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와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등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 주최로 2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상여를 메고 행진하던 중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캠페인단은 노동부의 부실한 자료 제공으로 인해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기훈 기자>

본지와 노동·안전단체가 산재사망에 경각심을 보여주기 위해 매년 선정하는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이 올해는 빈칸으로 채워졌다. 고용노동부가 개인정보 침해, 법인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기업명을 가린 정보를 제공하면서 정확한 산재사망 현황을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은 “산재 사망사고 책임을 기업(법인)과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물으려는 사회 전반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태도”라고 노동부를 비판했다.

사망사고 기업 명단 제출 요구에
하청명은 삭제, 원청은 첫 음절만

노동건강연대·매일노동뉴스·민주노총으로 구성된 공동캠페인단은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2023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을 열었다. 공동캠페인단은 2006년부터 매해 4월28일 산재노동자의 날을 맞아 전년도 기준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 발표해 왔다. 하청노동자의 죽음도 원청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없던 시절부터 정부가 제공한 공식통계를 활용해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도 원청의 사망재해로 합산해 공표한다는 의미가 있다.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 시행 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해 발표하지 못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노동부가 자료제출을 사실상 거부한 탓이다. 공동캠페인단은 정부가 기업명을 가리고 준 자료를 통해 지난해 원·하청 합산 가장 많은 재해사망자가 발생한 곳을 현대산업개발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9월에는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노동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산재 사고사망 자료 제출 요구에 지난달 22일 기업의 첫 음절만 표기한 재해 현황을 제공했다. 하청노동자 죽음을 원청의 재해로 포함하지도 않은 자료였다. 이수진 의원실의 반복된 자료 요구에 최종적으로 2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기업으로 원·하청 재해를 합산해 제공했지만, 원청명은 첫 음절을 제외하고 모두 가린 상태였다. 2021년까지만 해도 제공하던 전체 원·하청 기업명과 재해 발생 주소, 재해보고일은 모두 삭제됐다.

노동부의 전체 자료 제출 거부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을 일부 언론이 홈페이지에 게시해 “개인정보 침해, 법인의 명예훼손 문제가 제기됐다”는 이유로 사고사망자 2명 이상 발생 기업(원·하청) 현황만 제공한 것이다. 공동캠페인단은 당시 사고 현장인 원청 사업장 주소가 누락됐지만 원·하청 재해자수는 집계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을 진행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동부 “수사자료 공개 안 돼, 명예훼손”
안전단체 “공공의 이익, 국민 알 권리 위한 것”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살인기업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다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당연히 해당 기업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함이지만, 이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며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정부는 기업의 명예와 기업 경영책임자의 방어권 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노동부는 지난해부터 자료 불완전 제출의 근거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시행을 들고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9조에 따라 “중대재해 조사는 기소와 재판으로 이어지는 수사활동으로 비공개 사유”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중대재해) 확정 판결 전에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공개하는 경우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사업장 이름·재해발생일·범죄장소·범죄사실 등은 각각 피의자명·범죄시기·범죄장소·범죄사실로 피의사실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노동부는 전체 자료를 공개하려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노동부가 중대재해 발생한 기업명을 제출하지 않아 살인기업 선정이 무산됐다”며 “노동부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 기업 봐주기 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좀 더 촘촘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규제만이 노동안전 후진국이란 불명예를 벗어날 수 있다”며 “여야가 함께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인기업 선정식 특별상에 ‘윤석열 대통령“
중대재해처벌법 부정적 발언 잇따라 … ”주 69시간제 장시간 노동 추진“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2023년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의 특별상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이유다.

최근 주 최장 69시간(6일 기준) 근로가 가능하도록 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추진해 노동자를 과로로 내몰고 있다는 이유도 특별상 선정의 배경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여러차례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법무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하라”고 밝혔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해 12월에 경제 5단체 비공개 만찬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법 자체에 결함이 많다”며 “행정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0년 10월 쿠팡칠곡물류센터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다 과로사한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27일 오전 최악의 살인기업선정식을 찾아 “아들의 죽음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노동자가 과로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노동시간과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발언 중 수차례 울먹이던 그는 “27세 청년이었던 아들의 시간이 멈추고 2년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며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약에 의지하고 술에 의지해야만 가능하다. 다시는 덕준이와 같은 죽음이, 저희 가족과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낙탄을 치우다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사고가 난 지 4년이 지났지만 용균이 재판은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며 “지난 2월9일 항소심에서 처벌받아야 할 원청 사장 김병숙과 법인에 무죄 판결한 법원은 (노동자) 죽임을 허가한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력화되고, 노동자들을 숨지게 한 기업의 이름조차 시민들이 알 수 없다”며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가 망쳐 놓은 대한민국 노동자의 현실이다. 살인기업을 비호하는 윤 대통령이 노동자 죽음의 범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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