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씨의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디앨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을 선언하고, 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DL이앤씨에 전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e편한세상’ 건설사로 유명한 DL이앤씨는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7번째 사망사고가 일어난 최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전국 시공현장을 일제 감독했지만,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DL이앤씨 사고 원인과 문제점을 유족 인터뷰와 사고 경위 분석을 통해 연속해 살펴본다.<편집자>

“엄마는 무식해요. 그분들(디엘이앤씨 경영진)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겠죠. 그런데 우리 아이가 사망할 정도로 일을 시켰다는 것은 더 무식한 일이에요. 그런 식으로 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DL이앤씨가 시공한 부산 연제구 레이카운티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 고 강보경(29)씨의 어머니 이숙련(71)씨가 4일 오후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며칠 전 TV를 보는데 군인이 훈련 중 외줄을 타다 줄을 놓쳤는데도 고리가 있어 살아나오는 것을 봤다”며 “우리 아이도 고리만 걸렸으면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분하다”고 했다. 강씨는 DL이앤씨에서 일어난 7번째 사망사고의 8번째 희생자다.

20대 청년, ‘맨몸’으로 창틀 교체하다 추락
“안전교육·보호구·안전난간 모두 없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지역의 공과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경남 김해에서 독립해 살던 강씨는 취업을 앞두고 나선 공사장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강씨는 지난 8월11일 오전10시10분께 20미터 높이 아파트 6층에서 파손된 유리창을 교체하던 중 창틀이 떨어지며 이를 잡고 있다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강씨는 이날 처음으로 DL이앤씨 공사현장에 투입됐다.

이씨는 그날 오후 경찰로부터 아들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었다. 누나 강지선(33)씨는 “엄마와 함께 병원 안치실에 갔는데 바로 동생의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동료 작업자의 거짓말도 알게 됐다고 한다. 누나는 “동료는 사고 당시 동생이 맥박이 뛰고 있었다고 했는데 경찰과 119 설명을 들어 보니 이미 현장에서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분개했다. 사망사고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다음날 찾은 사고현장은 처참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상 높이 10미터에 설치됐어야 할 추락방호망은 보이지 않았다. 안전대와 안전고리도 없었고, 안전모도 지급되지 않았다고 유족은 설명했다. 현장에는 창호 시공을 맡은 하청업체 KCC 현장관리자가 있었다. 강씨 외삼촌 이한진(64)씨는 “현장 작업자가 안전모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며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한 안전난간과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한진씨는 서울 DL이앤씨 공사현장에서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현장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씨는 “현장 총무에게 보호장구를 지급했는지 물어 봤더니 안전벨트를 지급하지 않고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털어놨다. 작업 전에 작업 내용과 안전작업절차 등을 확인하고 의논하는 ‘TBM(Tool Box Meeting)’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정황도 짙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DL이앤씨 유족 현장 통제에 은폐 의혹

사고현장인 아파트 입구는 사측이 고용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서가 부착됐다는 이유로 유족의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유족은 3인1조로 작업했는데도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알고 싶었지만, 시건장치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 강씨 누나인 지선씨는 “동생은 창호 기술도 없었고, 같은 조 동료 1명은 초보였다고 들었다”며 “어떻게 3인1조에 미숙련 노동자들이 두 명이나 일하게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실시공’이 원인이 됐을 것이란 문제 제기도 있다. 사고가 난 곳은 창틀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이한진씨는 “창틀 전체가 떨어졌다는 것은 부실 공사일 가능성이 있다. (벽에 고정할 때 박는) 앙카가 제대로 고정돼 있었는지도 의문이다”고 했다. 이어 “보통 창호 마무리 단계에서 제거하려면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거나 발판을 깔아놓고 한다”며 “그런데 그냥 철거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교육 8시간 이수증 사본이 있다”는 하청측 설명은 경찰 확인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일 사라졌던 강씨 휴대전화도 한 달 후 수신 정지 뒤에야 경찰로부터 회수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씨 누나는 “사측은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분이 동료였다고 하는데, 유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차에 두고 깜빡했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고 했다.

원청 ‘무대응’ 일관, 유족 “합의만 종용”
“원청 대표에게 사과받고 싶다”

무엇보다 원청인 DL이앤씨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어머니 이씨는 “사고 사흘 뒤 장례식장에 원·하청 직원만 왔고 임원진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DL이앤씨측 노무사가 갑자기 급히 작성한 합의서를 들고 와서 합의를 종용하는 데 급급했다”고 분개했다. 사측이 내민 ‘가합의’ 서류에는 마창민 DL이앤씨 대표가 적혀 있었다. 마 대표는 장례식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씨 누나는 “사고 정황도 기사를 보고 알게 됐다”며 “원청은 사고 이후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원청측은 사고 내용도 모르는 친척에게 합의를 부탁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족은 지난 8월 말 상경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날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 섰다. 강씨가 세상을 떠난 지 55일 만이다. ‘DL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는 △사망사고 진상 공개 △유족에게 공개 사과 △7건의 중대재해 조사내역과 재발방지책 공개 △그룹 차원의 실효성 있는 근본대책 수립·공개 등 8가지를 요구했다. 이후 유족측은 DL이앤씨 관계자와 접견을 하고 입장문을 전달했다. 앞으로 본사 앞 1인 시위 등을 계획 중이다.

유족은 원청 사과가 우선 순위라고 강조했다. 강씨 누나는 “두 달 동안 아무도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마 대표가) 구속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실질적인 처벌이나 예방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씨 누나는 “작년에도 마 대표는 국정감사에 나왔고, 벌금 수억원을 낸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또 벌금만 내고 만다면 앞으로 8번째 사망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에도 쓴소리를 냈다. 그는 “노동부가 압수수색을 하지만 분위기에 떠밀려 ‘척’하는 것으로만 보인다”고 했다.

강씨 어머니는 강씨가 매일 전화하는 한없이 착한 아들이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DL이앤씨를 향해 힘줘 말했다. “사고 전날에도 아들과 전화했어요. 가난했지만 웃으면서 지냈는데 죽지 않을 아이가 죽었습니다. 대표의 뺨이라도 때렸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구속이 되더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어요. 아랫사람을 지시한 회장님이 처벌받아야 합니다.”

▲ 지난 8월11일 DL이앤씨가 시공한 부산 연제구 레이카운티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창틀 교체작업 중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고 강보경(29)씨의 사고 현장. 전체 창틀이 떨어진 모습이 보인다(빨간색 원). <유족 제공>
▲ 지난 8월11일 DL이앤씨가 시공한 부산 연제구 레이카운티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창틀 교체작업 중 추락해 숨진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고 강보경(29)씨의 사고 현장. 전체 창틀이 떨어진 모습이 보인다(빨간색 원).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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