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범 아인에스 대표이사(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빨리빨리.”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1위이자, 해외 건설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1위라고 한다. 한때 80~90년대 ‘삐삐’로 부르던 호출기를 쓰던 시절에도 8282(빨리빨리)는 누군가를 채근할 때 번호에 붙여 자주 사용한 기호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은 전 세계 각지에서 산업현장을 이끌어 준 우리의 부모님, 부모님들의 부모님의 노고와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분들의 몸에는 훈장과도 같은 상처들이 남아 있다. 진폐증, 소음성난청, 유기용제 중독 같은 각종 산업재해다.

질병 산업재해는 ‘직업병’과 ‘업무상 질병’으로 나눈다. 직업병은 분진·소음·화학물질·방사선 등의 직접적 연관요인이 있는 것을 말한다. 업무상 질병은 직접적 요인 이외에도 업무와 연관성을 고려한 질병으로 대표적인 것이 근골격계 및 뇌심혈관계질환, 직무스트레스 등이다.

업무상 질병 발생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2019년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전체 업무상 질병자 1만5천195명 가운데 9천440명(62.1%)이 근골격계질환 근로자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된 업무상 질병은 1986년 한 방송국 타이피스트의 질병이다. 1996년에는 한국통신(현 KT) 전화교환원들에게 VDT 증후군(영상기기를 오래 사용해 생기는 눈의 피로와 거북목 같은 증상)이 발병해 문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불과 20여년 전에는 개인적인 질환으로 치부되던 것이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업무상 질병으로 개인과 회사 나아가 사회에 모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는 뇌심혈관계질환, 직업성 암, 근골격계질환 등이 제외됐다. 질병 유발 요인이 업무로 인한 것임이 명백해야 하는데 상기 질병들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어 제외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그런데 질환자가 지속해서 늘어나는 부분에 대한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은 관련 기관의 책무이지 않을까.

이제 근골격계질환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범위의 확대, 업무상 질병 인정범위 확대, 산업재해 판정시 적용되는 ‘추정의 원칙’, 서비스산업 및 고령노동자 증가로 인해 더욱 많이 발생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부분을 집중 관리하지 않으면 이후엔 거대한 파도가 돼 ‘쓰나미’로 닥쳐올지도 모른다. 그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산업재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가 발생한 후 그 사후관리에 치중돼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외양간을 고치는데 예산의 80%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재해율이 비슷한 선진국에서는 반대로 예방활동에 노력을 기울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것이 비용 절감과 재해예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근골격계질환과 직무스트레스 예방은 생산성 향상 및 근무 만족도 증가를 가져오며 노사 간의 신뢰성 및 개인의 삶의 질 향상 등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에 정부·기업·근로자가 다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시대는 발전해서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 스마트팩토리 등이 도래하고 있다.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안전보건은 서서히 진화하고 있다. 이제 다가올 미래에는 아픔을 훈장으로 남기기보다 ‘예방’을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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