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김아무개(56)씨는 스무 살부터 최근까지 건설현장에서 미장 업무를 했다. 쪼그려 앉아 시멘트를 벽에 바르는 업무로 하루 최소 6~7시간 쪼그려 앉거나 구부정한 자세로 일했다. 발판을 오르내리고, 중량물을 나르는 일도 자연히 뒤따랐다. 30년 넘는 기간 동안 일한 그의 몸이 성할 리 없었다. 김씨는 병원에서 ‘좌측 슬부 내측 반월상 연골판 파열’ 진단을 받고 지난달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일한 세월이 질병을 입증해 줄 것이라 여겼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공단은 특별진찰을 받으려면 내년 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생계가 막막해진 김씨는 노동단체에 도움을 통해 추정의 원칙 적용을 요구한 뒤에야 공단으로부터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근골격계 질환 산재인정 지연은 김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7월 상병·직종·근무기간·유효기간(마지막 근무 시점)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근골격계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뇌혈관 또는 심장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고시를 개정해 시행했지만 현장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이런 가운데 재계가 이러한 근골격계 질환 추정의 원칙마저 되돌리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정성 훼손·부정수급” 운운

한국경총은 31일 오후 강원 정선 하이원컨벤션센터에서 ‘산재예방 촉진을 위한 직업병 인정기준 개선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추정의 원칙 적용으로 (산재 처리) 신속성 개선보다 공정성 훼손 부작용이 두드러진다”며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경총은 이날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산재보험 직업병 인정기준 개정 건의서’를 작성해 노동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수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의학적 근거 없이 편의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근골격계 질병 추정의 원칙이 산재 판정의 공정성 저해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골격계 질병 추정의 원칙은 업무상 요인과 상병과의 인과관계 확인 없이 최근 산재 통계에서 승인율 높은 직종을 선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문진영 인하대 교수(직업환경의학의)는 “퇴행성 질환과의 구분이 불가능해져 더욱 산재 신청이 몰리고 부정수급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불합리한 산재 승인 및 보상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산재보험료 인상과 노동손실 증가를 유발해 경제활력을 저해한다”며 “추정의 원칙 전면 재검토와 역학적 근거에 기반한 인정기준 개선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추정의 원칙이 도입됐음에도 근골격계 질병 평균 처리기간은 지난해 108.2일에서 올해 6월 134.5일로 늘었다고 덧붙였다.

추정의 원칙 적용 3% 안 돼
황당한 노동계

추정의 원칙이 현장에 안착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동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미장공 김씨의 산재 신청을 도운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은 “특별진찰에만 6~8개월을 기다리면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며 “추정의 원칙 요건을 충족하면 적용해야 하는데 항의를 해야 검토를 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도 “현재 추정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용접 일 10년 해서 폐암이 걸렸는데, 다른 유해물질이 있는지 또 본다. 암은 산재 인정까지 1~2년씩 걸려 노동자는 생계가 막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근골격계 질환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다뤄지는 숫자는 1만건이 넘지만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승인되는 경우는 500여건도 안 된다”며 “부정수급, 추정의 원칙이 남용된다고 하기에는 추정의 원칙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적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울산산추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접수돼 올해 3월까지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 산재가 승인된 숫자는 295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근골격계 질병 산재 신청이 1만2천491건임을 감안하면 3%를 밑도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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