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찰은 지난해 12월 건설현장에서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며 200일간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나섰다. 당초 지난달 25일 특별단속을 종료할 계획이었으나 건설현장 폭력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며 기간을 다음달 14일까지 50일 더 연장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4월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상 특별점검을 벌인 뒤 이들의 ‘생존권’인 면허를 정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경찰의 대대적 수사와 정부 차원의 ‘노조 때리기’는 건설현장을 실제로 어떻게 바꿨을까. 노동계에서는 조합원 고용 기피로 당장의 실직은 물론이고 미래의 노동조건까지 끌어내릴 위험이 크다고 지적이 나온다. ‘건폭 몰이’ 이후 건설현장 변화와 산업 전망을 두 차례에 나눠 짚어본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게 성실의무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 통지서를 무더기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지난달 30일 건설노조 광주전남·인천경기·경기남부 타워크레인지부 조합원 18명이 통지서를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 태업시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힌 뒤 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면허정지 절차 정황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타워크레인 조종사 A(53)씨는 지난달 27일 국토교통부에서 ‘국가기술자격자로서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며 행정처분 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받았다. 30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3월 중순 이틀간 풍속 사유로 갱폼(거푸집) 인양 작업을 거부했다는 게 사유로 적시됐다. A씨가 당시 타워크레인 풍속계를 찍은 사진을 보면 순간 풍속이 초당 14.9~15.3미터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순간풍속이 초당 10미터를 초과하면 설치·수리·점검 또는 해체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15미터를 초과하면 아예 운전작업을 멈춰야 한다.

그런데 국토부는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과도한 작업지연을 막는다며 지난 3월12일 성실한 업무수행의 위반에 대한 판단기준을 마련했다. 불성실 업무 유형을 총 15개로 제시했다. △의도적으로 작업을 늦춰서 공정 지연 등 차질이 발생한 경우 △순간풍속이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원도급사의 승인 없이 조종석에서 임의 이탈하는 경우 △원도급사의 정당한 작업지시를 특별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등이 포함됐다.

A씨는 “갱폼은 바람에 약하니 안전상 풍속이 12미터를 넘으면 원청사에 알린 뒤 갱폼 작업을 중단하고 대기해 왔다”며 “(행정처분 통지서에 적시된 날짜에) 갱폼만 중단하고 다른 작업을 했다”고 억울해했다. A씨는 이달 말 행정처분 심의위원회에서 ‘성실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소명할 계획이다.

“사고 나면 책임 떠맡고, 작업중지하면 면허정지”

문제는 실제 면허정지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러한 무더기 행정처분 통지 자체가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위축시키고 위험 작업에 내몰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는 행위를 ‘태업’으로 규정할 당시부터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7년차 타워크레인 조종사 이영훈(34)씨는 “(국토부 점검 이후) 비가 와도 크레인 위로 올라가야 하고, 바람이 불어도 조종석 안에서 대기해야 한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조종사 책임으로 떠넘겨지기 쉬운데 위험하다고 작업을 중지하면 조종사에게 생존권인 면허가 정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노조가 지난 3월9일~10일 타워크레인분과 조합원 2천2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3.4%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위험한 작업을 강요·지시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요구한 작업 유형으로는 “기상 악화에도 작업 강행”이 23.6%로 가장 많았고, “안전 미확보(신호수 미배치 등) 작업 강요”가 18.4%, “위험작업(인양물 낙하 및 파손 등) 강요”가 16.8%로 뒤를 이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국토부 점검 이후) 권리가 다시 위축되고 있다”며 “원하청의 감시·통제가 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섭요구 사실공고 부착부터 ‘삐걱’
공정위 과징금 부과 이유로 “교섭권 없다” 주장

당장 건설현장에서 더 위험한 환경에 내몰리게 된 것뿐만 아니라 미래 노동조건을 결정지을 임금·단체협상도 위축됐다. 건설노조는 정부의 노조탄압과 수사당국의 단속 이후 교섭에 임하는 사용자측 태도가 현격히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2017년부터 중앙교섭을 해 온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예년보다 한 달가량 늦게 상견례를 시작했다. ‘교섭요구 사실공고문 부착’이라는 첫발부터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와 대구경북건설기계지부 울릉지회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빌미 삼아 건설사들은 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사업자가 가입돼 있어 노동조합의 실질적 요건이 결여돼 교섭 요구가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조는 이러한 이유 등으로 공고문을 부착하지 않은 건설사 84곳을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했다. 결과는 시정신청을 내고 나서야 공고문을 부착해 노조가 사건을 취하하거나, 노동위에서 인정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위는 공정위 과징금 부과를 이유로 교섭을 거부한 사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4월24일 노조가 낸 교섭요구 사실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공정위로부터 사업자단체로 판단 받아 불법행위에 대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받은 바 있으나 노조 자체의 효력을 부인 또는 제한하는 어떠한 처분이나 판결받은 사실이 없다”고 명시했다.

교섭 지연을 목적으로 교섭단위 분리신청 제도를 활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동위에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통해 노동위 판단과 판정문 송달까지 두 달가량 시간을 허비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안상민 건설노조 조직국장은 “지역별 교섭을 하자는 이유로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한 업체가 적지 않았다”며 “전에는 없던 모습이다. 노동위 결정과 판정문 송달까지 노조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설명했다.

교섭 시작해도 ‘전면 수용불가’ 고수
조합원 채용 기피로 ‘깡통 단협’ 우려

어렵게 노사가 교섭 테이블에 앉아도 사측의 교섭 해태는 이어졌다. 타워크레인분과는 109개 업체와 상견례 이후 4차례 교섭했지만 진전이 없다. 사용자측이 노조 요구안에 대해 ‘전면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쟁점 사안이라고 보기 어려운 단순 문구 조정도 ‘불수용’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지난 19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현장에서는 조합원 채용 기피로 인해 중앙교섭에서 협상이 타결돼도 ‘깡통 단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산별교섭 결과가 조합원에게 적용되려면 우선 취업이 돼야 하는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실직 상태가 이어지면서 조합원들이 단협의 혜택을 누릴 길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통상 업체가 건설현장에 들어오면 정해진 단협 이행과 관련해 해당 지역 노조 간부들이 현장소장 등과 교섭을 한다. 그런데 ‘채용 요구=강요·협박’으로 규정한 검·경 수사가 이어지면서 사측은 만남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노조 간부들은 입을 모은다. 문승진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사무국장은 “공사현장을 알리는 펜스가 생기면 지부 간부가 소장을 찾아가는데 일단 만나주질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서 만나도 100명이 일해야 하는 곳에 조합원 10명만 들어오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노조 탈퇴로도 이어지고 있다. 문 사무국장은 “9천여명의 조합원 중 최근 탈퇴한 사람만 70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건설노조가 지난 5월15~17일 토목건축분과·타워크레인분과 조합원 2천9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비조합원 또는 일반팀으로 현장에 취업했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점이 밝혀져 해고됐거나 퇴사를 강요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경우가 16.7%나 됐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일당 깎이고, 휴게시간 없어져 … 10년 전으로 돌아갔다”

노조가 해 오던 감시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임금 삭감과 노동조건 악화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다. 문승진 사무국장은 “일당으로는 2만~3만원 정도가 내려갔고, 월급으로 치면 유급휴일에 일해도 휴일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평균 100만원 정도 차이가 나는 실정”이라며 “휴게시간을 보장해주지 않거나 작업전 안전점검회의(TBM) 시간을 출근시간 앞으로 당기는 등 10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산재사고 위험과 부실공사 부담이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지하는 내국인, 지상은 외국인’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보고 있다. 시설과 구조가 각기 다른 지하 구간에는 숙련도가 높은 내국인을 고용하고, 규격화된 자재를 이어 붙이는 식으로 공정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알폼(알루미늄폼)을 써서 육체적으로 더 힘든 지상구간은 외국인을 고용한다는 의미다.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저임금 외국인력을 무작정 늘리려는 건설사 행보에 제동을 걸어 왔던 노조의 역할이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설업 내 이주노동자 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다. 다만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건설근로자 수급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실제 외국인력은 약 35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중 합법적으로 투입된 인력은 3만2천여명에 그친다. 나머지 32만여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추정했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은 “공사비가 삭감되거나 혹은 부족해진 현장에서 그 돈에 맞추기 위해 외국인력을 데려오는 경향이 있다”며 “공사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는 과정에서 외국인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대체로 숙련도가 낮아 산재사고나 품질 저하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건설업을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려던 노조의 노력을 ‘불법’으로 내몰면서 건설현장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다.

대법원 “월례비는 임금” 정부 건폭 몰이 제동걸릴까
200일 특별단속 결과 132명 구속, 66% ‘금품 갈취’ 혐의

경찰은 지난달 24일 발표한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 200일의 성과’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1천484명의 건설노동자를 검찰에 송치하고 이 중 132명을 구속했다. 지금도 505건, 3천884명에 대한 내·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별단속 3개월 차였던 지난 3월과 비교하면 송치 인원은 14배, 구속 인원은 4배 가까이 폭증했다.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의 분신을 부를 정도로 건설노조를 향한 유례없는 강압 수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건설노동자 사냥’이라는 말이 쏟아졌지만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건폭과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특진 대상자를 50명에서 90명으로 늘렸다. 경찰이 밝힌 건설현장 범죄 유형을 보면 금품갈취가 979명으로 66%를 차지한다. 구속된 132명의 경우도 금품갈취가 112명으로 85%에 이른다. 노조 전임비 또는 월례비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이 ‘갈취’라는 것인데 법원의 판단은 다르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타워크레인 기사 16명에 월례비 명목으로 지급한 6억5천400만원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공사업체에 원고 패소를 확정하는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렸다. 월례비를 사실상 임금으로 인정한 원심을 따져 볼 필요도 없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월례비를 임금으로 본 게 아니라 구체적 심리를 안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찰측도 협박과 폭행 등 불법행위로 월례비를 받은 것은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법원은 월례비가 생겨난 건설현장의 구조를 봤지만, 윤석열 정부는 불법적 구조는 눈 감은 채 건설노동자만 처벌하는 꼴이다. 건설노조는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대법원이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부당한 금품갈취로 매도하며 노동자를 건폭으로 몰아붙인 윤석열 정부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 제동을 걸었다”며 “무리한 건폭 몰이 수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어고은·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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