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200일도 되지 않아 경영책임자 의무를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뒷걸음질 칠 태세다. 법원의 판단도 나오기 전에 ‘법적 안전성 확보’를 앞세워 경영책임자 의무는 줄이고 면책 범위를 크게 넓혔다.

심지어 중대재해를 일으켜 안전보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경영책임자를 위해 교육 수행기관에 ‘대학교’를 새로 넣었다. 경영책임자는 안전보건 ‘경영’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게 개정 이유다. 현행법은 경영책임자도 현장실무자나 일반근로자처럼 안전보건공단 같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교육기관에서 받도록 돼 있다.

지켜야 할 안전보건법령 10개로 축소

7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방향 검토’ 자료에 따르면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10개로 축소된다. 중대재해처벌법 4조2항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관계 법령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시행령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해당 법령을 10개로 한정했다.<표 참조> 시행령 제정 당시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을 중심으로 고려하되 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종사자 안전보건에 관계되는 법령은 모두 포함된다”고 강조했던 노동부가 1년도 되기 전에 스스로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사용자쪽이 줄기차게 밝혀온 “경영책임자가 관리해야 할 의무 대상인 안전보건 법령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아 지킬 수가 없다”는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10개로 축소되면 근로기준법이나 건설산업기본법 같은 법령은 제외된다. 노동계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이나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발생한 중대재해는 처벌 대상에서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경영책임자 의무
‘안전보건계획 이사회 승인’으로 갈음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재계의 숙원 사항인 ‘경영책임자 범위 축소’는 담기지 않았다. 안전담당 임원(CSO)를 선임한 경우 경영책임자는 면책하는 방식은 위임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경영책임자 의무는 대폭 축소됐다. 현행 법령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필요한’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각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예산’으로 바꿨다. 안전보건 경영을 위한 예산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이행을 위한 예산으로 사실상 축소된 것이다. 또 개정안은 경영책임자 의무 가운데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 구비’ 조항이나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 설정’ 조항은 산업안전보건법 14조 대표이사의 안전보건계획 이사회 보고·승인 의무만 지키면 준수한 것으로 갈음하는 단서 조항도 신설했다. 안전보건계획 이사회 보고·승인 의무는 이행 여부를 보고하거나 외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깜깜이’로 통한다. 특히 원청 대표이사가 수립하는 안전보건계획에는 하청노동자나 노무제공자에 대한 재해예방 예산은 편성하지 않아도 법 위반이 아니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위험 외주화 막는 ‘하청 재해예방능력 평가’ 축소

현행 법령은 하청노동자 안전보건 확보를 위해 산재예방능력 평가와 안전보건 관리비용, 공정기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산재예방능력 평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만 준수하면 이 조항을 피해 갈 수 있도록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법 61조에 따라 적격수급인을 선정한 경우 이를 준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럴 경우 ‘적정인력 확보’ 같은 기본적인 조치가 지켜지지 않아도 처벌할 수 없다.

‘개정방향 검토’ 자료는 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전에 의견수렴을 위해 마련한 정부안이다. 재계 요구를 대부분 반영하는 식으로 개정안이 입법예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대로 직업성 질병 범위를 확대하고 중대재해 사업장 공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는 반영되지 않아 저항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동부는 이달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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