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매일노동뉴스>는 민주노총의 직선 4기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의제와 노동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하기 위해 정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정파 간 차이를 드러내기에 뭉뚝했거나, 준비가 부족했다는 세간의 비평도 들린다. 그러나 예각화하기에 적절한 정치관·대북관 같은 상층부의 논의보다 당장 오늘과 내일의 임금·비정규직·성차별 같은 일상의 문제이자 사회적 담론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는 게 몰가치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서로 바쁜 와중에도 취재에 응해 준 각 정파의 관계자들 발언을 싣는다. 앞선 5편이 씨줄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는 날줄이 되길 기대한다. 이영주 전국결집 공동대표와는 지난 16일 오후 만났다.<편집자>

[논쟁: 길을 묻다]

① 최저임금은 유효한가

②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시정

③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의 탈성장

④ 여성주의는 노동운동과 만났을까

⑤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⑥ 전국결집·전국회의·평등의길 인터뷰

 

- 최저임금 운동에 대한 평가는.
“최저임금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사회적 교섭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최저임금 교섭은 소득 분배와 관련해 대중적으로 드러나는 거의 유일한 계급투쟁의 공간이다. 최저임금 교섭의 분위기와 기세는 노동자계급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전 사회적인 방향타로 작동할 수 있다. 자본가들이, 보수언론이 그렇게도 최저임금 결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떻게든 인상 기세를 꺾으려 하는 것은 어쩌면 노동자계급보다, 민주노총보다 최저임금 교섭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민주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장치다. 최저임금 교섭과 투쟁은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대표체로서 위상을 각인시키는 장이다. 자본가들과 보수언론이 정규직·대공장 노동자들의 조직이라는 낙인찍기에 집중하는 현실에서, 미조직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대변하는 대리전인 민주노총의 최임 교섭과 투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 번째, 사회경제적 정세와 이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상황을 반영하는 계기가 된다. 대기업과 재벌 문제, 현 한국 사회의 경제적 상태와 조건, 전망을 계급적 요구로 실물화시키고 대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생생한 계급투쟁의 현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현재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투쟁은 매번 아쉬움과 ‘과제’를 남기고 있다.”

- 새 소득보장 정책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노동자 소득은 크게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으로 구성된다. 사회임금은 보육·의료·주거 등 여러 복지제도를 통해 받는 혜택이다. 사회임금의 기본적인 특성은 연대이며, 출발점은 공동체다.

한국은 전체 소득에서 사회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시장임금에 비해 현격히 낮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4분의 1 정도로, 그야말로 최저 수준이다. 노동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사회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는 소득 비중이 낮다면, 더구나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면 사회연대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장임금에 집중한다. ‘일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하고 더 벌어 보자’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때론 ‘정규직 이기주의’ ‘대공장 개별교섭 우선주의’이고, 때론 길고 위험한 노동착취에 대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이다. 또한 이는 노노갈등으로 이어지며,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이 적절한 비중으로 소득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산별 임금교섭이 보장되고, 산별임금이 해당 산업 대부분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이 보편적으로 구성되고 충분히 적용돼야 한다. 이 두 가지와 함께 가지 않는 소득보장정책은 그저 모래성일 뿐이다.

- 비정규직 철폐 기조에 대한 평가는.
“비정규직 철폐 요구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더 높은 임금, 더 나은 조건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말 비정규직 철폐보다 현실적인가? 가능한가? 비정규직을 일반적 고용형태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성공한 자본이, 그 성과를 스스로 쉽게 포기할까? 회의적이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을 사용자 맘대로 결정하는 것은 그럭저럭 조금 개선해서 쓰면 될 제도가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는 ‘노동자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다. 그러나 지금까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규직 전환 투쟁 등이 갖고 있는 유의미성과 현장의 폭발력에도 비정규직 투쟁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잘 작동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고용이 탄생하고 확산된 물적 토대와 계급관계의 변화 없이는 비정규직 고용은 다양한 양태로 계속 현장을 좀먹어 간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전술은 폐기하고 불안정 노동을 철폐하는 근본적 투쟁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정규직화 요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누가 현장을 장악하는가, 어떻게 현장을 장악하는가’다. 노동자가, 민주노조가 힘을 쓰지 못하는 현장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관계없이 그저 사용자의 처분에 맡겨질 뿐이다. 구체적이면서도 생생한 직접적인 조직화를 통해 사업장에서, 지역에서, 산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다수를 조직해야 한다. 현장 권력을 세우는 것, 그를 위해 민주노총·민주노조운동· 사회운동의 역량을 보다 집중하고 동원해 내는 것 외에 비정규직 투쟁의 지름길은 없다. 비정규직 철폐냐, 처우 개선이냐는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 기후위기 대응은 어떤 고민이 있나. 가장 급진적인 탈성장론도 포괄할 수 있나.
“이제는 노조가 기후위기 투쟁 전면에 서야 하다. 기후위기는 단순하게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반자본 투쟁의 핵심 열쇳말이다. 탈성장 관련 논의를 거리낄 게 없다. 조합원이 현재가 아닌 노조가 지향하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과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 탈성장이라는 의제를 전면화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되돌아볼 중요한 인식 전환의 기제가 될 것이다. 그간 기후위기 활동가들을 만나면 노동운동은 어디에 있었는지 문답을 하곤 하는데, 노동운동 내 기후정의운동은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다만 자본·정권과 직접 대립하면서 기후정의단체와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노동의 위기가 너무도 절박해 기후위기를 전면화하지 못한 지점은 있다.”

- 공공요금과 관련한 논쟁이 있었는데.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시도한 의도는 기후위기가 아니었다. 무관하다. 정부 정책 실패, 사기업과 재벌기업을 밀어 주는 에너지정책 등으로 인한 공공기관 재정 부담 가중이 공공요금 인상의 배후 원인이다. 이 책임을 공공부문 이용자에게 전가하고 에너지 재벌 대기업들의 이윤을 보전해 주는 것일 뿐인 공공요금 인상을 동의해 줄 수는 없다. 탄소배출의 가장 큰 비중은 산업 분야이고, 공공요금의 인상과 이로 인한 비용 상승은 산업 분야의 탄소배출을 일시적으로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 분야 대다수 사기업들의 이윤 추구 드라이브가 바뀌지 않는 한 비용은 다시 전가될 뿐, 화석연료 소비 추세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공공요금 인상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인권으로 작동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소비의 역진적 억제로 귀결될 수도 있다. 교통·에너지 등 공공서비스는 인권이며, 기본적인 수준의 소비는 불가피하다.”

-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은.
“세상을 혁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를 혁명하는 것이다. 나를 혁명하고 조직을 혁명해야 세상도 바꿀 수 있다. 노동운동의 페미니즘은 그 지난한 과정을 때론 순차적으로, 때론 병렬적으로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페미니즘은 노동조합 조직 내의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빚이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치유보다 조직의 재발방지를 위해 제소한다고 말했다. 다시는 같은 피해를 입는 동지가 우리 노동조합에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성찰하는 조직문화로 변화되기를 바랐고, 노동조합의 여성운동은 이에 응답하며 고통 속에서 성장했다. 시행착오와 오류를 반복하며 성폭력의 개념을 확대해 왔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한정하지 않고, 조직문화 개선 과제를 제출하며, 이의 이행을 점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합의로 여러 차례에 걸쳐 개정해 온 것이 반성폭력 규정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보다 먼저 성찰한 동지들이 노동운동의 페미니스트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노동운동 페미니즘의 슬로건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남성노동자와 동일한 임금이 여성노동자에게도 지급돼야 한다. 왜 여성의 일은 비정규직인가? 성별에 따라 분리돼 여성의 일로 규정된 비정규직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식당, 청소, 돌봄, 렌털가전서비스 등 전통적으로 집안에서 여성에게 무임금으로 강요되던 노동이 집 밖으로 나와 비정규직으로 구조조정 됐다. 성별에 따른 구조적 차별,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투쟁이 노동현장의 페미니즘이다.

-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윤석열 정부 들어 확산하고 있는, 여러 정부 위원회들로부터의 노동계위원 배제는 이 정부가 사회적 대화 자체를 경시할뿐더러, 노조의 대표성을 외면한 채 노조를 이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조차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계의 정부위원회 참여는 오랜 투쟁의 성과임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대표체로서 사회적 교섭의 장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윤석열 정부가 노조와의 대화·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30~40년 전으로 노동의 시계를 되돌리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과거의 방식대로 노조를 대하겠다는 정부에게는 당시의 방식대로 싸워 줄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화에 대해 아픈 기억들이 있다. 옛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 같은 민주노총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악법들이 들어왔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산별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 노정교섭을 먼저 하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노동자 문제는 노정교섭으로, 사회적 교섭은 노사정대화로 가자는 것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의 완전한 보장 없이 사회적 교섭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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