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석 아주대 교수(헌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할 태세다. 개정법이 왜 그대로 공포·시행돼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주장을 싣는다. <편집자>

노란 봉투는 옛날의 월급봉투를 가리킨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노동자와 그 식구들의 생계를 확보하기 위해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법이다.

시작은 2009년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했다는 이유로 사측과 경찰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노조가 47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때 시민들이 노조를 위해 ‘노란봉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금한 데서, 사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법안에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법안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사람을 사용자로 인정함으로써 쟁의 대상을 확장하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법원이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때 손해에 대한 책임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노란봉투법은 법리를 따질 것도 없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정한 법이다. 실질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사용자가 아니라면, 헌법 33조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허수아비 사용자만을 향할 뿐, 노동자의 권리는 무력해진다. 파업은 사용자를 향한 노동자의 최후 수단인데, 사용자가 노조의 파업에 소송으로 금전적 앙갚음을 할 수 있다면, 단체교섭과 단결권은 효력이 약화한다.

노동 3권은 사용자의 일방 의사에 굴종하지 않고 자신의 권익을 주장해 노동자가 인간다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기본권이다. 노동관계의 다변화 속에서 실질적인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한 헌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노동자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또는 삶의 기초인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다가 마지막으로 파업을 선택한다. 그런데 기업은 노동조건 개선과 고용유지 노력보다 온갖 법적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의 요구를 억누르거나 사업장에서 쫓아낸다. 국가는 입법·행정·사법을 통해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서 타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은 채 외려 법의 이름으로 노동권을 제한한다. 노조의 파업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손배청구는 이러한 행태에 대한 반성은커녕 노동자를 괴롭혀 자본과 국가에 굴종하게 하는 효과를 노린다. 노란봉투법은 헌법의 규범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노동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한 현실을 늦게나마 최소한의 수준에서 바로잡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 이 노란봉투법이 무산될 위험에 처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국회의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그 법률안을 법률로 확정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여당이 ‘여소야대’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당이 반대하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의 입법권 행사를 저지하는 실질적 힘을 발휘한다. 헌법 조문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법안에 대해 어떤 이의가 있어야 하는지 헌법에 구체적인 요건이 없어 대통령이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의결한 법안에 반대하려면 헌법적 정당성과 이유가 있어야 함은 법리를 따지기 전에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내키는 대로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할 것을 맹세했다.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사용자의 지위와 책임을 부여하고, 손해배상에서 그 책임에 따라 범위를 정하는 것에 헌법적 이의가 있을 까닭이 없다.

경영자단체에서는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가 붕괴하고 중소협력업체가 줄도산 위기에 직면한다지만, 그 말에는 이미 원청인 대기업에 산업생태계의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낸다. 헌법에서 왜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국회가 취약한 노동 3권을 보완하는 노란봉투법을 이제 겨우 완성했을 뿐이다.

나날이 취약해지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입법 개선이 더 필요하다. 대통령이 소수 권력자인 대기업의 편에서 노란봉투법에 국회 재의를 요구해 노동 3권 보장의 길을 막아선다면, 노동자 생계 위협 물론 국회와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깔아뭉개고 헌법을 거부하는 일이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는 대통령 윤석열로 돌아와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 회귀하기를 주권자는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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