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로공사 순찰원노조

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을 집행한다. 그게 행정이다. 일은 자동으로 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이 붙어야 한다. 공무원을 두는 까닭이다. 공무, 그러니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무의 끝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닐 때가 많다. 공무를 직업으로 삼아 위험을 마주하는 사람들, 공무직이다. ‘공무원 아니었어?’ 하고 의아해 할 정도의 공적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공무직들을 만났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가축위생방역사
② 고속도로 순찰원
③ 국가보훈처 의전단


2020년 여름 한국도로공사 강릉지사 동해선의 하조대에서 근덕나들목까지 구간을 지나는 검정색 그랜저 차량이 역주행을 했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쉬이 납득되지 않지만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주로 음주운전 차량인데, 휴게소를 들렀다가 나오는 곳을 잘못 찾은 것이 주된 원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다. 초동조치를 하기 위해 이경준(41) 안전순찰원이 나섰다. 동료와 함께 안전고깔(라바콘)을 설치했다. 피해자는 역주행 차량을 피하다 사고를 냈다고 말했다. 견인차량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순간 검정색 그랜저 차량이 눈에 띄었다. 사고현장 인근까지 와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부자연스럽게 운행하는 차량을 보고 싸한 기분을 느낀 이씨는 경찰에 즉각 신고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어요.” 역주행 차량이 맞았던 것이다.

역주행 차량을 경험하는 일은 의외로 잦았다. 이씨는 “역주행 차량이 스치듯 지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을 하는 운전자 앞에서 안전고깔은 무용지물이고 그저 두 다리 말고는 믿을 게 없다”고 웃었다.

도로공사 순찰원은 전국 고속도로를 순찰하며 고속도로의 안전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더니 “안 하는 게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실제로 이들은 고속도로의 △사고처리 안전관리(2차 사고 예방) △잡물·잔해물 제거 △고장차량 안전관리(안전지역으로 이동) △과적차량 계도 △졸음운전 차량 계도 △로드킬 사고 처리 △고객응대 등 다양한 일을 한다. “보행자에게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실소가 나왔다.

순찰원이 고속도로에서 고객을 응대할 일이 뭐가 있나 물었더니 “도로공사에 갖고 있는 불만을 순찰원에게 쏟아 낸다”고 대답했다. 순찰원이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규직 입사했다 민영화로 용역행
“월급 더 준다더니 산재도 인정 못 받았다”

이들이 도로공사 정규직인 것은 맞다. 올해 16년차인 이씨가 2007년 처음 입사할 때는 도로공사 정규직이었다. 공공기관의 어엿한 정규직, 고속도로 안전을 최일선에서 지키는 나랏일하는 보람이 컸다. 그렇지만 정규직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씨는 이천지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도로공사 민영화 바람이 불었다.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진행한 민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이씨 같은 교통안전 최일선에 있는 노동자부터 표적으로 삼았다.

“본사에서 어차피 순찰직이 없어지고 다른 지사 가서 풀 뽑기 같은 작업일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나가라는 얘기죠. 그래서 원래 고향인 강릉쪽에 자리가 나면 옮기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2009년까지 일하고 그해 민영화로 용역회사가 들어 온 강릉지사로 옮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용역회사 시절에 대해서는 “산재사고도 인정 못 받았던 시절”이라며 또 웃었다.

그보다 넉 달 먼저 입사한 다른 직군 동기는 계속 도로공사 정규직으로 남았다. 그는 박탈감을 털어놨다. “용역회사로 옮겨 갈 때도 부러웠고, (공사 소속으로) 돌아온 지금도 부러워요. 저는 원래 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정부 정책에 따라 용역으로 간 거잖아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 돌아오니 그냥 남의 식구예요. 처우도 기존 정규직과 달리 순찰직을 따뤄 둬서 판이하게 달라요. 고작 안전고깔 몇 개에 의지해 고속도로 안전을 관리하는데 우리만 위험수당이 없어요. 아무리 봐도 우리가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데 수당은 주지 않아요.”

이씨는 교대근무를 한다. 교대근무표는 꽤 복잡하다. 새벽 5시반까지 사무실로 출근해 차량을 정비하고 안전장구를 확인한 뒤 곧 6시부터 고속도로로 나간다. 오전조다. 오후조는 오후 2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야간조는 저녁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한다. 4조3교대, 2인1조다. 구간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맡은 구간 내의 나들목과 국도 진입로까지 모두 살핀다. 한번 순찰을 나가면 100킬로미터 안팎의 도로를 점검한다.

▲ 한국도로공사 순찰원노조
▲ 한국도로공사 순찰원노조

4차선 운행하다 갓길에 세우고 1차선 돌 치워
사고 정비하다 달려든 차량에 반대편 차로 튕기기도

운전자는 가장 오른쪽 차선으로 운전하면서 전방을 주시하고, 동료는 도로 전반의 위험 요소를 살핀다. 가장 오른쪽 차선으로 운전하는 이유는 도로에 문제가 있으면 즉시 정차하고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4차선 고속도로 1차선에서 사고가 났거나 낙하물이 있으면 차를 갓길에 정차하고 뛰어들어 가 들고 나온다. 몸무게보다 무거운 돌덩이라도 재빠르게 들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고속도로라 차량이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는 속도로 달려든다. 그가 보여준 도로공사 순찰원 단체대화방(밴드)에는 순찰하다 사고를 당해 찢긴 차량의 모습이 숱하게 찍혀 있었다.

끔찍한 사고는 그들 사이에서 계속 회자된다. 2020년 2월의 일이다. 비가 오던 날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역시 가장 먼저 출동한 순찰원들이 안전고깔을 세우고 사고예방과 초동조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빗길에 미처 멈추지 못한 차량이 안전고깔을 밟고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덮쳐 오는 차량을 피할 길이 없었던 순찰원은 그대로 차에 치여 날아갔다.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차도에 쓰러진 그는 머리와 척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천만다행하게도 반대편 차량에 부딪히진 않아서 살았어요. 그런 사고가 나면 반대편 차량에 부딪히거나 머리부터 부딪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목숨은 건졌지만 심한 부상과 트라우마로 지금은 순찰보조 업무만 하고 있습니다.”

명절길 차량관리 자처해도 차별에 울어
“안전차량 좀 보내 달라는데 못 준다더라”

사고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대관령지사에서 일한 또 다른 동료는 터널 안 사고를 관리하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새벽 시간대 감속하지 않고 달려온 차량이 그를 덮쳤다. 해당 순찰원은 “차량을 확인한 순간 이미 멈출 수 없는 거리와 속도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 차량은 갓길에 멈춘 순찰원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터널 안 벽면에 뛰어올라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씨는 힘줘 말했다. “후미안전관리차량, 이른바 ‘사인카(Sign Car)’를 대동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묵묵부답이에요. 순찰원이 가장 안전하지 않은 셈이죠.”

후미안전관리차량은 15톤 정도의 소형 트레일러다. 차선이 봉쇄됐으니 옆 차로로 주행하라는 의미의 화살표가 차량 후미에서 반짝거린다. 차가 무겁다 보니 뒤에서 다른 차량이 들이 받아도 버틴다. 순찰원들은 순찰 때마다 대동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그저 현장의 요구가 있을 때, 차량사고가 났을 때 그러니까 위험할 때 부르면 와 달라는 것이다. 후미안전관리차량이 부족하지도 않다. 이씨는 “본사에서는 후미안전관리차량 배차 요구에 대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데 대기를 시킬 수 없다고 한다”며 “실제로는 최소 한 대가 본부에 대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왜 출동이 어려울까. 공사 답변이 기막히다. “운전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운전자가 있어도 작업반에 차출돼 없다는 거죠. 그러면 상황실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운전면허 있는 사람이 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해요. 왜 안 되는지 되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어요.”

이런 차별은 직업적 자긍심 강한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씨는 “우리는 명절에 집에 가다가도 고속도로에 낙석물이 있으면 치우고 간다”며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에 보람과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안전을 등한시하는 차별을 당하면 회의감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순찰원노조
▲ 한국도로공사 순찰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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