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9일부터 이틀간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7월에 산별파업을 하기로 결의했다. 2021년 9월2일 파업 돌입까지 5시간가량을 앞두고 극적으로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인력 확충, 공공의료 강화,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에 합의한 지 1년5개월여 만의 결정이다.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나순자(58·사진) 위원장은 “노정합의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점수를 매기자면 30~40점 수준”이라고 말했다.

파업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상황도 좋지 않다.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건설노조 압수수색 같은 ‘노조 때리기’를 할수록 지지율은 상승 효과를 내고 있다. 2년 전 코로나 최전선에서 분투한 의료진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내던 때와도 온도차가 존재한다. 나순자 위원장은 “그럼에도 인력문제를 올해 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파업을 결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력·공공의료 확충 논의만 하고 이행 더뎌”

- 최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년 만에 다시 파업을 결의했다. 무슨 이유인가.
“노정합의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총파업을 다시 결의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정책이 우선해야 하는데 환자 안전은 위협받고 지역의료 격차도 심각한 상황이다. 초고령사회에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더 비싸다는 것도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보건의료인력과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하다. 이미 2021년 노정합의에 포함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올해를 넘기면 합의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 2021년 9·2 노정합의 이행 현황을 총평해 달라.
“가장 중요한 보건의료인력과 공공의료 확충은 논의만 하고 이행이 굉장히 더딘 상황이다. 지난해까지 시기를 정해서 로드맵을 만들거나, 구체적 안을 마련하자고 한 내용들(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전면 확대 방안, 간호등급차등제 산정기준을 ‘간호사 1명당 환자수 기준’으로 개편하는 방안,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은 거의 진행이 안 되고 있다. 또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에 대한 논의, (지역거점 공공병원 등) 공익적 적자 해소 방안 마련, 국립대병원 소관부처 이관에 대해서는 아예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권교체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노조탄압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이행 의지가 떨어진 듯하다. 하지만 노정합의는 정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정치적 의제가 아니라 어느 정권이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는 지속 추진해야 할 정책적 과제다.”

“핵심 요구는 기승전 ‘인력’
올해 확실한 전환점 만들어야”

- 파업에 이르기 전에 해결돼야 할 핵심 의제는 무엇인가.
“기승전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2012년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당시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이) 발의했고, 이후 투쟁 등을 통해 2019년에 제정됐다. 인력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2021년 노정교섭을 요구했고, 결국 합의를 했다. 어렵게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제대로 이행이 안 되고 있다. 올해는 인력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 확실하게 전환점을 만드는 그런 해를 만들어야 한다.

간병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 간호사·간호조무사가 간호·간병을 제공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 300병상 급성기 병동을 2026년까지 전면 확대하고, 지난해까지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논의만 진행되고 있다. 노조는 매년 20%씩 확대해서 2026년까지 전면 확대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일반병동의 경우 간호등급차등제를 간호사 1명당 실제 환자수 기준으로 상향 개편하기로 했는데 개편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노조는 자체 연구용역 결과와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 대 5(1등급)로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도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마련하기로 했는데.
“어느 직종도 인력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복지부는 간호사를 포함해 간호조무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 6개 직종에 대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실태조사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적정인력 기준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의사인력 확충, 의정협의 아닌 사회적 논의 필요”

- 노조는 의사인력 확충도 꾸준히 요구해 왔는데 난항이 예상된다. 2년 만에 재가동된 의정협의체는 다시 중단될 위기다.
“한국은 의사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때문에 정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병원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사망했다. (필수의료 공백은) 서울아산병원만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서울이 아닌 지역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의사인력 문제는 대한의사협회하고만 논의할 게 아니라 시민단체, 환자단체, 노조,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를 통해 풀어야 한다.”

-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보건의료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의협을 포함한 7개 직종협회 대표와 2개 보건의료 산별노조 대표가 참여하는 ‘7+2 대표자 회의’를 공식 제안했다.
“신승일 의료노련 위원장과는 공감대가 (공식 제안 이전에) 형성된 상태였다. 지금 간호법 때문에 직종 간 갈등 상황이 극에 달해 있는데, 정리가 되면 직접 직종협회장들을 만나 제안할 생각이다.”

- 최근 삼성서울병원이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인력) 채용공고를 내 병원장이 경찰에 입건되면서 의사 부족에 따른 PA 간호사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PA 간호사가 전국에 1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가 부족해서 실제로 아무런 자격 없는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하고 있다.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정합의를 통해 대리처방, 수술동의서 작성, 처치·시술, 수술, 조제 및 복약지도 같은 불법 의료행위를 근절하기로 했다. 복지부에서도 의협·대한병원협회 등에 관련 공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시행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조합원만을 위한 파업 아냐
국민의 건강·생명 직결된 문제”

-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 구축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강조해 왔다. 어떻게 보나.
“회계 공시 등에 대해서는 노동운동을 비리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하고 있다. 회계 문제는 한 번 잘못되면 조합원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미 중앙에서 지역본부와 지부 회계 담당자들에 대한 교육을 수년 전부터 했다. 다른 노조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내용까지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회계 흐름을 파악해 노조탄압의 빌미로 활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도가 의심스럽다. (회계장부를) 비치하라는 것은 하겠지만 내용 전체를 제출하라는 것은 부당하다.”

-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정부 대응이나 여론 모두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파업이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의제화되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조합원들만을 위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요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제를 어떻게 제대로 알리느냐가 관건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라디오 광고를 통한 선전·홍보를 준비하고 있다. 현장 실태조사를 근거로 한 토론회도 열고, 4월부터는 환자·보호자·지역주민을 상대로 직접 매주 선전전도 할 계획이다.”

“기업별교섭 틀 여전, 산별교섭 제도화 필요”

- 지난해 의사협회·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 등을 대상으로 노동기본권 교섭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실질적인 교섭을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해당 단체들이 ‘사용자단체로서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 교섭을 요구했고, 올해는 노조뿐만 아니라 직종협회와 함께 좀 더 압박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 정부위원회에는 참여해 목소리를 내면서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사용자단체로서 역할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는 사업자들은 사용자단체 범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초기업교섭을 제도화하는 법·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한 5만 국민입법청원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임금체계 개편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전혀 대안이 아니다. 불평등·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과 함께 초기업교섭을 반드시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 기업별교섭 체계에서는 정규직이 자신의 요구안만 가지고 교섭을 하기 때문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 통과는) 사용자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굉장히 진전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교섭은 기업별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초기업교섭 제도화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