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매일노동뉴스 등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2022 최악의 살인기업’을 발표했다. 현대건설이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정기훈 기자>

현대건설이 2022년 최악의 살인기업 1위에 선정됐다. 지난해 6명의 하청노동자가 현대건설 건설현장에서 업무 중 떨어지거나 끼여 숨졌다.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2006년 처음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한 이후 현대건설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공동캠페인단에는 매일노동뉴스와 노동건강연대·민주노총이 참여했다.

공동캠페인단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2022년 최악의 살인기업은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산재피해 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이 공동주최했다.

“하청노동자에 집중된 재래식 재해”

현대건설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앗아 간 사고는 이번에도 떨어짐이나 부딪힘 같은 재래식 재해였다. 지난해 1월과 9월 발생한 추락사고로 하청노동자 2명이 숨졌다. 올해 4월 고용노동부는 현대건설 주요 현장을 감독했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254건) 중 추락사고 예방용 안전난간 미설치가 23.2%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굴착면 하부에서 쓰레기를 줍던 노동자가 부석에 맞거나, 현장에 앉아 있던 노동자가 굴착기 버킷에 부딪혀 숨졌다. 재해는 두세 달 간격으로 반복됐고, 9~10월에는 한 달 새 두 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살인기업 2위에는 ㈜대평이 이름을 올렸다. 경북 상주에 위치한 대평 화장품 연료 공장에서 지난해 8월 폭발사고로 노동자 6명이 다쳤는데 이 중 중상을 입은 원청 노동자 5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 4명이 숨진 ㈜대우건설과 ㈜태영건설이 공동 3위, 노동자 3명이 숨진 이일산업·한양·현대중공업·에스케이티엔에스·에스앤아이건설이 공동 5위를 차지했다.

예년처럼 재해는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됐다. 1위부터 공동 5위로 선정된 9개 기업에서 숨진 노동자 34명 중 하청업체 소속이 79%(27명)였다. 지난해 12월13일 여수산단 화학연료 탱크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3명도 모두 하청업체가 고용한 일용직이었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17명 사상자 낸 광주 학동 사고
‘현대산업개발’ 제재 무력”

특별상은 광주 학동 철거건물 사고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산업개발에 돌아갔다. 이 사고로 무너진 건물이 버스정류장에 정차하던 버스를 덮쳤고, 버스에 타있던 시민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졌다. 하지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중대산업·시민재해에는 포함되지 않아 노동부 집계에서 제외됐다.

국토교통부는 광주 학동 사고의 원인으로 불법 하도급으로 공사비가 대폭 줄면서 안전을 무시한 채 무리한 해체 방식이 동원된 것을 지목했지만 현대산업개발의 반성은 없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올해 1월 무단으로 구조를 변경해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를 일으켰고,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살인기업을 제재할 수단은 무력하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부실시공 등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현대산업개발에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후 현대산업개발이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한 것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행정처분 집행이 정지됐다. 하수급인 관리의무 불이행으로 내려진 영업정지 8개월은 현대산업개발의 요청으로 과징금 4억원으로 대체됐다.

또 다른 특별상 수상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다. 산재 유가족이 곡기를 끊는 투쟁으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27일 시행됐지만 재계의 법률 무력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캠페인단은 “경총은 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한 2020년부터 법이 시행된 지금까지 법률 의미와 목적을 퇴색하려 애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 규정하고, 개선을 새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지속해서 밝히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 안 돼”

공동캠페인단은 “네 번이나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현대건설은 각성하고, 경총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의원은 “1년에 2천여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현실에서 사람의 목숨을 갈아 넣는 기업 경영은 경영을 빙자한 살인”이라며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를 죽이는 살인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10월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업무 중 재해로 숨진 고 정순규씨의 아들 정석채씨는 “지난해 현대건설에서 여섯 분의 소중한 가족들이 산재 사망사고로 돌아가셨다”며 “현대건설은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난간대 미설치 등 안전조치 미준수로 고작 3억7천만원의 과태료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제대로 된 처벌만이 생명을 담보로 한 말도 안 되는 참혹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며 “광주 화정아이파크 사고는 솜방망이 처벌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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