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200일 특별단속을 벌이며 건설노조를 건설현장에서 퇴출시키는 동안 건설산업은 침체하고 있다. 불황형 갑질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찰은 지난해 12월 건설현장에서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며 200일간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나섰다. 당초 지난달 25일 특별단속을 종료할 계획이었으나 건설현장 폭력행위가 근절되지 않았다며 기간을 다음달 14일까지 50일 더 연장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4월 타워크레인 조종사 대상 특별점검을 벌인 뒤 이들의 ‘생존권’인 면허를 정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경찰의 대대적 수사와 정부 차원의 ‘노조 때리기’는 건설현장을 실제로 어떻게 바꿨을까. 노동계에서는 조합원 고용 기피로 당장의 실직은 물론이고 미래의 노동조건까지 끌어내릴 위험이 크다고 지적이 나온다. ‘건폭 몰이’ 이후 건설현장 변화와 산업 전망을 두 차례에 나눠 짚어본다.

건설공사비지수 인건비 3.1% 오를 때
산업전력 10.8% 철물 10.5% 대폭 인상

경찰이 200일간 칼춤을 췄지만 수주 가뭄을 겪는 건설산업에 단비는 내리지 않았다. 경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이 건설업계에 보낸 신호는 명확하다. 건설노조의 장악력을 배경으로 상승했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효과다. 건설노조가 산별중앙교섭으로 체결하는 임금은 양성공 기준 18만5천원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노동자 평균 임금은 18만1천118원이다. 건설노조 조합원은 업무와 직급에 따라 양성공 임금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다. 경찰이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폭력배)’으로 내몰아 건설현장에서 사실상 퇴출시키면 건설업체는 더 적은 임금으로 더 많은 건설노동자를 부릴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생산성’ 향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낀 인건비도 공사비용을 낮추는 데는 역부족이다. 건설산업 지표 가운데 매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가 있다.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을 산출한 값으로, 2015년 수치를 100%로 보고 이보다 얼마나 지수가 상승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5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51.16%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5월 건설공사비지수를 발표하면서 “화력(3.1%), 원자력(3.1%), 신재생에너지(3.1%), 중유(2.71%), 자동조정 및 제어기기(2.6%) 등의 가격 상승과 경유(-11.04%), 휘발유(-8.7%), 전선 및 케이블(-2.22%), 제재목(-1.49%), 산업용 가스(-1.39%) 등의 가격 하락을 종합해 전월 대비 0.12%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노력(?)으로 아낀 노무비는 건설공사비지수에 매년 1월과 9월 두 차례 반영하고 있다. 200일 단속의 효과는 아직 측정하기 어려운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건설공사비지수에 반영된 노무비 인상폭은 각각 2.6%, 3.1%다. 그러나 지난해 1월 규석(19.5%), 소각로(15.1%), 산업용전력(10.8%), 변성기(10.6%), 건물용철물(10.5%), 진공펌프(8.7%) 등 다른 자재와 에너지가격 등이 줄줄이 인상된 것과 비교하면 특별히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건설 수주, 지난해 대비 12.9% 감소 전망

경찰이 6개월 넘게 건설노조를 뒤지는 동안 건설산업은 불황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올해 4월까지 건설수주액은 58조5천억원이다. 천문학적인 숫자지만 건설업계 표정은 밝지 않다. 아니 어둡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8.5% 감소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이라면 올해 국내 건설수주액은 2022년과 비교해 12.9% 감소한 200조1천억원으로 전망된다. 이후 전망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없으면 이대로 장기 불황으로 빠질 것이란 우려는 공통적이다.

국내 건설산업 구조상 이런 불황은 시차를 두고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발주처로부터 직접 계약을 따내는 원도급사(시공사)와 이로부터 다시 공사를 하도급 받는 하도급사(시행사), 그리고 그 아래 실제 공사를 담당하는 무수한 재하도급사로 나뉜다. 재하도급사는 원칙적 불법이지만 관련법에 예외조항을 활용한 하도급이 판치는 상황이다.

원도급사는 현재 수주절벽을 체감하지만 지난해와 그 이전부터 따낸 공사가 진행 중이라 분양 수익 같은 것을 아직 기대할 수 있다. 현금이 돌 여지가 있는 셈이다. 내년부터는 장담이 어렵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규모 있는 원도급사는 내년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미 민간공사 발주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긴축재정 기조를 가진 현 정부가 공공공사 발주를 늘릴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워 내년도부터 실제 타격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시행사쪽은 당장 지금 하고 있는 공사부터 문제다. 자잿값이 오른 부분이 타격이 크다. 공사를 하고는 있지만 가뜩이나 지난해 채권시장이 마르면서 현금을 기대하기 어렵다. 박 연구위원은 “전문건설업체가 더 어려울 것”이라며 “시멘트와 철근·콘크리트 같은 자잿값 영향이 큰 전문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먼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예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들어 3일 현재까지 폐업을 신고한 건설업체는 종합·전문건설업체를 통틀어 1천801곳이다. 이 중 1천550곳이 전문건설업체다. 소규모 영세업체가 많아 모수가 크기도 하지만, 현재 불황이 전문건설업체에 집중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시멘트업계의 가격인상 예고 이후 건설현장을 찾았다.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시멘트업계의 가격인상 예고 이후 건설현장을 찾았다.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노조 쥐어짠 전문건설업체도 결국 ‘을’

건설업 불황 가운데 전문건설업체가 먼저 줄줄이 문을 닫는 것은 역시 구조적인 이유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아파트 한 채를 짓는 건설현장은 피라미드 구조를 띈다. 이 가운데 전문건설업체도 불법 하도급으로 건설노동자를 쥐어짜고 있지만 구조상으로는 ‘을’에 해당한다.

이들 업체는 공사비 인상을 버텨내기 어렵다. 결국 오른 만큼 공사계약을 변경해 공사비를 더 따내야 한다. 이 구조에서 이들은 ‘을’의 지위를 실감한다. 이미 징조는 있었다. 지난해 시멘트 가격이 오르면서 전문건설업체들은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주처와 원도급사가 물가 인상만큼 공사비를 올려주지 않아 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당시 건설노조는 자잿값 인상 국면에서 전문건설업체가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것을 우려해 파업시 휴업급여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대했다. 원래 사용자 귀책사유로 휴업이 발생하면 수당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를 행사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공사비 조정 관련 갈등은 최근 증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가 인상이 현실화하면서 불황형 불법 하도급 거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주처와 원도급사가 전문건설업체에 하는 갑질은 대금 지급 회피 또는 지연과 조정 거부, 부당특약 등이 있다”며 “지난해부터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인상하면서 이런 하도급 불공정 행위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사비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전문건설업체의 큰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공사비용이 증가한 상황에서 공사비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당 인상분은 고스란히 전문건설업체의 몫이 된다. 앞선 건설노조 관계자는 “결국 경찰의 칼춤으로 노조를 퇴출해 아낀 인건비를 공사비 조정분으로 반납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전문건설업체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멘트값 14% 인상에 ‘대화 채널’ 마련했지만
피라미드식 산업구조서 파생한 불공정 행위 눈 감아

문제는 정부다. 정부는 시멘트 업계가 시멘트값 14% 인상을 공언한 뒤 건설업계, 시멘트업계와 함께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다. 줄줄이 인상을 예고한 공공요금도 그나마 인상 시점을 조정할 뿐이다.

특히 공공공사의 발주가 적은 게 건설업계에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올해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주택공급공사 발주액은 10조원으로, 10년 내 최저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미분양 등으로 민간공사가 크게 위축된 뒤 공공공사라도 발주량이 늘면 건설업계가 버틸 수 있겠지만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로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불공정 행위 단속에도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는 윤석열 정부의 1호 공약인 하도급 납품단가 연동제 법안을 통과했다. 10월4일부터 적용이다. 그러나 기준이 까다로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원·수급사업자가 납품단가를 연동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서면에 적시하면 연동하지 않을 수 있어 사실상 형해화 우려가 크다. 이 밖에 불공정 행위 단속이나 근절 관련 정부의 새로운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강한수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노조와 전문건설업체는 불법 하도급 문제로 적대적 관계이지만 피라미드식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산업 구조 아래서 을의 지위를 겸용하기도 했다”며 “결국 산업 전반의 불공정 하도급 체계가 고쳐지지 않고선 개선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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