 평조합원들이 직선으로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실 민주노총 운동의 혁신과 위원장 직선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직선제 위한 조직력과 실무력은?

노총 위원장 직선제가 노동운동의 원리나 노조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느냐는 질문과는 별개로, 과연 민주노총이 위원장 직선제를 치를 능력이 있는가도 솔직하게 고민할 문제다. 상근자 급여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재정상태에서 선거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산하 산별노조조차 어려움을 느끼는 선거인명부 작성과 검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관리를 책임질 선거관리위원회를 각급 단위에 효과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가.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불거졌듯이 현장투표와 모바일투표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개표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보장할 수 있는가. 부정·부실 선거에 대한 엄정한 기준과 현실적인 대책이 있는가. 경선으로 선거가 과열될 경우 결과에 승복하는 조직문화와 자정능력을 갖고 있는가. 재투표를 실시해야 할 경우 대책은 있는가.

선거인명부 같은 실무 준비에서 자정능력 같은 조직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평가가 부정적인 상황에서 몇 년 전 대의원대회의 결정사항이라는 이유만으로 위원장 직선제를 밀어붙이는 행위는 조직적으로 무책임하며,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운동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다.

정치 제도 측면에서 직선제든 간선제든 모든 선거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성격을 갖는 동시에, 불평등하고 귀족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어쨌든 나를 대신할 대표를 뽑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노총 조직이 갖는 특성을 고려할 때 민주노총 직선제는 전자보다는 후자, 즉 조직과 지도부의 불평등하고 귀족적인 성격을 강화시킬 게 자명하다. 과연 민주노총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