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비롯한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재 카르텔’이 논란이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산재 추정의 원칙’과 ‘산재 환자 전용 특별수가’ 도입 등이 산재 부정수급자 증가, 산재기금 부실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했다. 고용노동부는 국감이 끝난 직후 근로복지공단 특정감사에 나섰고 공단은 경영 적자 때문에 ‘부정한’ 특별수가를 개설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13일 “산재 카르텔을 뿌리뽑기 위해 감사 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감사 범위도 “산재승인 및 요양 업무 전반의 제도·운영상 적정성”까지 넓혀 광범위하게 살피고 있다. 최종 감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산재 카르텔의 존재를 확정한 것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국경총은 “묻지마식 보상으로 산재보험제도 근간 흔들린다”며 ‘산재보험 업무상질병 제도운영 개선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 ‘산재 카르텔’의 종착점은 산재보험 제도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매일노동뉴스>가 ‘산재 카르텔’ 주장의 주요 근거들을 분석하고, 우리나라 산재보험 제도가 나아갈 길에 대해 세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는 사회보장 제도의 축소 주장과 곧잘 연결된다. 산재 부정수급 사례를 부각하며 산재보험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여당 의원의 지적에 고용노동부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특정감사에 나서고, 산재보험 부정수급 사례뿐 아니라 “산재승인 및 요양 업무 전반의 제도·운영상 적정성도 살피겠다”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이 석연찮은 이유다. 노동안전보건 전문가와 노동계는 정부가 산재보험 제도를 후퇴시키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근로복지공단에 ‘나이롱 환자 견제’ 장치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최근 5년간6개월 이상 요양한 산재 환자를 보면 1억5천만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수령했고, 필요 없는 장기요양이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사지부전마비 환자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재생하기도 했다.

문제 원인으로는 문재인 정부 이후 도입된 산재 추정의 원칙, 집중재활치료와 같은 산재 환자 전용 특별수가, 진료계획서 의학자문 생략 지침 등을 지적했다.<본지 2023년 11월20일자 [산재보험 프레임 전쟁 ①] ‘나이롱’ 환자 늘려 적자 개선? … ‘산재 카르텔’ 진실은 기사 참조> 해당 제도로 나이롱 환자 견제 장치가 사라졌다는 주장으로 기존 제도의 폐지와 축소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정식 장관은 국감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공정·상식·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부당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감사하고 법적 조치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달 1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특정감사를 시작했다. 같은달 13일 감사인력을 2배로 늘렸고 ‘산재승인 및 요양 업무 전반의 제도·운영상 적정성’으로까지 감사범위를 넓혔다. 산재보험 제도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무상질병에 관한 제도 전반, 특히 산재 추정의 원칙이 ‘개선’을 빙자한 산재보험 제도 후퇴의 첫 타깃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산재 추정의 원칙은 작업 기간과 위험 요소 노출량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2017년 12월 처음 도입됐고 2019년 5월 대상 질병이 근골격계 질환까지 확대됐다. 예컨대 건설 용접공으로 10년 이상 일한 노동자가 일을 중단한 지 12개월 내 회전근개 파열 진단을 받으면 업무상질병으로 추정하는 방식이다.

추정의 원칙 고시 타당성 검토하는 정부

근로복지공단 업무처리지침이었던 근골격계 질환 추정의 원칙은 지난해 7월 노동부 고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으로 법제화됐다.

해당 고시는 1년6개월이 되는 시점마다 그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올해 12월이 지나면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산재 추정의 원칙은 적용 대상·기준에 대한 노사 간 입장이 첨예하다. 사용자쪽으로 기울어진 윤석열 정부가 재계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경총은 지난 19일 ‘산재보험 업무상질병 제도운영 개선 건의’를 정부에 내고 “과도하고 불합리한 산재보상으로 기업 노무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보험료 인상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안도 이미 제시했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추정의 원칙 전면 재검토 및 폐지 △현장조사 실시 기준·절차 강화 △동일 건에 대한 최초 산재신청 반복 제한 등이다. 뇌심혈관계질병의 경우 △야간 업무시간 30% 가산 기준 재검토 △종합 고려대상에 ‘근로자 건강상태’ 포함 등을 제안했다. 노동자 건강상태는 고혈압·당뇨병과 같은 노동자의 기절질환, 흡연 등 생활습관을 고려하자는 주장이다.

‘폐지 또는 전면 재검토’ 건의한 재계 소원수리하나

재계가 요구하는 안은 대부분 노동부 고시 개정이나 공단 요양업무처리규정 개정 등으로 가능하다. 정부가 키를 잡고 있다는 의미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의)는 “직업병은 의학적·과학적으로 결정내릴 수 있는 부분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어느 나라나 직업병 종류와 인정 범위가 논란거리”라며 “실무 차원에서 어떤 질환을 어느 범위까지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할 것인지 토론할 수 있지만 추정의 원칙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타당한 비판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기존 고시도 노사정 합의라는 절차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노동부는 산재보험 제도 관련 비공식 TF에서 재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추정의 원칙 후퇴하면 업무상질병 처리 지연
노동자 직업복귀도 어려워져”

노동계와 안전보건 전문가들은 산재보험 제도가 퇴행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현미향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울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재계에서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산재 인정에 대한 혐오감이 강하다”며 “업무상질병은 산재인지 개인질환인지 명료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보니 산재 인정기준을 엄격하게 해서 승인율을 낮추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의)는 “과거에는 산재로 생각하지 않던 암이나, 자살, 우울증이 직업병 범위에 포함했듯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 높아질 것”이라며 “재정적으로 현재 구조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개선방안을 찾아야지, 산재 신청을 어렵게 하고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최민 상임활동가는 “게다가 추정의 원칙은 그냥 산재를 신청해도 원래 승인될 만한 사례들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며 “산재신청은 계속 증가할 텐데 과거의 행정처리를 고수하면 업무상질병 처리는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계의 주장을 들어준다면 산재보험 취지인 재해자의 직업복귀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 승인 기간이 130~140일로 긴 편”이라며 “하지만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빠르게 산재 처리가 돼 치료를 받은 경우는 직업복귀율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재 처리 지연이 계속되면 질병은 악화하고, 현장 복귀가 어려워져 생계문제가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업급여 부정수급 부각하며
하한액 폐지 검토 상황과 판박이

‘산재 카르텔’ 의혹으로 시작된 노동부 감사가 어떤 결론을 도출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수급자의 부정수급 사례가 부각하고 산재보험기금 재정 부실 논란으로 이어져 결국 사회보장제도 축소’로 귀결되는 논리 구조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했다는 지적이다.

이상윤 대표는 “‘도덕적 해이’는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시스템을 공격할 때 가장 흔하게 쓰는 방법”이라며 “부정수급의 일부 사례를 가지고 부정수급자가 많다고 이야기하면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논의를 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얼마 전 정부가 실업급여를 줄이려는 맥락과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이 지난 7월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노동부 관계자는 여성·청년 노동자가 웃는 얼굴로 실업급여를 받으러 와서 샤넬 선글라스 사고, 해외여행을 다닌다며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부·여당은 이런 주장을 부각하며 실업급여 하한액을 삭감 혹은 폐지를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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