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윤석열 정부가 시행 1년도 되지 않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공식화한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개정 방향에 대한 의견수렴에 나섰다. 노동계와 사용자쪽의 입장은 확연히 갈렸다. 사용자쪽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뚜렷한 산재감소 효과가 없고 기업 경영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며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 범위를 구체화하고 면책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딱 1건만 기소된 상황”이라며 “지금은 법령 후퇴가 아니라 2024년부터 적용되는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할 시점”이라고 맞섰다.

불확실성 해소 명분, 법 취지 흔드는 재계

노동부는 1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방향에 대한 노사 및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불명확하고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판단과 수사권 남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시행령에 나오는 ‘필요한’ ‘충실히·충실하게’ 같은 표현이 모호하고 ‘준수해야 할 안전보건 관계법령’ 같은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시행령에 경영책임자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조문을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와 이에 준하는 자의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임우택 경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선임된 경우 사업대표는 법령상 의무 이행의 책임을 면한다는 규정을 시행령에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불확실성 해소 명분으로 앞세워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입법 취지 자체를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유사한 취지의 법령에 형사처벌 조항을 가진 호주와 캐나다·영국의 기업살인법은 경영책임자 의무를 훨씬 더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영국의 경우 ‘사회적 상식 차원에서 반하지 않는 정도로 의무를 다해야 하는 수준’으로, 캐나다·호주는 ‘대표자가 위법행위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관리기준에서 현저하게 벗어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다른 법령에서도 ‘성실하게’ ‘필요한’ 같은 조항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의 경우 “안전점검을 성실하게 하지 않거나” “필요한 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등으로 사람이 사상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노동계는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직업성 질병 범위를 확대해 과로사 등도 포함하고, 근거가 될 수 있는 근로기준법 등에 있는 조항을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넣을 것을 요구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법률에 위임 없이 만들 수 있는 시행령은 ‘집행명령’이고, ‘집행명령’은 모법의 해석상 가능한 것을 명시하는 정도로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며 “경영책임자 정의처럼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내용을 집행명령을 통해 변경·보충하는 것은 죄형범정주의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안전담당 임원까지 처벌대상을 확대하자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소모적 논쟁 벗어나 현장 정착 노력하자”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법 제정 당시라면 몰라도 법 시행 200일도 안 돼 법원 판결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소모적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며 “2024년부터 적용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5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 의무를 면제하고 있어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부실한 실정이다.

류경희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시행령 개정은 모법의 입법 취지와 위임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개정안을 마련할 때 법률의 위임 범위를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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