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8일 일손을 놓았다. 1년 넘게 이어 온 ‘시급 400원’을 인상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은 한국 사회에서 성별화된 대표 직종이다. 주로 50~60대 중고령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청소노동자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연령차별·학력차별·고용차별 같은 여러 차별에 중층적으로 놓여있다. 때문에 이들의 투쟁은 단순히 400원을 올려 달라는 의미를 넘어 사회 안에 단단한 ‘구조적 성차별’이 깨뜨린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이광수(60)씨는 평생 공장에서부터 방문점검원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지난해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부분회장으로 일하면서부터는 모든 게 낯설기만 하다. 2021년 김건희 총장이 재임하면서 청소노동자와 학교 간 노사 갈등은 심해졌다. 이때부터 이씨의 ‘낯선 경험’도 시작됐다. ‘비정규직 철폐’라고 쓰인 ‘몸벽보’를 입고, 총장실 앞 천막농성장도 차렸다. 이씨를 비롯한 30여명의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이러한 싸움을 1년 넘게 이어 오고 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2012년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관리자 몰래 숨어서 커피를 먹을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한다. 이씨가 노조활동을 하고 나서 크게 달라진 것은 임금이 ‘협상’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전에는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았다면 이제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씨는 “뉴스에서만 보던 노조활동을 제가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은 학교 안팎으로 변화의 흐름을 이끌어 냈다. 시급 400원 인상 농성이 길어지다 보니 재학생이나 졸업생, 사회단체와 연대하는 활동도 많아졌다. 인권연합동아리 덕성여대지부 박인희(20)씨도 지난해 9월부터 철야농성에 함께하거나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덕성여대 투쟁에 연대했다. 박씨는 “지역에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다가 대학에 입학하며 돌봄노동의 가치를 절실히 느끼게 됐다”며 “엄마가 했던 돌봄노동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노조를 조직하기도, 교섭을 통해 일터에서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은 성별화돼 있다. 미국 여성노동자 2만여명이 길거리에서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던 115년 전과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매일노동뉴스>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전히 노동현장에서 빵과 장미를 외치는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여성 조합원, 남성의 35% 수준
가장 큰 문턱은 ‘고용불안’

여성이 노조하기 힘든 현실은 성별 노조 조직률 격차로 극명히 드러난다. 고용노동부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임금노동자)를 분석한 결과 가장 최근인 2021년 기준 남성 조합원은 217만3천783명(18.5%), 여성 조합원은 75만8천889명(8%)이다. 여성 조합원은 남성에 비해 3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성 조합원은 10년 전인 2011년 39만2천명에서 36만6천여명(93.4%) 증가했고, 남성 조합원은 같은 기간 132만8천명에서 84만5천여명(63.6%)이 늘었다. 지난 10년간 여성 조합원 증가 추세가 남성 조합원 증가 추세를 압도했지만 여전히 여성은 노조 안에서 ‘소수’에 머물러 있다.

여성이 노조를 하는 데 가장 큰 문턱은 ‘고용불안’이다. 여성은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해 8월 기준 남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은 34.6%(413만명)인데 여성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은 49.7%(487만명)로 15.1%포인트 더 많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여성은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은 중소·영세 사업장에 몰려 있고,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이 많기 때문에 노조를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공공부문일수록,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노조 조직률도 비례해 높아진다. 여성은 남성보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 종사하는 비율이 낮지만, 30명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비율은 크다. 노동부 사업체 노동실태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300명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46.3%였지만 30명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하다. 2020년 기준 여성과 남성 종사자의 300명 이상 사업장 근무 비율은 각각 14.9%, 20%로 남성이 더 많지만 30명 미만 사업장 종사 비율은 여성이 55.8%, 남성은 48.5%로 여성이 더 많다.

특히 민간부문(11.2%)보다 공공부문(70%) 노조 가입률이 월등히 높은데, 공공부문 일자리도 남성에 기울어져 있다. 2021년 통계청의 공공부문 일자리통계에 따르면 전체 공공부문 일자리 중 남성 일자리는 148만6천개(52.3%)였지만 여성 일자리는 135만3천개(47.7%)였다. 고용안정과 고임금이 보장돼 양질의 일자리로 취급되는 공공기관 일자리는 남자가 여자의 1.64배로 성별 격차가 컸다. 지속일자리(전체 일자리 중 전년 같은 분기와 동일한 노동자가 점유하는 일자리)는 남성이 53.6%로 여성보다 많았고 신규채용 일자리는 여성(57.6%)이 남성보다 많았다. 연공급이 주를 이루는 공공기관에서 남성의 임금이 여성의 임금보다 높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임금격차 줄이려면 노조 조직 격차 완화해야”
‘독박육아’도 노조활동 최대 걸림돌

성별 임금격차는 전체 노동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공개한 ‘성별 임금격차와 성평등 임금공시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노동자 평균임금은 남성의 65% 수준이었다. 남성이 100만원 받을 때 여성은 65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여성 친화적이지 않은 노동시장이 여성노동자를 임금이 낮은 중소·영세 사업장 혹은 불안정 일자리로 내몰고, 그런 일터에서는 노조가 조직되기 어려워 여성이 배제되면서 여성 친화적이지 않은 일터가 바뀌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별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노조 조직 격차부터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조에 가입하더라도 여성노동자 목소리가 주류가 되지 않는다면 변화는 더디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려면 직종·임금체계 등이 전반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현재 노조는 성별 직종 분리 문제나 일·가정 양립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독박육아’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에게 가사·돌봄 노동이 전가되는 탓에 여성노동자가 노조를 하려면 일과 가정, 그리고 노조에서 모두 ‘슈퍼우먼’이 돼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이미 대다수 워킹맘은 일터에서 퇴근 이후 집으로 ‘출근’하고 있는데 여기에 노조활동까지 추가되면 “세 사람 몫을 해야 한다”는 증언이 나온다. 90% 이상이 여성으로 조직된 학습지노조의 여민희 집행위원장은 “(노조에) 전임자가 없고 수업을 하면서 노조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수련회 같은 활동을 하려면 주말밖에 시간이 없다”며 “자녀를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남편이 양해해 주지 않으면 노조활동을 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한국노총 3천400여개 노조 중 여성 위원장 단 2.6%

노조에 가입해도 노조 안에서 여성은 배제됐다. 우선 인적 구성부터 여성은 소수다. 양대 노총 조직현황을 보면 여성 조합원은 20~30%대 수준이다. 양대 노총 모두 대표자를 포함한 주요 의사결정기구에 ‘여성 할당 30%’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실제로 여성 조합원의 대표성 확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한국노총 조합원수는 132만882명이다. 그중 여성은 29만357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22%다. 여성 조합원의 대표성은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한국노총은 ‘의사결정기구 30% 여성할당’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노총 여성본부가 지난해 6월 실시한 ‘여성간부 현황 및 성평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대의원은 11.5%(조합원 100만5천150명 기준, 대의원 4천776명 중 여성 550명), 여성 중앙위원(1천147명)은 8.5%에 그친다. 3천397개 노조 가운데 여성이 위원장을 맡은 곳은 90개로 2.6% 수준이다.

‘30%’가 지켜지지 않아도 의사결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노총 규약에서 이를 비켜 나갈 수 있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대의원 관련 규약에 따르면 여성 조합원이 30% 미만인 회원조합(산별)은 적어도 여성 조합원 비율대로 여성 대의원을 선출하면 된다. 그 결과 지난해 정기대의원대회 재적 대의원 929명 중 여성은 148명(15.9%)이었지만 대의원 자격심사위원회는 “여성할당제를 준수한 것”으로 인정했다. 30% 여성할당 도입 첫해인 2006년 15.7%로 반토막 난 이후 지금까지 정체돼 있다.

조합원 성비 7 대 3, 간부는 3 대 7로 뒤집혀

민주노총은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조합원 112만199명 가운데 여성 조합원이 34만6천526명이다. 단 비정규교수노조·언론노조·서비스연맹은 집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규약상 임원·중앙위원·대의원에 대해 ‘30% 이상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민주노동연구원의 ‘2022년 민주노총 성인지적 조직진단 연구’에 따르면 민주노총 임원·중앙위원·대의원 여성 비중은 각각 33.3%, 37.5%, 34.2%로 30% 이상이었다(조합원 98만7천514명, 2021년 12월 기준). 할당제가 적용되지 않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경우엔 28.6%로 30%에 미달했다.

임원·중앙위원·대의원 30% 이상의 여성할당 비율을 시행하고 있는 가맹 조직은 공공운수노조·전교조·서비스연맹·보건의료노조·민주여성노조 5곳이다. 대표적인 남성 다수 사업장인 건설산업연맹과 금속노조의 경우 여성 대표자를 찾기 힘들다. 건설산업연맹은 임원 중 여성이 없고, 주요 의사결정기관인 중앙집행위 위원도 17명 중 1명(5.9%)뿐이다. 금속노조는 임원 중 여성은 1명(10%), 중앙집행위원회는 여성이 없다.

건설·금속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보건의료노조나 전교조의 경우에도 조합원 성비는 간부에서 역전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 성비는 8 대 2인데(여성 77.9%), 대의원은 5 대 5에도 미치지 못한다(여성 대의원 44.9%). 전교조는 조합원 성비는 7 대 3인데(여성 73.1%) 중집에서는 3 대 7 수준으로 뒤집힌다(여성 37%).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조활동도 성별분업? “교육·선전은 여성이, 정책·조직은 남성이”

30% 수치 자체는 지켜도 대표자는 여전히 남성이 맡는다는 고정관념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지은 전교조 부위원장은 “선출직의 경우 지부장-사무처장 러닝메이트라면 지부장은 남성, 사무처장은 여성 이렇게 나온다”며 “남성을 리더로 생각하는, 깨기 어려운 관행과 문화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고 풀이했다.

일터에서 직종에 대한 성별분리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노조에서도 똑같이 성별에 따른 역할 배분이 이뤄지고 있다. 교육·선전 같은 업무는 여성에게, 정책·조직 같은 ‘요직’은 남성이 맡게 된다는 식이다. 특히 교섭위원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게 공통된 현장의 증언이다.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대의원에 여성을 앉혀도 핵심인 교섭에서는 배제한다”며 “모범단협안에 명시된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같은 문구를 현실에 적용하려고 해도 ‘회사가 어렵다’ 등의 이유로 후순위로 밀린다”고 지적했다.

의사결정 권한을 쥔 요직에서 배제될수록 여성 의제도 덜 중요하고, 덜 시급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박시현 공무원노조 성평등위원회 위원장은 “간부들 대부분이 ‘생리하지 않는 몸’이다 보니 유급휴가였던 보건휴가를 무급으로 바꿀 때도 노조 안에서 이렇다 할 투쟁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성 의제가 성폭력 예방, 모성보호 영역에서만 다뤄진다는 점도 문제다. 박시현 성평등위원장은 “여성 의제 자체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여성은 단순히 모성보호와 성폭력 예방 틀 안에서 보호와 예방의 존재로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 노조 조직률 상승 이끈 여성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는 있다. 최근 10년간 노조 조직률 상승세를 ‘여성’이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5%대로 추락했던 여성의 노조 조직률은 2017년부터 상승세를 타면서 2021년 8%대 진입에 성공했다.

이제 질문을 바꿔 보자. 무엇 때문에 ‘노조’하는 여자가 늘었을까? 노조하는 여자가 늘어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최근 여성 조직률 증가에서 눈에 띄는 공간은 학교다. 90여만명의 교직원 중 40%(36만명)에 육박하는 학교비정규직은 오랫동안 학교에서 일했지만 ‘교실 유령’ 취급을 받았다. 그중 17만명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교육공무직이다. 여성이 90% 이상인데 대부분 육아 등으로 고용단절을 경험한 40~50대 중장년층이다. 2010년 노조 조직화 바람이 불기 시작해 지금은 11만명 규모로, 여성조합원(76만명)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노조 조직화 초기만 해도 사용자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했던 학교비정규직은 이제 교육청을 상대로 집단교섭을 정례화하고 교원과 달리 방학 중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 협상을 이어 가고 있다. 급식실 노동자의 폐질환이 조리흄으로 인한 ‘업무상 질병’임을 밝혀내면서 학교 노동환경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고용이 안정되고 노동환경이 개선되면서 최근 청장년층 남성 조리원 지원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성평등’한 노조가 평등한 세상 만든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쏠려 있는 여성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공급자라 할 수 있는 ‘산별노조’가 중요하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여성이 더 취약한 일자리에 있기 때문에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노조활동은 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산별노조 역할을 강조했다. 90년대 여성이 주를 이루는 직종과 분야에 더 많은 임금인상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성별 임금격차를 축소해 나갔던 스웨덴 사례도 산별노조가 성평등을 내건 연대임금정책을 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남성 중심적인 노조 문화를 바꾸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성노동자가 주로 조직된 노조의 경우 돌봄 부담도 노조가 함께 해소하는 방식을 택한다”며 “예컨대 노조에서 집회를 하면서 아이들 돌봄공간을 만들어 아이가 있어도 같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여성본부는 여성활동가를 육성해 노조전임자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었던 여성 간부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2011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도입 이후다. 정연실 한국노총 여성본부장은 “타임오프 도입 이후 노조에서 여성 간부가 절반 이상 줄었다”며 “노사관계에서 여성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타임오프에서 여성을 예외로 하거나 불포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민주노총에서 만든 성평등 모범단협의 앞날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유아휴직 사용 의무 부여와 성·연령·인종·장애를 고려한 성인지적 노동안전보건, 고용 전 과정의 성평등 확대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대응, 교섭대표로 여성 참여 보장, 성평등 추진기구 설치, 성평등으로 총칙 개정 등을 담은 모범단협은 일터에서 성차별을 고착화하는 악순환을 끊어 낼 노조활동의 큰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특별취재팀(젠더+노동팀) : 어고은·김미영·강예슬·정소희 기자

20% 육박했던 여성 조직률, 2000년대 5%대까지 추락
70년대 남성 앞질렀던 여성 노조 조직률은 왜 역전됐을까

여성의 노조 조직률이 항상 남성보다 낮았던 것은 아니다. 70년대만 해도 여성 조직률이 남성을 크게 앞질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연구’를 보면 1972년 남성과 여성의 노조 조직률은 13% 수준으로 비슷했지만, 1976년 여성의 노조 조직률은 19.5%로 남성의 노조 조직률(15.2%)을 크게 상회했다. 하루 10시간 넘게 공장에서 일해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속 생계부양자이자 노동자라는 인식을 자각하지 못했던 여성노동자가 야학이나 산업선교회 활동 등을 통해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노동자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3년을 기점으로 남성과 여성 노조 조직률이 역전된다. 여성의 노조 조직률은 1980년대 말 계속 감소하는데 정부가 1960~1970년대 육성한 의류·신발 등 산업이 쇠퇴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과 무관치 않다. 여성이 집중된 직종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여성의 노조 조직률도 감소한 것이다.

경제위기는 여성에게 더 가혹했다. 1997년 외환위기 속 여성은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됐고, 비정규직화 최전선에 서야 했다. “반찬값 벌러 나온”으로 인식된 여성노동자 실직 문제는 당시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노조도 여성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1999년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대공장에서 가장 약자였인 식당 여성노동자들을 ‘자르는’ 수준에서 노사합의로 마무리됐다. 여성 노조 조직률은 2002년 5.1%까지 떨어졌다.

이후 부동의 5% 박스권이 2018년까지 13년간 이어진다.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 조직률이 10.5%(2017년)에서 14.2%(2021년)로 꿈틀거리고 여성 조직률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9년 6.5%, 2020년 7.5%, 2021년 8%까지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여성 노조 조직률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로 쏠려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기반으로 노조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성 조직률 증가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세계적 추세”라며 “특히 한국에서는 2017년 촛불시위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노동기본권을 둘러싼 좋은 정치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조직률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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