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집 옥상 화단에 장미 덩굴이 사방으로 뻗쳐 커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름 다 가도록 빨간 꽃 피울 기미가 보이질 않아 이상하다고 여겼다. 사람 다니는 길로 무심코 자란 가지들을 쳐내느라 땡볕에 땀 흘렸다. 잔가지를 치우다 그만 가시에 찔렸다. 피 흘렸다. 서울고등법원 정원에 자란 장미 나무에는 그래도 꽃이 달렸다. 크기도 색깔도 영 시원찮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국가손배 파기환송심 선고를 받고 나온 쌍용차 노동자들 표정을 보면서도 그랬다. 낯빛이 어두웠다. 비 한 방울 끝내 야박했던 그해 여름, 하늘에선 비 대신 최루액이 쏟아지고 헬기가 날고 크레인에 매단 컨테이너가 머리 위를 위태롭게 훑었다. 억 소리 나는 손배가압류가 뒤따랐다. 죽음이 잇따랐다. 살아남은 이들이 오늘 또 법원 앞마당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물어야 할 돈의 액수를 따지느라 퍼센티지와 날짜 따위를 서로 확인했다. 법원이 인정한 국가폭력 14년, 이제는 저들이 꽃길만 걷기를 많은 사람이 손잡고 바랐다. 국가는, 경찰은 조정안을 끝내 받지 않아 그 길에 가시를 남겼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이 가시 많은 꽃길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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