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촉계약을 체결해 일하다 해고된 필라테스 강사 A씨의 대리인이 노동청 근로감독관과 대질조사 이후 통화한 내용.

근로계약 대신 사업소득세를 떼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계약을 체결한 필라테스 강사가 미지급 퇴직금을 달라며 진정했지만, 노동청이 계약 형식을 이유로 조사 하루 만에 종결 처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청의 형식적인 조사로 헬스트레이너나 필라테스 강사들이 이른바 ‘무늬만 프리랜서’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 프리랜서 계약, 기본급 지급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B필라테스 학원의 서울 송파지점에서 약 3년8개월간 일하다 해고된 필라테스 강사 A씨가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달라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동부지청에 지난달 진정을 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됐다.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대질조사 이후 하루 만에 종결 처리했다.

사건은 A씨가 학원과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며 불거졌다. A씨는 2019년 11월 입사해 근무하던 중 2021년 8월 사업주가 변경되며 고용이 승계됐다가 지난해 7월30일 폐업을 통보받고 다음날 해고됐다. 학원은 5~8명의 필라테스 강사가 있어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됐다.

학원은 A씨에게 사실상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했다. 최저시급을 받는 ‘근로계약’ 또는 프리랜서인 ‘위촉계약’ 두 개의 선택지를 준 것처럼 계약서를 만든 것이다. 학원측은 “본인 요청과 회사 승낙으로 기본급(법정 최저시급)을 회사와 협의 후에 결정하고 근로시간과 장소·회사 내규 적용을 받는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계약서 다른 한편에는 ‘위촉계약’ 문구가 들어갔다. 계약서에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하고 동등한 당사자 지위로서 근무시간과 장소에 자율적인 재량권을 가지며, 본인이 필요한 비품이나 자재를 직접 소유하고 근로기준법 및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퇴직급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기재됐다. 겸업과 제3자 대체도 가능하게 했다.

최저시급을 원치 않았던 A씨는 위촉계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원측은 프로그램과 수업 횟수에 따라 수업(1대1, 2대1, 그룹프로그램) 횟수당 3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급여 대부분을 시간당 기본급에 월 근로시간을 곱한 금액에 고정 인센티브를 받았다. 급여명세서도 발급됐다. 근속연수에 따라 지급된 인센티브는 10만~20만원에 불과했다.

정해진 회원 맞춰 수업, 학원 “퇴직금 못 준다”

A씨는 2021년 5월부터 1주 평균 15시간 이상을 일했지만, 사업자로서 권한은 없었다. 학원은 신규회원의 강의 희망 요일과 시간대를 정해 강사들에게 회원을 배정했다. 강사들은 개인레슨을 선호하지만 정할 수 없었다. 회원 서명이 들어간 수업일정(레슨)을 적은 종이에 학원 대표가 사인을 해야 급여가 지급됐다. 수업은 학원과 협의해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진행해야만 했다.

강사들은 작업도구도 소유하지 않았고 제3자를 고용할 수도 없었다. A씨는 회원 등록과 기간 연장·회원 출석관리·수업 안내 문자·상담 진행 등 잡무까지 담당했다. 특히 학원이 상담실장을 해고한 후에는 창문 닫기·불 끄기·에어컨 끄기·보일러 틀기 등을 맡았다. 수강생 차량번호를 받아 주차장에 등록하는 등 강사와 무관한 업무도 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퇴직금 지급 의사가 없다며 폐업과 동시에 A씨를 해고했다. 원장은 폐업 전날 해고를 통보하면서 “프리랜서로 계약을 체결했으므로 퇴직금을 줄 수 없다. 다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8월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한 후 공인노무사를 선임했지만, 지난 9월5일 대질조사 이후 하루 만에 종결을 통보받았다.

▲ 서울 송파구 소재 L필라테스 학원이 강사 A씨와 체결한 프리랜서 계약서 일부. 학원은 최저시급을 지급하는 근로계약과 수수료를 받는 위촉계약을 선택하게끔 했다.
▲ 서울 송파구 소재 L필라테스 학원이 강사 A씨와 체결한 프리랜서 계약서 일부. 학원은 최저시급을 지급하는 근로계약과 수수료를 받는 위촉계약을 선택하게끔 했다.

조사 당시 이미 결정? 전문가 “노동청 과거 멈춰”

근로감독관이 불성실한 조사로 일관한 정황이 짙었다. A씨측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은 대질조사 당시 “결정했다. 결과를 지금 알려드릴까. 아니면 문서로 드릴까”라고 했다. 다음날 노무사와의 통화에서도 “강박에 의한 것이 아니면 계약서를 부정할 수 없다”며 프리랜서 계약서의 효력을 인정했다. 필라테스 강사는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태도도 견지했다.

하지만 이는 “계약 형식보다 실질을 따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례 태도와 어긋난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대법원은 2007년 3월 시간강사의 근로자성 사건에서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업무 자체 특성이나 전문 직종의 상대적 자율성에 기인한 것이라면 근로자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2021년 3월 MBC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업무 특성에 기인해 별도 지시가 불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노동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체육산업 종사자 등 특정 직업군은 노무제공 실질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은성 공인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는 “근로자성에 대한 유의미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데도 노동청의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2010년 초반대에 멈춰 있다”며 “근로자성 사건에 대한 전담감독관 제도를 신설하고 노동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무컨설팅을 통해 횡행하는 불법 계약서의 효력을 노동청이 긍정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의 권리행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의원은 “일선 근로감독관들이 계약서 형식만 보고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생활체육업계 노동자들 개인이 자신이 ‘근로자’였음을 증명받기 위해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하는 생활체육업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보급과 노동부의 실태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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