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할 태세다. 개정법이 왜 그대로 공포·시행돼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주장을 싣는다. <편집자>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가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그는 “수백, 수천 개의 협력업체를 가진 일부 기업은 1년 내내 교섭하고 강성노조 사업장은 1년 내내 파업을 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우리 현실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노조가 실질적 지배력을 주장하며 교섭을 요청하면 원청은 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고 이를 거부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주장은 엄살이다.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청하더라도 사용자는 교섭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 사업주를 강제할 법적 방법은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가는 길밖에 없다. 설령 노동위원회나 하급심 법원에서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더라도 사용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또 버틸 수 있다.

실제 사례가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용역계약을 맺은 하청 청소노동자들이 2011년 3월부터 공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공사는 이들과 근로관계가 없다며 교섭을 거부했고, 노조는 단체교섭 응낙가처분 신청을 했다. 2011년 10월, 1심 법원은 공사가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임을 인정했지만 공사는 항소했다. 1심 판결이 나온 몇 달 뒤 공사는 하청업체를 변경했고, 새로운 용역계약서에서는 원청이 청소노동자를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는 문구가 삭제됐다. 이후 2012년 3월, 2심 법원은 공사가 용역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렇게 판결이 뒤집히는 사이 공사는 ‘합법적으로’ 교섭을 거부할 수 있었고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지도 않았다. 반면 용역노동자 상당수는 노조와 공사를 떠났고, 2014년에는 새 용역업체로의 고용승계가 거부되며 집단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노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1년 내내 파업이 벌어지리란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의 ‘사내하도급’이 실제로는 불법파견에 해당하며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원고 1명에 대한 판결일 뿐이라고 그 의미를 부정했다. 사내하청 노조에서 현대차를 상대로 파업을 하기 위해 쟁의조정을 신청하자, 노동위원회는 현대차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법상 노동관계 당사자인지 단정할 수 없어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시작부터 ‘불법’파업이 될 위험성을 안고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원청 사업장 내에서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 처벌과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이렇게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인지 법적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사용자와 노동자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원청은 대법원이 사용자로 인정할 때까지 몇 년이고 ‘합법적’으로 교섭을 거부할 수 있고 하청업체를 교체할 수도 있다. 반면 하청노동자는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하기 너무 어렵고, 하더라도 해고·형사처벌·손해배상 폭탄 위협에 즉각적으로 노출된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런 노사 간 책임과 비용의 극심한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아 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6년부터 수차례 한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는 내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사업주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원청과 교섭을 하기 위해 파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것, 노동자들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손해배상 청구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요지다.

그동안 ILO뿐만 아니라 유엔의 인권조약기구들도 비슷한 취지의 권고를 해 왔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적 차별과 고용불안을 받아들이라는 것, ‘진짜 사장’을 상대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가혹한 현실을 감내하라는 것이 바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바로 이런 인권 침해상태를 지속하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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