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그동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해 가급적 말을 아껴 왔다. 중대재해 예방의 권한과 책임을 조응시키는 이 법의 취지를 제대로 알리고 현장에 적용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이 땅의 기업들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노동의 현실을 바꾸기보다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완화하는 취지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경영책임자의 의무 명확화를 위한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업)현장 애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법이 시행된 지 고작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노동계와 전문가그룹은 현행 시행령의 한계를 지적하며 오히려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보완입법을 강조했지만, 정부는 선택적으로 귀를 닫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정작 현재 이 법을 적용해 기소된 사건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법원의 판단례 조차 존재하지 않는 법에 대해, 심지어 그 입법취지는 여전히 굳건히 남아 있는 현실에서 법을 후퇴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 속에서,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정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생뚱맞게도 노동안전보건 소관부처가 아닌 기획재정부, 정부조직법상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 경제·재정정책의 수립·총괄·조정, 예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 화폐·외환·국고·정부회계·내국세제·관세·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경제협력·국유재산·민간투자 및 국가채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부처가 비밀리에 연구용역을 실시한 후 재계의 민원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의견을 제시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노동자의 삶과 몸을 국가발전의 연료로, 경제정책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헌법은 국회와 정부·법원의 각 권한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면서, 국민이 위임한 국가의 권력이 분립됨을 천명하고 있다. 행정입법은 국회가 입법으로 행정기관에 구체적으로 위임한 사항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아는 시행령(대통령령)·시행규칙(총리령 또는 부령) 등이다. 정부는 국회가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만 법 정립의 권한을 갖고, 그 외에는 입법자일 수 없다. 헌법과 입법자가 정한 법을 준수해 통치할 뿐이다.

국회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부여한 ‘경영책임자등’은 ‘(1)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2)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쉽게 말해 (1)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또는 (2) 대표이사에 준하여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의무의 주체인 것이다. (2)에 있어서 ‘또는 이에 준하여’라는 문구가 중요한데, 단순히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 준해 사업 전반에 관해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보유하면서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인력·예산에 관한 총괄 관리 및 단독으로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흔히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 따위로 불리는 직책의, 단지 안전보건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가 대표이사 대신 책임을 질 수 있거나 면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법체계상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법의 문언이 충분히 명시적일 뿐만 아니라 달리 하위법령으로 위임하고 있지도 않다.

종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업주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지정한 경우 대표이사 등 기업의 실제 의사결정권자와 경영책임자는 쉽게 빠져나가고, 하위 현장관리자만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에 대한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제정된 법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여전히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조치의무와 벌칙규정을 적용받고, 이 법에 따라 경영책임자 등에게 새로운 의무와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과 기재부는 대표이사를 수호하기 위해,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내용을 시행령에 넣으려 한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의 방패막이었다면,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방패막이를 꿈꾸는 것이다. 기업들의 소원대로 시행령이 개정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사실상 다르지 않은 법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국가 권력의 분산을 형해화해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패막이 규정은 모법에 근거가 없이 모법에 규정된 실체적 사항을 변동시키는 규정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법조문 자체로 명시적인 입법자의 의사를 표했고, 정부에 대한 위임의 필요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회가 입법한 법을 사실상 개정하면서, 스스로 입법자의 역할까지 하겠다며 뛰어든 꼴이다.

연일 이어지는 부고 앞, 한 줄 기사조차 되지 못한 죽음 앞에서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하지 않고 “투자 의욕이 줄어들지 않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모든 움직임은, 이들이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여준다.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험에 꼼꼼히 대비하기보다 한 푼의 이윤까지 긁어모아 극대화하려는 기업에게 얼마나 이입했는지 알 수 있다. 정부가 국회의 권한까지 넘보며 감행하려는 일이, 일터에서 사그라진 노동자의 목숨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가볍게 하려는 것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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