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김득중(54·사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은 국가가 제기한 손배소송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둔 25일 새벽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만큼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불면의 날들은 여전했다. 떠나보낸 동료들에 대한 부채감과 억대 배상금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 저지 파업 당시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다 장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14년간 피고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파기환송심 재판 결과 노동자들이 물어야 할 손해액 원금은 1억원대로 낮아졌다. 하지만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수억원대’ 배상금을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당분간 법적 다툼이 이어져 피고 신분이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경찰은 재상고한다.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설령 국가 손배소송이 마무리돼도 100억원대 회사 손배소송이 남아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25일 오후 파기환송심 선고 직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김득중 지부장을 만났다.

“대법원 선고 이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던 경찰, 조정안마저 걷어차”

-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내놓은 조정안을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정식 재판을 하게 됐는데.
“노조도 100% 만족하는 안은 아니었지만 수용하기로 결정했는데, 경찰이 만기일 하루를 앞두고 이의제기 신청서를 내면서 조정이 수포로 돌아갔다. 2019년 당시 민갑룡 경찰청장이 사과하면서 손배와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결 이후 전향적인 입장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경찰은 대법원 선고 이후 소송을 철회하기는커녕 조정안마저 걷어차 버렸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끝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태도다.”

-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기조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충분히 그렇다. 조정안을 전달받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찰이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안에는 노조에 책임을 묻되 개별 노동자 책임은 면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통령실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밝혀 온 만큼 경찰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14년간 피고로 재판 받아 … 노란봉투법 처리 시급”

- 회사가 제기한 손배소송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와 관련해 사측과 논의가 진전된 부분이 있는지.
“올해 KG모빌리티 임금·단체협상 합의안에 손배소송 취하와 관련해 ‘2023년 내 노·노·사 협의를 통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사 손배소송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9월22일 열린다. 첫 재판 이전에 노·노·사가 만나서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14년 전 쌍용차가 겪은 고통과 아픔을 계속 가져가는 것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회사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회사 정상화와 관련해 노조와 지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회사의 결단이 필요하다.”

- 손배 문제를 바라보는 현장 노동자들 분위기는 어떤가.
“기업노조가 올해 임단협 특별요구안으로 ‘손배소송 철회’를 요구하면서 아직 손배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는 것을 직원들이 인지하는 계기가 됐다. 경찰 부상 치료비 등 대법원에서 확정된 금액 약 3천800만원은 모금을 통해 힘을 모아 해결하기로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미 전체 임직원을 상대로 재정사업을 하고 있다.”

- ‘노란봉투법’ 논의가 정기국회로 미뤄지며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회의 상정 여부조차 주춤하고 있는 상황인데, 되게 답답하다. 손배·가압류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다. 죽고 사는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나 유불리 문제로 활용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기도 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경찰청장 사과를 받았지만, 14년간 피고로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제2, 제3의 쌍용차 노동자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처리가 시급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