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8일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일부개정 고시(고용노동부고시 제2022-40호)를 발표했다. 근골격계질환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 직종과 상병을 추가한 이번 고시가 과연 진일보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부가 도입하려 했던 복합부위 상병은 아예 삭제됐다.

그밖에 문제점을 짚어보면, 첫째 추정의 원칙 적용 요건인 근무기간이 일부 축소됐다. 6개 신체부위(목, 어깨, 팔꿈치, 손·손목, 허리, 무릎) 중 목(경추간판탈출증), 어깨(회전근개파열)의 경우 근무기간이 각각 ‘8년→10년’ ‘9년→10년’으로 늘어났다. 이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나 설명이 전혀 제시돼 있지 않다.

둘째, 기존 적용 직종이 누락됐다. 기존 근로복지공단 지침으로 운영된 근골격계질환 추정의 원칙(발생빈도가 높은 근골격계 6대 상병 재해조사 요령)에서 요추간판탈출증 직종 중 돌봄노동과 운전업무(화물차·중장비·승객버스)가 삭제됐다. 노동부는 ‘승인율, 신청 빈도가 낮아지는 등’의 이유로 제외했다고 한다. 돌봄노동이 요추부에 강한 외력이 작용하는 업무이며, 요추 부담이 적다는 의학적 연구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이를 삭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운전업무는 전신진동 등으로 요추에 부담이 된다는 역학적 근거가 변경된 바 없다. 덴마크의 업무상 질병 판단 지침(2010)에도 진동의 정도, 의자의 쿠션 상태 등을 감안해 8~10년 이상 업무수행을 근골격계질환 요건으로 한다는 점을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셋째, 상병 미확인 문제에 대한 대책이 없다.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 상병별 직종으로 추가된 것은 5회 이상 80% 이상 승인된 것을 기준으로 해 선정됐다. 거의 대부분 이미 근로복지공단에서 승인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고시 적용 직종인데도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는 상병 미확인(9%)이 가장 많다.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에서 ‘산재보험 요양급여신청 소견서’를 의사가 작성한 뒤 병원의 직인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바, 의학적 판단에 대한 책임은 의사와 병원이 져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지사 자문의사의 상병 검토시 이견이 있거나 확인되지 않을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 ‘산재보험 요양급여신청 소견서’를 다시 요청해야 한다. 잘못된 상병 진단으로 소견서를 작성한 의료기관이나 의사에게 적절한 패널티를 강하게 부과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넷째, 노동부·경총·한국노총이 이전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골격계 질환 산재 판정이 오래 걸려(2021년 113일) 노동자의 고통이 가중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이 2006년 12월13일 옛 노사정위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안에 합의할 때 “주치의, 사업장, 자문의 의견을 종합 고려해 업무상 질병이 명확할 경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제외”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모든 업무상 질병을 질병판정위에서 심의해 왔다. 애초 근골격계 질환의 특수성을 감안해 주치의사·자문의사 등 의학적 소견을 종합해 심의에서 제외해 신속한 판정을 해야 했다. 제도 개선을 15년간 미뤄 오다가, 2021년에 와서야 특별진찰시 ‘매우 높음’ 소견에만 심의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매우 높음’이 거의 없는 현실을 볼 때 실효성이 없다)

다섯째, 산재신청조차 어려운 비정규·미조직·하청 노동자 등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기존 추정의 원칙 사건은 전체 업무상 질병 사건 중 3.6%에 불과하다. 노동부 설명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금번 패스트트랙 대상 66개 직종 중 건설업 21개, 조선업 13개, 타이어 7개, 자동차 5개’다. 대부분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며, 현재도 일반 근골격계질환 승인율에 비해 10% 이상 높다. 2019년 기준 인구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프랑스가 4만4천492건의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한 반면, 우리나라는 6천844건에 불과하다. 산재 신청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비정규·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기존 틀을 바꾸려는 노력이 사실상 없었다.

여섯째,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의 이의제기권을 도입한 것이다. 경총 등의 반발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규정 개정을 통해 ‘판정위원회 사건 접수시, 판정위원회 심의회의 개최시’ 사용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개정안은 사용자의 의견 개진 절차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며, 사용자의 의견진술 등으로 심의회의 보류를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에도 산재보험 가입자 의견을 대체해 사용자의 의견서와 자료가 제시되고 있지만 노동자에게 제때 전달되고 있지 않다. 또한 질병판정위 회의 참가시 제출되는 자료 등은 신청인이 알 수 없고,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공단 조사시 사용자의 문답서 제출, 현장 조사 등 재해조사서 작성시까지 사용자의 의견진술 및 자료 제출 기회 등이 충분히 보장돼 있는데도 최종 판정 절차에서 사용자의 새로운 의견으로 보류한다면 신속성은 결국 저해될 수밖에 없다. 업무상 질병 사건 중 3.6%에 불과한 사건 때문에 나머지 96.4%의 사건의 판정절차 지연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위한 자료제출 요구권이 없는 점, 사용자의 산재신청 조력의무가 없는 점, 증명책임은 여전히 노동자에 있는데도 ‘객관적 자료’의 우위는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점 등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향후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산재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서도 사용자의 이의제기권 도입 명분을 심어 준 몰지각한 제도 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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