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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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민주노조운동이 수단이자 목적이었다. 민주노총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 아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토론이 활발했다.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이달 22~26일 입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 레이스에 들어간다. 선거전은 이미 뜨겁다. 후보진영은 ‘정파’로 갈라져 있다.

노동운동 내부의 토론이 과열된 때도 분명 있었다. 사상논쟁, 전략논쟁, 가치논쟁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한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말한 민주적인 공론 프로세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얼마간 시기를 도과하면서 노동운동 내부의 공론장은 쪼그라들었다는 평가다. 이유는 몇 가지로 종합된다. 우선 관료화다. 오랜 민주노조운동의 산물로 설립한 민주노총은 법외노조 시기를 지나 제도권으로 포함되면서 관료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운동 내부 거버넌스가 수평화하기보다 수직화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행정체계를 갖춘 조직이 필연적으로 겪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도 실종됐다는 평가다. 이 명예교수는 “노동운동 내 이른바 학출(학생운동권 출신)과 현장출신의 정파 활동가 그룹의 활발했던 학습이 실종됐다”며 “배움을 추구하는 속에 다른 생각을 갖고 논쟁하는 것이 활동가 그룹을 지탱하기도 했고 한때 과열됐다고 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현재는 정파가 단순한 ‘선거구도’로 기능하면서 학습과 논쟁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런 결과 노동운동의 진보적 의제 설정 기능이 약화했다. 진숙경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운동이 직장 내부 문제에만 천착하지 말고 사회 전반 문제를 고민하고 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아침에 미세먼지의 농도를 확인하고 출근하는 것은 왜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고 반문했다. 이 명예교수는 “지금도 노동단체가 주관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정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집행부가 정한 방향성을 확인하고 근거를 만들고, 알리기 위한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본래적 의미의 공론장에서 탈각했다는 의미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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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 이후 사회적인 의제는 다양하다. 물가 인상률에도 못 따라가는 인상률로 내년에도 1만원에 미달한 최저임금을 비롯해 △늘어나는 비정형 노동자 △기후위기 △성차별 등 도처에 있다.

전통적인 노동의제에서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간은 지난 대선에 제기된 거의 유일한 노동정책 관련 의제였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장 69시간제 도입 같은 사회적 논란이 야기됐음에도 노동운동은 이에 대한 지향점을 내놓지 못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노동시간을 제도적으로 ‘주 35시간’으로 단축을 요구하는지 아니면 산별 노동시간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요구하는 것인지 논의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당위성은 있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그 효과가 정규직·임금노동자에만 돌아가는 문제를 제어할 방법을 찾지 못한 탓이다.

<매일노동뉴스>가 민주노조운동을 꽃피웠던 정파 활동가들에게 묻는다. ‘논쟁: 길을 묻다’ 시리즈를 통해 노동운동이 사회적 의제에 준비한 대답을 6차례에 걸쳐 듣는다. 특정 산업에 속한 의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현재를 묻는다는 점에서 산별노조보다 전국결집·전국회의·평등의길에 각각 물었다. 건강한 토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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