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수립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경영)가 “산업안전은 기업주의 투자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인과관계를 알아 내기 힘든 복잡계”라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아주 잘못된 법”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5년 내 사고사망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규제와 처벌 위주 중대재해 감축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선진국도 70년대부터 자기 규율과 책임 원칙하에 노사의 자발적인 변화를 촉진해 산재예방 패러다임을 바꾼 것처럼 우리나라도 변화해야 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발제자로 나온 이병태 교수는 ‘통계의 착시효과’를 강조하면서 “중대재해 감축 목표를 OECD 평균 이하로 맞출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재해율(노동자 100당 발생하는 재해자)이 0.65로 독일(2.65)이나 미국(3.02)보다 낮지만 사망만인율은 0.79명으로 독일(0.17), 미국(0.37)보다 훨씬 높다. 이런 통계는 우리나라에서 사망사고가 아니면 산재로 처리하지 않는 관행, 즉 은폐된 산재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재해율에 비해 사망만인율이 높은 이유를 “산업안전보다는 응급의료 체계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산재사고가 일어났을 때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자가 많다는 주장으로, 그는 “한국은 의료접근성이 세계적 수준이지만 통계를 보면 의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다”는 논리를 폈다.

이 교수는 “OECD 평균보다 산재사망이 많은 이유가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했다. 유럽의 경우 노동시장이 유연해서 단기근로에 대한 규제가 없지만 우리는 정규직·전일제에 대한 기대가 커서 통계적 착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파트타임이 많으면 분모(근로자수)가 커져 재해율이 낮아진다”며 “사망만인율을 OECD 평균과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영세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산업구조 특성이 산재 통계의 착시를 부른다고 보는 이 교수는 “안전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안전을 보장하는 건 아니며 경영자 처벌 위주의 규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세 제조업체에서 산재가 많은 이유는 대기업이 수직계열화돼 있는 원하청 구조를 타고 다단계 하도급으로 위험업무를 떠넘기기 때문인데, ‘위험의 외주화’는 언급하지 않았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사용자에 유리한 통계와 주장만 가지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토론회를 여는 노동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올해 발생한 중대재해의 65%가 하청노동자에서 발생했는데 원청사업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주로 위험 작업을 하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하청노동자는 원청의 산재예방 활동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데 원하청 자율과 안전문화로 중대재해를 감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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