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과 손잡고 회원들이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09년 정리해고에 반대해 옥쇄파업을 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배상금액이 대폭 줄어들었다. 다만 재판부가 선고 이전에 제시한 조정안과 달리, 단체인 노조와 개별 조합원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게 됐다. 배상금액이 줄어든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개개인에게 ‘연대책임’을 묻도록 해 “가혹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계에서는 개별적으로 손배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의 필요성을 다시금 확인한 판결이라고 지적한다.

11억3천만원 → 1억6천만원으로 감소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38-2민사부는 25일 국가가 금속노조와 쌍용차 노동자 36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노조와 36명이 공동해 1억6천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를 포함하면 2억8천만원~2억9천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소송비용은 국가가 90%, 노조쪽이 10%를 부담하라고 했다.

이번 판결은 배상금액이 종전에 비해 10분의 1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심은 13억7천여만을, 2심은 11억3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까지 포함했을 때 금액은 30억여원에 달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헬기와 기중기 수리비 관련해 원심을 파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법원은 경찰이 헬기로 최루액을 살포하거나 하강풍을 통해 진압한 것은 위법하다고 보고, 이러한 진압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을 정당방위로 판단해 손배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파기환송심 재판의 쟁점은 기중기 손상에 대한 책임비율이었다. 대법원이 기중기 수리비 손해에 대해 피고들의 책임을 80%로 인정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기존에 원고와 피고의 책임비율을 2:8로 본 것에서, 이번 판결로 7:3으로 뒤집혔다고 파악했다.

“조정안보다 후퇴 … 경찰 수용했어야”

배상금액이 대폭 감소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기중기 손상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노동자에게 물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진압 당시 헬기와 마찬가지로 기중기도 국가폭력의 도구로 활용된 만큼 정당방위를 나누는 판단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손잡고’는 논평을 통해 “헬기는 정당방위인데 기중기는 정당방위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법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국가폭력에 활용된 도구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정안보다 ‘후퇴’된 부분도 있다. 선고 이전 재판부는 국가와 노조에 강제조정안을 전달했는데 국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조정이 불발됐다. 조정안에는 노조가 3억원을 지급하라는 것과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개별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면제하고 노조에만 배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배상금액이 많이 줄어든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노동자 개인 입장에서 3억원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에 대해 엄격하고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이어 “무엇보다 대법원 선고 이후 소송을 철회하지 않고, 법원 조정안도 수용하지 않은 채 이 문제를 끌고 온 정부와 경찰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100억원대 회사 손배 소송, 노조법 개정은 남은 과제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국가가 재상고할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는 게 법조계 판단이다. 이번 판결로 14년 만에 국가 손배 소송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회사가 제기한 손배 소송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회사는 조합원 개개인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지만 노조에 대한 소송은 유지해 왔다. 지난 6월 대법원은 하급심에서 손해액으로 인정한 33억원 중 회사가 파업 복귀자들에게 지급한 18억원은 배상책임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음달 22일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국가 손배 소송이 마무리되면서 회사 손배 소송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KG모빌리티 기업노조는 올해 임단협 특별요구안에 ‘손해배상 소송 철회’를 포함해 사측에 요구한 바 있다. 철회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노사 합의안에는 “(손배소송 취하와 관련해) 올해 안에 ‘노·노·사’ 협의를 통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노·사는 KG모빌리티 기업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KG모빌리티 사측을 의미한다.

9월 정기국회로 밀린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도 남은 과제다. 개정안에는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합법파업의 범위를 확대하며, 파업으로 인한 손해와 관련해 각각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손잡고는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 사법부 판결을 통해 재차 확인했다”며 “다시는 누구도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이유로 국가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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